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왔던 것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해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현대인들이 왜 불안을 느끼고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해 분석해 설명한다. 불안의 원인 중 하나로 ‘기대’를 꼽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대는 현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평등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우리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비교와 불만을 가진다. 예를 들면 영국의 귀족이 성공을 했다 한들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반면 내 동창 친구의 성공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지 못한 나의 상태에 대해 불안을 느끼게 된다. 과거 평민들은 귀족과 비교해 본인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인이 평등하다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나보다 성공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불안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추구해온 가장 훌륭한 가치 때문에 행복하지 않게 된 셈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너는 어차피 여자이니 공부를 좀 덜해도 된다거나, 남자보다 더 잘할 필요가 없다’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세대이다. 이 세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기대해온 것은 남성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꿔온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장래 희망을 전업주부로 삼고 공부한 전업주부가 몇 명이나 될 것이며, 그나마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도 아이를 낳은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꿈과 사회생활을 여러 방면으로 축소시키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더 끔찍한 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 벌레’가 되어 있을 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러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여성들의 자괴감은 그들이 기대해 왔던 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상 요즘 세대들의 이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 역시 자신은 왜 우리 어머니들이 감당해온 것만큼 희생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나 불만이 많은 것인지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여자라서 남자보다 덜 공부한 적이 없거나, 여자라서 남자보다 덜 일해본 적이 없는 여성일수록 이러한 불행은 더 크고 깊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인가. 남성들 역시 그동안 해오던 대로 또는 남들이 하는 대로 했을 뿐인데, 때로는 남들보다 더 잘한 것 같은 데도 ‘엄마 벌레’가 된 아내에게 영문도 모를 구박을 당하게 될 줄을 설마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바로 이들의 어머니이다. 자신은 오빠, 남동생, 남편, 또는 시동생에게 양보해 왔던 자아실현의 기회를 자신의 딸들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키워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가 결국 또 한 번의 양육의 굴레일 것이라고 누가 기대했겠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기대해온 것에 미치지 못하는 이 당혹스러운 현실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기대에 대한 좌절보다 더 큰 행복을 준다고 느끼는 사람들만이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줄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공식을 제시한다. ‘행복=성취해낸 것/기대한 것’.
이 공식에 따르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내거나 기대를 줄이는 것이다. 그럼 이 사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엄마 아빠와 할머니들이 기대해온 것들을 성취하게 해주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사회생활과 자아실현에 제약이 없어야 하며, 만약 있다고 해도 엄마와 아빠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할머니들은 양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안락한 노후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딸들의 행복을 위해 기대를 낮춰주는 방법이 있다.
당신의 딸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이렇게 권하라.
“딸아, 너는 어차피 아이를 낳아 기를 몸이니 적당히 하거라. 이제 그만 책을 덮어라.”
** 이 글은 2018년 11월 18일 국제신문 메디 칼럼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81119.22025007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