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나는 그곳의 자연과 기후, 그리고 역사에 매료되어 몇몇 지인에게 여행이나 이민을 권유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너무 위험한 곳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바로 그곳의 총기 사망사건과 사고 때문이다. 인구 5300만 인 남아공의 총기 살인사건은 심각한 수준으로, 작년 한 해 1만 7805명이 숨졌다. 이는 매일 49명이 총기로 살해된 꼴이다. 가히 전쟁터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지구 상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참혹한 전쟁터가 있다.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OECD의 2015년 건강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었다. 이는 2위 헝가리(19.4명), 3위 일본(18.7명)과 비교해 압도적이고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보다 2.5배나 높은 수준이다. 자살과 총기 살인, 또는 전쟁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실제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같은 기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와 비슷하다. 2013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는 1만 5000명 정도로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1만 5000여 명과 같다. 또 한국에서 2007~ 2011년 5년간 자살 사망자 수는 7만 2000여 명으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 이라크 전쟁 사망자 수(약 3만 9000명)의 두 배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을 전쟁터라 비유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자살문제가 더욱 비참한 것은 세계 유례없는 가족동반 자살의 형태이며, 청소년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장이 그 고통을 자녀도 평생 벗어날 길이 없다고 비관해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형태를 종종 본다. 또 OECD 31개국에서 지난 10년간 청소년 자살률이 15.6% 감소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오히려 47%나 증가해 10만 명당 9.4명에 이른다. 청소년의 자살 원인은 대부분 성적·경제·가정불화 문제이다. 그런데 이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쟁사회,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의 부재에 있다. 경쟁사회에 내몰리면서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절망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낸다. 공부 잘하던 외고생의 자살 이야기를 그린 '엄마, 이제 됐어'라는 웹툰은 오랫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는 중학생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대부분의 어른이 매일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이 무척 행복하거나 자아실현의 꿈을 이뤄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어도 눈앞에 떠오르는 자녀들 생각에 매일매일을 버텨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낸 윗세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 또한 오직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가며 그 어려운 시절을 버텨왔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자녀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온 것은 아닌지 이제 잠시 달음박질을 멈추고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에서 나와 내 자녀가 이기는 줄에 설 수 있을 거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붙잡기보다는, 꼭 이기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모든 이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조금 일찍 귀가해 사랑하는 자녀를 꼭 안아주자. 내 마음에 행복이 충만할 때까지, 어리둥절하던 아이의 마음에도 행복감이 가득할 때까지. 그렇게 내 마음에 행복이 가득해지면, 슬픔과 고통을 겪는 이웃은 없는지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비로소 생기지 않을까.
** 이 글은 2016년 5월 2일 국제신문 메디 칼럼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