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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Jul 18. 2020

인복의 결정체, 건축 설계사 고르기

내 연간 행운의 20%는 썼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집 밖으로 나와서 대문을 닫는데 하얀 자가용 하나가 멈춰 섰다. 징- 하고 차창이 열리더니 조수석에 있던 여성 한 분이 이 쪽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 집이 너무 예쁜데, 이 집 주인이세요? 고치신 거에요? 」

「 네, 골조 빼고는 모두 수리했어요. 」 (단순히 네, 로 끝날 수 있는 질문이었건만 왠지 집에 대한 물음을 받으면 마치 공부 잘하는 자식의 성적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괜히 긴 대답을 하게 된다.)

「 두 분이서 하신 거에요? 건축 쪽 전공이세요? 」

「 아뇨, 저희는 건축 설계사랑 같이 했구요. 」

「 어머, 건축 설계사도 껴야 하는 거구나. 많이 비싸죠? 」

「 저흰 그래도 좀 싸게 했어요. 시공이랑 같이 했거든요. 」

「 어디랑 했어요? 소개해 주실 수 있어요? 얼마쯤 들어요? 」


빠앙-! 그 때 길을 막아선 그 자가용에 대한 항의 표시로 뒤의 차량이 경적을 울렸다. 그 여성분은 물어볼 게 한가득인데 너무 아쉽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차창을 올렸다.




사실 저 짧은 대화 안에 우리가 처음 집을 고치려고 마음 먹었을 때의 질문들이 다 들어가 있다. 건축사를 반드시 둬야 할까? 한다면 어디의 누구랑 할까? 얼마나 비용이 들까?


○ 우선 건축사를 반드시 두어야 하는가?


우린 처음부터 건축 설계사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단독 주택에 대한 수많은 글과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고민과 분쟁이 '시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결국 그 시공의 문제는 부실한 설계에서 온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실한 설계는 보통 설계비가 아까워서 제대로 된 건축사에게 맡기지 않고 허가/신고 정도만 대행해 주는 곳의 대강 그린 도면을 받아 '평당 얼마'에 합의한 견적서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된 건축사와 해도 집을 짓거나 고치는 것은 결국 고생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10년 늙느냐 3년 늙느냐의 차이는 크다. (100세 시대라 괜찮나)


또한 건축사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히 안전하고 안심이 된다. 특히 관할청과의 인허가 문제 등을 명확하게 정리 및 관리해 주고,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추천해 주기도 하며, 외/내부의 안전, 법규의 위반 여부도 체크해서 설계를 하기 때문.


○ 그러면 어디의 누구랑 할까? 얼마가 들까?


여기가 인복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건축 사무소는 서울에만 해도 매우 많고, 각자의 포트폴리오나 중점 건축도 다르다. 우선 우리는 단독 주택, 특히 시내의 작은 규모 주택들을 작업한 건축사 위주로 찾아보았다. 지금은 좀더 많아졌겠지만, 당시에도 생각보다 많은 건축사들이 있었다.


누가 건축을 했는가도 사실 건물의 가치에 영향을 준다. 유명한 건축사가 지었다면 건물의 가치도 - 그리고 설계비도 - 함께 올라가기 마련.


실제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메일을 많은 건축사에게 보냈다. 우리의 계획/컨셉과 원하는 집의 분위기와 마감재, 참고 컷을 넣은 PPT 파일도 함께.



절절함이 느껴진다


한정된 예산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 줄 건축사를 찾다 보니 마치 채용을 위한 선택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몇몇 건축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규모는 안 한다 ('이 정도의 경력으로는 뽑을 수가 없군요'), '흥미롭지만 프로젝트가 많이 밀려 있어서 일정이 어렵다 ('귀하는 훌륭하나 한정된 자리로 인하여..'), '그 정도 예산이라면 소규모 리모델링으로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기획자는 뽑지 않지만 운영에 자리가 있습니다'), 혹은 회신 없음(공고에 지원했으나 꿩 구워먹은 소식) 등등.


물론 뜻밖에도 우리가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 정도 규모는 안 해 줄 거야, 보내나 보자'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해 와서 들떴던 적도 있었고, 우리의 계획을 보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준 곳도 있었다.


보통 메일에는 주택의 위치(많은 건축사들은 킥오프 미팅 전에 임장을 미리 가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강의 예산(최소-최대 범위), 집에서 원하는 것, 입주를 원하는 시기 등을 포함하면 좋다.


많은 건축사들 중에서 우리가 최종으로 추린 건축사 후보는 다섯 곳이었다. 모두 미팅을 했고, 그 중에는 친지의 소개도 있었지만 대부분 직접 연락하고 회신을 받은 곳이었다. 아래는 우리가 선택을 위해 그렸던 기준표이다. 5가지 항목이 주요 기준이었고, A는 5점, B는 3점, C는 1점을 주었다.


참고로 시공팀이 같이 있는가도 처음에 생각한 기준이었지만, 만나 보니 다섯 건축사 모두 같이 일하는 시공팀이 있었기에 -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 기준에는 빠져 있다.


머리를 싸매며 만들었던 기준표와 점수. 도움이 꽤 되었다.


1. 비용 : 설계비는 천차만별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적게 부르는 대신 가설계 비용이 별도인 곳도 있었고, 적정한 비용이었지만 그들의 시공팀과 함께 하는 조건으로 설계비를 깎아주는 곳도 있었다. (건축 규모에 따라, 현장 상황에 따라 설계비는 달라지므로 반드시 문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2. 인상 :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총괄해 줄 사람인데, 일단 호감도가 중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설계 단계의 변경에 대해서 얼마나 잘 받아들여줄까, 같이 협의해 나가기가 수월한 사람일까, 하는 문제였다. 다소 비과학적인 부분이지만 의외로 우리가 집중했던 포인트.


3. 디자인 : 우리 집을 직접 보거나 적어도 네이버 지도뷰 등을 보고 어떻게 고치면 좋겠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져온 건축사, 그리고 그 전체 아이디어가 우리의 컨셉과 잘 맞고 마음에 드는가의 문제. 대수선까지 필요 없다는 건축사도 있었고, 기존 집을 잘 유지하되 세련됨을 주자는 쪽도 있었으며 우리가 원하는대로 수선을 해 주되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쪽도 있었다.


4. 성의/열정: 인상과 비슷한 듯 다르다. 심지어 킥오프 미팅 단계에서 스케치업이긴 하지만 작은 모형을 만들어 오신 건축사도 있었다. 결국, 그 분과 하게 되었지만 :)


5. 입주 일정: 이미 살고 있던 전세집은 뺐고, 공사 기간에는 시댁에 잠시 얹혀 있어야 했던 우리는 최대한 빨리 입주를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겨울 공사를 하게 된다는 점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계속 더부살이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정을 빨리 맞춰 줄 수 있는 점에도 가점을 주었다. (그러나 인생은 예측 불허, 결국은 겨울 내내 설계 변경을 했고 공사는 따뜻한 봄에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하게 된 곳은 다소 낭만적인 이유였다. 우리 집의 가능성을 좀더 보아 주고 우리 집을 예쁘다고 해 주며 마음에 들어 한 곳. 마치 자식을 사회에 내보낸 부모의 마음과도 같은 걸까?




결과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다시 집을 짓게 된다고 해도 이 건축사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선택은 좋았던 것이 아닐까. 물론 건축사분이 우리와 다시 하고 싶어할지는 다소 미지수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약간 안 하고 싶어하실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비용을 조정하고 설계를 협의하면서, 우리의 숨어 있던 집요함과 신경증을 발견하게 된다.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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