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Sep 29. 2020

집 고치다가 남편이 울었다

아니, 나도 울고 싶은데 선수치지 마라

우리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훨씬 많이 공부를 한 것도 남편인 Y였고, 고생을 한 것도 Y였다.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그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인 리모델링을 시작하고 그 공정을 좇아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Y의 친구들은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게 더 놀랍다고 했다


나의 경우 전체적 비용의 규모, 중요하게 생각한 몇몇 가지 - 단열재나 서재 선반 수종(= 나무 종류), 싱크대의 색감 등에만 신경을 썼다면 Y는 리스트의 수많은 항목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가면서 관리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예산을 조정할 때 깨달았듯이 아마추어가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참고글: 단독주택 고치는 데 대체 얼마가 듭니까?)




#1. 곰팡이 때문에 잠이 안 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꽤 여러 번, 우리는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회사 일도 너무 힘들고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라서,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집을 보는 것이 유일한 힘이었다. 철거를 하고 나서 한동안 우리 집은 작업이 홀드되어 있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주변을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철거된 곳곳을 살펴보고 있던 Y가 「 이게 뭐야! 」 라며 비명을 질렀다. 급히 가 보니 창틀 근처의 벽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래된 집의 벽에는 곰팡이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주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철거를 해 놓은 상태였으니 벽의 곰팡이를 제거하고 그 위에 석고 보드 작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곰팡이가 벽에 있던데, 벽 작업 전에 제거 좀 해 주세요. 」  시공 업체에 요청을 하고, 그 이후로 몇 번 현장에 갔는데 곰팡이는 제거가 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번 더 얘기를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곰팡이 제거까지 하는 것이 시공 업체의 일이 맞나? 하지만 저 상태에서 계속 곰팡이를 방치하면 나중에 벽 작업 후엔 돌이킬 수 없게 될 텐데. 나중에 방에서 자고 있는데 벽에서 피어오르는 곰팡이를 보게 되면 어쩌지?!


온갖 걱정에 몸부림치다가 Y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 되었고, 급기야는 스스로 그 곰팡이를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곰팡이 제거액을 분무기에 담고, 마른 걸레를 준비하고, 현장에 슥- 들어갔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나서 Y가 어찌나 편안하게 잠을 자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금고를 뜯어내는 도둑같은 건 확실히 기분 탓이겠지


#2. 결국 소장님과 다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창 예민해져 가던 공사 시즌 중후반기, 결국은 쌓여 왔던 건축주와 시공 담당자의 불만이 폭발하고 만 사건이 터졌다.


단독주택에서 사는 어려움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겨울의 추위다. 단열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집이 오래되어 외부의 공기를 잘 막아주지 못하면 주택은 엄청 추워지게 마련.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다가 단열이 더 잘된다는 외단열을 선택했다.


외단열은 간단히 말하자면 건물의 외벽에 단열재를 붙이고 그 위에 마감재를 바르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단열재에 틈이 없어야 밀폐성이 좋아서 단열이 잘 된다고 한다. (참고글: 단독주택 고치는 데 대체 얼마가 듭니까? - 난방에는 돈을 많이 써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외벽에 붙은 가스 검침기였다. 가스 검침기를 뗄 수는 없고, 검침기에 틈 없이 단열재를 붙이기란 어려우니 그 부분만 단열재를 잘라 내고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검침기가 커버 있는 박스 안에 들어갈 것이고 박스를 둘러싸는 부분에는 다 단열재를 붙인다는 것.


「 그러면 커버 박스와 단열재 부분 사이에 온도 차가 생기고, 거기서 결로가 생겨서 곰팡이 - 또 곰팡이! - 가 생길 수 있대! 」  Y는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이 부분에 대해 시공 소장님과 의논을 시작했다. 소장님은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답답해 했지만, Y는 그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고 계속 의논을 이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이팅을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다툼까지 일어났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운했던 부분들까지 서로 다 쏟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문제 자체는 단열재 안 붙이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합의는 되었지만 Y와 소장님 사이의 감정은 이미 상해버렸다.


처음 봤을 때 충격받아서 찍어놓았다. 근데 박스 씌우니 그냥 멀쩡함..


#3. 잘 안 될까봐 너무 겁이 났어


결국 쌓여 왔던 스트레스가 터진 Y는 공연히 시공 담당자와 싸우기까지 했다는 생각에 매우 울적한 저녁을 보냈다. 하도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기에, 부모님 댁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가 눈치 보여서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산책을 함께 나갔다.


「 지금 우리 둘 다 괴로운 걸 버티면서 일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 우리한텐 정말 큰 돈이 들어갔고 중요한 이 집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스트레스가 심했어. 내가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때때로 들었지만 여기서 대강 넘어가면 결국 우리의 돈과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 체면을 차리자고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무 힘들긴 해.. 


전혀 모르는 분야를 파고 들어 공부하면서, 꼼꼼히 따지고 설득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Y의 눈가에 눈물까지 살짝 맺혔다. 물론 나도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고는 있었지만, Y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줄은 몰랐기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근데 나도 울고 싶다고 


우리는 서로를 토닥이면서 마지막 힘을 내자고, 곧 모든 게 잘 끝날 거라고 위로했다. 그래도 많이 진행이 되었으니 조금만 더 버티자, 공사가 끝나고 입주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진 않았다. '이삿날인데 냉장고가 문에 안 들어가요!'로 이어집니다.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이전 09화 분명 두 달이면 끝난다고 하셨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