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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Jul 04. 2020

이제 이 집으로 무엇을 할까?

야심찬 계획을 세우다, 한치 앞을 모르고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단독 주택을 샀단 말이오? 그 집으로 무엇을 하려오?"

"그저, 이 집 하나가 갖고 싶었습니다. "

- 《은전 한 닢》 을 보고


아니, 그저 갖고 싶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사실은 많은 계획이 있었다.


이 때가 가장 즐겁고도 골치 아픈 단계다.

물론 더 골치 아픈 단계는 많다. 그러나 이 때만큼 즐거운 단계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택을 사고 짓고 고치는 것은 전반적으로 골치 아픈 일이라는 합리적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이 단계를 잘 즐겨두자.


#1. 집의 모양을 관찰한다


우리가 선택한 집은 땅 면적은 작지만 평지에 네모 반듯한,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다가구 주택이었다. 반지하가 있고, 1층은 약간 땅에서 높이 올라와 있으며 내부에는 복층으로 구성되어 계단이 있는 집. 그리고 2층에서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있었다.


고치기 전의 집. 다소 낡았지만 이 상태로도 꽤 예뻤다.


이 집은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으나, 하나의 아쉬움이 있었다. 원래 생각했던대로 1층에 상가를 구성하고 2층에 거주하는 형태는 어렵다는 것.


반지하가 있다고 해도 반지하의 입구가 도로 쪽으로 나 있지 않으면 상가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연남동의 골목 등에 많은 반지하 상가들은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 쪽으로 입구가 나 있거나 일부 개조한 형태. 우리 집의 반지하는 세입자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라 입구가 대문 안쪽에 있었고, 집을 완전히 다시 짓지 않는 한 도로 쪽으로 반지하의 입구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예 다시 지을까, 혹은 이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방향을 모색할까를 고민했다.

도심의 노후 주택을 선택했을 때 새로 짓거나 수리하거나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지을까, 고칠까'에 별도로 쓸 예정.


결과적으로는, 이 반듯한 집의 모양과 이왕 잘 만들어진 내부의 복층 구조를 건드리기는 아깝다는 - 그리고 건드리려면 돈도 많이 든다는 - 결론에 봉착했다. 그래서 잘 고쳐서 쓰는 걸로 결정.


고치고 난 후의 집 모습


#2. 집의 내부 구조 그려보기



당시 고민의 흔적들이 수첩에 가득 남아 있는데, 이 그림도 그 중 하나다. 외부 모양에서부터 내부의 구성까지 대강 그려 보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야망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 와중에 이 모든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던 Y의 호러룸은 사라졌다.. (참고글: 시작하다)


우리의 포인트는 명확했다.


1층은 서재 겸 거실로 구성한다


항상 꿈꾸던 공간이 옥스포드 유니언 라이브러리(Oxford Union Library)였는데, 물론 그 규모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될(아니 그보다 더 작을 듯) 규모지만 일단 서재를 구성하고자 했다.


한쪽 벽면을 모두 책꽂이로 구성하되, 책만 꽂지는 않았다. 사진집 옆에는 카메라를 둔다든지, 펭귄북스에 관한 책 옆에는 펭귄 엽서 컬렉션, 홍차에 관한 책 옆에는 찻잔과 홍차 틴을 두는 식으로 관련된 물건과 섞어서 배치했더니 나름 재미가 생겼다.

다만 책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밑판이 될 나무는 두껍고 좋은 것을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우리가 사용한 나무는 애쉬(물푸레나무)였고, 두께는 3cm 정도 되는 것을 썼다. 이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나의 로망, 옥스포드 유니언 라이브러리


주방은 최소한으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주방은 작게, 기본적인 기능만 넣었다. 주로 간단한 요리, 혹은 반조리 식품을 데우거나 차를 우리는 용도로만 활용하는 편이라 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신혼 때 샀던 냉장고는 어찌나 큰지, 실제 주방의 1/3을 냉장고가 차지하는 듯.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고려한 후에 가구와 가전을 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상부장은 없앴고, 대신 후드를 제대로 달았다. 집에 음식 냄새 나는 건 싫으니까.

원래 키친 싱크대와 장은 이케아의 '보드뷘'을 고려했었다. 웨인스코팅으로 포인트를 준 찬장 문과 원목 상판이 너무 예뻐보였다. 꺅, 북유럽 스타일, 쿨해 보여! (그러나 여긴 북유럽이 아니다)


지금은 이케아 키친 설치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피땀눈물을 통해 겪고 나서) 공유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몰랐다. 심지어 설치비 고려하면 그렇게 싸지도 않다. 그 때 건축 설계사와 함께 일하셨던 가구 디자이너님이 우리가 불쌍했는지 제안해 주셨다.


"원하시는 포인트랑 메인 색상 얘기해 주시면 맞춰서 그 스타일로 만들어 드릴게요. 이케아 설치비 합하면 큰 차이도 안 날 거에요" 결과적으로는 이케아보다 쌌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너무 만족하며 쓰고 있다. 감사합니다.


단독 주택이라면 프라이빗 시어터지!


하아. 이걸 구성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여기에서의 함정은 사실 별로 싸지도 않았다는 것.

하지만 생각만큼 비싸지도 않았다. 그러나 만족도는 아주 높은 데다가 활용하는 빈도도 매우 높다. 얼마나 높았으면 보통은 5년 쓴다는 프로젝터 렌즈를 2년만에 갈아야만 했다. 게다가 하도 앉아서 놀았더니만 소파가 많이 꺼졌다..


나름 구체적으로 그려 보았던 1층의 구조. 외장 스타코에 꽂혀 있던 시절.


나는 실천 못했지만 - 단독 주택이 처음이라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 혹시 집을 새로 짓거나 크게 수선하려는 분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점은 이거다. 고집 센 우리 부부는 건축 설계사의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전반적으로 옳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옳았던 말이기도 하다.


여유 방을 만들라


현재로서는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특별한 목적 없는 '여유 방'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것. 손님방으로 만들어도 좋고, 취미룸을 만들어도 좋고, 나중에 집에서의 작업실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의 방이 되기도 한다.


규모의 문제도 있었지만 우린 딱 원하는 공간들만 구성해서 집을 고쳤다. 그러다 보니 살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도전이나 필요가 생겨서 공간을 구성하고 싶을 때 확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게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규모와 자산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여유 방은 꼭 만드시길.


이제 계획은 섰다.

그러니 정말 나를 제대로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디서,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찾을 것인가? 그리고 돈은 얼마를 줘야 할까?


* 매거진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oldseoul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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