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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Sep 03. 2020

분명 두 달이면 끝난다고 하셨잖아요

공사 기간은 어어어어, 하다 보면 길어지기 마련이다

2017년 초봄의 어느 날, 우리는 동네의 흉물로서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사고 있던 작은 집의 공사를 위해 첫 삽을 떴다. 아니, 사실 골조는 남아 있었기 때문에 첫 삽을 떴다고 말하는 건 다소 거창하지만, 당시의 심정으로는 정말 경복궁 재건이라도 시작한 듯한 비장한 마음이었다. 




우리 집에는 다행히 구조 보강은 없었기에 바로 배관 작업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집의 구조적 이유로 인해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면 보통 H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철골 기둥을 박아 집을 튼튼하게 떠받친다. 


우리도 1층의 중앙에 자리잡은 내력벽(= 건물의 골조가 되는 콘크리트 기둥)을 철거하고 H빔으로 보강하면서 공간을 더 확보할까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 비용상의 문제로 원래의 벽을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벽과 연결되는 외부 벽돌 일부를 노출시켜서 나름의 인테리어 효과를 줬다.  


뒤의 벽돌을 노출시키긴 했는데 책에 가려져 잘 안 보인다..


난방관, 수도관이 설치되고 뭔가가 점점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엄청나게 들뜨기 시작했다. 이제 곧 새 집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여름이 되기 전에 입주가 가능하겠구나 :)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당시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이미 빼고 시부모님댁에 얹혀 살고 있었다.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집이 하나 더 있다거나 하는 큰 행운이 있지 않는 한,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에는 남의 집 더부살이 혹은 숙박업소 신세를 지게 된다. 국내의 주택 임대 시장 특성상 일반 주택의 단기 임대가 그리 많지 않고, 있다 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곳인 경우가 많다 보니 선택지가 제한되는 편이다. 


그리고 짐을 보관할 곳도 생각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집도 나름 미니멀하게 산다고 생각했건만 - 남편 Y가 들으면 화들짝 놀랄지도 - 짐이 끝도 없이 나왔다. 물론 짐의 경우에는 비용을 따로 주면 외곽의 대형 창고에 보관이 가능한데, 책이 많다 보니 겨우내 곰팡이가 피거나 할까봐 걱정도 많이 되었다. 


결국 시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결혼 전 남편이 쓰던 방에 짐을 모두 옮기고, 우리는 남은 방 하나를 빌려서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다. 덕분에 엄청 비용을 아꼈다. 


허나 결혼한 지 1년 정도 후에 집을 샀으니 사실상 신혼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셈.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고, 우리 또한 좋은 아들 내외로서 큰 문제가 없었다. 약 3개월, 그러니까 겨울까지는


설계 수정이 많아지고 견적 조정이 오래 걸리게 되면서, 네 사람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비용 걱정, 진척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 그리고 직장 스트레스까지 겹쳐 우리는 점차 예민해져 갔고, 아들을 결혼시킨 뒤 평안한 노후를 겨우 1년 보내신 부모님은 되돌아온(!) 아들에다 며느리까지 챙기며 사는 생활에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 작업 전(좌), 작업 후(우)


배관이 끝나고 나면 시멘트를 부어 바닥 작업을 시작하는데, 소위 '공구리(= 콘크리트)'라고 불리는 작업이다. 이 때만 해도 꽤 괜찮았다. 작업 속도는 빨랐고, 자재들도 착착 들어오고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시간 날 때마다 현장에 가서 이것저것 찍으면서 살펴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장 작업자들에게 꽤 신경 쓰이고 귀찮은 존재가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멘트 바닥이 깔렸는데 그 이후 진척이 없어 보였다. 분명 지난주에도 바닥은 멀쩡히 있었는데 어째서?! 의문을 가지며 우린 현장을 서성거렸다. 기웃거리는 건축주 방지를 위해서인지 현장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혀 있었고, 우리는 답답함에 일정을 체크해 보았다. 


걱정 마세요. 날씨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있어요. 


생긴 것과 달리 시멘트는 예민한 자재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비가 계속 오면 소위 '양생(= 시멘트 말리기)'이라는 작업이 잘 안 될 수가 있다. 변덕스럽게 추웠다 따뜻해졌다 하면서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때문에 양생이 오래 걸리고, 바닥이 마르지 않으면 벽의 목공 작업이 시작이 안된다는 것이다. 다들 봄에 시작하는 공사라면 순탄하게 풀린다고 하던데, 날씨가 모양이면 그렇지도 않은 하다. 


전기가 들어온다. 생각해 보면 별걸 다 찍고 다녔다..


겨우 시멘트를 달래서 말리고, 배선 작업 후 목공 작업으로 진행이 된다. 목공이 시작되고 나면 확실히 5부 능선을 넘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 



정말 잘 하시는 기술자가 있는데, 그 분이 하필 사고가 나서요.


타일 작업은 정교한 기술, 섬세한 작업 실력을 필요로 한다. 여러 종류의 작업자 중에 전기공과 타일공이 받는 시간당 비용이 꽤 높은 축에 속하는 것으로 들은 바 있다. 그만큼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게다가 욕실과 화장실, 부엌까지 타일이 들어가는 곳은 꽤 많고 심지어 우리는 나름 신경 써서 두 가지 색상의 조화를 이룬 타일을 정성스럽게 골라 둔 뒤였다. 


「 다른 분을 모실 수도 있지만, 정말 실력 차이가 확실히 나거든요. 」  안타까워하며 시공 소장님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고, 우리는 그저 그 분이 빨리 회복하셔서 작업에 복귀하시고, 우리의 타일을 예쁘게 발라 주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부가 둘 다 무교라 그랬을까, 우리의 기도는 어느 하늘에도 닿지 않았고 기술자분의 예후는 좋지 않았으며, 기다린 보람 없이 우리의 타일은 다른 기술자의 손에 맡겨져야 했다. (다행히 얼마 후 잘 회복하셔서 곧 현장으로 오실 수 있었다고- 다만 우리 집은 끝난 뒤라는 게 아쉬움)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요소들로 공사가 늦어지면서 우리는 초조해졌다. 우리 뿐 아니라 부모님도 초조해졌다. 저 놈들이 얼른 나가야 하는데 부모님댁에 얹혀 사는 게 아니었다면 비용이 계속 나가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가 되었을 터였다. 


결국 시공 소장님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정말 죄송한데요, 부모님댁에 조금 더 계실 수 있으세요? 」

「 아니, 분명 두 달이면 끝난다고 하셨잖아요 ㅠㅠ 」


이미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차 오른 우리는 거의 울먹거리는 심정으로 공기(= 공사 기간)의 연장에 관한 의논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숙박 업소에 지낸다고 할 걸. 그러면 우리 현장 공사 기간을 좀더 신경 써 줬을까 - 근거 없는 의심까지 해 가면서 말이다. 


공사 기간의 연장 뿐 아니라 우리를 괴롭힌, 정확히 말하자면 Y를 괴롭힌 요소는 또 있었다. 

'집 고치다가 남편이 울었다'로 이어집니다.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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