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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Jul 26. 2020

길고양이는 귀엽지만 이건 사양할게요

눈맞춤의 놀라운 위력에 관하여

단독 주택에 살다 보면 익숙해져야만 하는 많은 불편들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거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은 길막 주차 문제, 창문의 모든 틈새를 막았건만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각종 벌레들, 내가 치우지 않으면 아무도 안 치워 주는 집 앞에 쌓인 눈, 몰래 집 앞에 버리고 가는 불법 쓰레기,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흔적을 분연히 남기고 다니는 길고양이들.


이번 글은 그 중 최근에 우리 부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한 마리의 치즈냥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한 묘사는 없지만 식사 중에는 일독을 피하시길 권합니다.


언젠가부터 수상쩍은 기운이 있었다. 작디 작지만 나름의 만족스러운 성과물을 내고 있던 현관 근처 민트 화분의 이파리가 어느 샌가 부자연스럽게 찢겨져 있곤 했다. 오래된 잎이라 자연스럽게 비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것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분명히 누군가가 찢어 먹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 길고양이가 뜯어먹었나봐.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은 일부러 캣닙(catnip)같은 걸 두기도 한대.」


캣닙. 처음에 단어를 들었을 때는 영어가 아니라 '깻잎'인 줄 알았다


길고양이 후원도 따로 하고 있을만큼 고양이에게 나름 후한 Y는 '그 놈, 한 번 봤으면 좋겠다' 등 일면식도 없는 고양이의 귀여움을 상상하며 흐뭇해했다. 아마도 두어 마리로 추정되는 그 고양이(들)은 가끔 우리의 텃밭을 헤집는다든지, 민트를 뜯어먹는다든지 하는 소소한 흔적을 남기며 우리 집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한 번도 우리 눈에 띈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문득 Y의 비명이 들려 왔다.


「 으앍, 이게 뭐야! 」


두둥. 웬걸, 고양이가 똥을 남기고 갔다. 으음, 그것도 매우 청소하기 어려운 지점에, 마치 보란 듯이.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고 들었기에, 이렇게 냄새를 남기고 가는 경우 여기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라던데. 동물에 대한 짧디 짧은 지식으로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여기를 자신의 화장실로 계속 생각하면 어쩌지?!


평소의 고양이 사랑♡과는 상관없이, Y는 그 장면을 목격한 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키우는 것도 아닌 동물의 똥을 치워야 하는 것도 그렇고, 외부이기 때문에 비가 올 경우 근처가 지저분해지는 것도 깔끔한 Y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걱정을 모두 남편에게 맡긴 나는 '어이쿠 저런, 어쩌나(멍-)' 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 이런 고통을 이미 겪은 동지들이 있으리라. 단독 주택 생활자들의 게시물들을 찾아보니 여러 솔루션이 제안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향의 스프레이를 근처에 뿌리라거나, 고양이가 보통 보송보송한 흙과 먼지가 쌓여 있는 곳을 화장실로 많이 사용하니 먼지가 쌓이기 전에 치우라거나, 담을 높게 쌓으라거나 (아니, 그런데 고양이가 못 뛰어 넘을 만큼의 담을 쌓으려면 대체..), 고양이는 냄새로 자기 영역을 탐지하니 다른 곳으로 그것을 옮기라거나(그러나 그럼 그 집도 곤란해지겠지) 이런저런 나름의 방법들.



동네 근처의 이런 냥이들일까?


'퇴치 방법'을 적용해 보자니 본격적으로 고민이 되었다.


「 생각해 보면, 내가 근처 길에서 보고 귀엽다고 느꼈던 고양이들 중 하나가 아닐까? 」

「 그럴 수도 있겠지. 보통 우리가 먹을 것도 안 주면서 귀여움만 취했던 애들. 」

「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미안하기도 한데.. 」

「 아니 그래도 계속 여길 화장실로 쓰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얼굴 한 번 못 본 고양이의 집사로 똥 치우면서 살 순 없다고 」


그렇게 망설이던 중, 그 정체 모를 고양이(들)은 두어 번, 우리 집을 화장실로 쓰고 갔다. 그때마다 Y의 고통이 더욱 심화되어 갔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 자식,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퇴치법을 한 번 쓸 테다, 벼르고 있던 어느 저녁이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을 열었을 때, 다소 비현실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필드같이 노랑과 흰색이 섞인 치즈냥 한 마리가 집의 입구 쪽 - 고양이의 화장실로 사용되던 바로 그 지점! - 에서 가만히 이 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고양이였고, 의외로 꽤 날씬하면서도 깔끔했다. 워낙 정갈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 처음에는 무슨 인형인가 했다.


약간 이런 느낌. 물론 자세는 달랐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쪽을 보면서 앉아 있길래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슬쩍 다가섰다. 그러자 재빠르게 일어서서 후다닥, 달아나 버렸다. 오오, 귀엽다! 생각하며 Y를 불러 도망간 쪽으로 함께 가 봤다. 멀리 달아나진 않고 멈춰 서서 이 쪽을 가만히 쳐다 보고 있다. 왠지 좀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범죄(?) 현장을 목격당한 자의 눈빛같은 건가. 그러다가 달아나 버린다.


눈맞춤의 힘인가, 왠지 우린  고양이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급속도로 줄어든 것을 느꼈다. 이러다가 우리가 고양이를 거두어 키우게  일은 없겠지만, '인연을 맺는다'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보게 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제발 치우기 힘든 거기에는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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