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Aug 27. 2020

철거만 하면 시작인 줄 알았지?

시작이 반이라고 대체 누가 그랬냐

집을 계약한 후로 구체적인 설계에 들어가면서, 철거는 곧 시작되었다.


오래된 단독주택은 필연적으로 많은 가설물 - 이라고 하고 불법 증축물이라고 부른다 - 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주택 면적으로 신고하지 않았지만 건축 후 임의로 지붕을 만들어 씌워서 실제로는 공간처럼 쓰고 있는 곳들이다. 희한하게 만들어서 작은 원룸으로 세 놓고 있는 곳도 종종 있다. 제대로 건축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냉난방에 취약하고 살기가 어려운 곳이 많다.


우리 집 옥상에도 원래 그런 가설물이 있었다. 일종의 온실이자 창고 역할을 하고 있던 곳이었는데, 예전에는 사용되었겠지만 집을 구매하던 당시에는 집 주인분이 연세가 많으셔서 사실상 거의 활용을 못하던 상태였다.


이것을 철거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이다. 불법 가설물이라고는 해도 사실 실생활에 유용하고, 공간을 확보하기에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를 해서 양성화하기도 한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우리 집에 불법적 요소가 있는 게 싫다'는 Y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양성화하면 불법 아닌데


철거 중인 불법 가설물. 저 가설물 세우는 데도 돈 많이 든다..


우리가 만나 보았던 건축가들의 의견도 사실 분분했다. 어떤 건축가는 신고해서 양성화한 후에 예쁘게 페인트칠을 해서 공간을 확보하자고도 했고, 어떤 건축가는 철거하는 것이 집의 디자인에 더 좋을 거라고도 했다. 사실 저런 증축물들은 다 철거를 해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건축가들의 의견은 반반이었다. 나중에 살다 보면 저런 곳이 필요해질 때가 오고, 그 때 다시 세우려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거다.




아무튼 철거가 결정되고 우리가 원한 것은 한 가지였다. 이 집의 기억이 될 만한 작은 조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남겨 놓았다가 나중에 새 집에 설치해 달라는 것. 


원래 우리 집도 아니었건만 왠지 로맨틱한 기분으로 우리는 건축 설계사에게 요청을 했다. 그는 「..새 집의 전체 디자인 컨셉과 그 조명은 좀 안 맞는데요」 라며 약간의 반대를 내비쳤지만, 결국 건축주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 조명은 공사 기간 내내 시공 사무소에 잘 보관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결론적으로는 사라졌다. 시공 담당 소장님이 「미안하지만 그 조명을 분실했다. 대신 더 예쁜 조명으로 무료로 달아주겠다」 고 사과 의사를 전해 왔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새 조명을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 조명이 우리 집에 훨씬 잘 어울리기는 한다..


철거하고 나니 호러 영화 세트로 쓰면 딱일 듯한 공간이 됐다


우리가 철거 작업 전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주변의 민원'이었다. 단독주택 건축이나 리모델링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주변 이웃들의 고의적 방해나 지속적인 항의, 보상을 바라는 민원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체험담을 너무 많은 읽은 탓인지 - 만약 그러면 어쩌지. 한우라도 사들고 옆집에게 찾아가야 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한우는 너무 비싸다는 어머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냥 소고기로 결정하기도)


실제로 쭉쭉 다 뜯어내고 부수고 쾅쾅 치는 공사 작업 중에는 많은 소음과, 그에 비례한 민원이 발생하게 된다. 나중에 시공 소장님에게 들은 바로는 약 2건 정도의 민원이 우리 집 공사 중에 들어왔다고. 찾아가서 사과드려야 할지를 물어보았더니, '공사 끝났으니 주민들한테 떡 돌리면서, 폐 끼쳤다고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도심의 단독 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에는 다들 크고 작은 공사를 할 수밖에 없고, 옆집이나 이웃집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곤란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시골 전원 지역에 비해 민원이 아주 강하지는 않다고 한다. 일단 마을발전기금 이런 게 없고 다만 우리 동네는 그 중에서도 민원이 적은 편이었고, 항의의 정도도 수월한 편이었다고. 동네 주민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 우리는 시루떡을 해서 몇몇 가까운 동네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며 공사 기간의 소음에 대해 사과했는데, 그 때의 얘기를 들어 보면 확실히 철거 때 며칠은 꽤 시끄럽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철거 뿐 아니라 목공 때도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고.




철거는 아주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공사가 시작하기까지는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우리 집은 흉물스러운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나중에 우리에게 집을 중개했던 부동산 사장님은  「이렇게 오래 공사 시작을 안 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나 (= 집 산다고 무리해서 공사할 돈도 없이 망했구나)」 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았고(!)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겨울에 공사를 하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설계를 바꾸고 견적을 조정하고 하면서 어느덧 봄이 왔다. 우리는 처음 겨울 공사를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초봄에 시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기(=공사 기간)는 높은 확률로 연장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이전 07화 거, 평당 얼마에 했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