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D+16, POD2)
수술 다음 날 아침에 드레싱 한다고 앉혔는데, 너무 아팠다.
‘으아…. 진짜 수술 다음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앉히는구나.’
환자들에게는 수술 다음날 바로 걸어 다니기 (early ambulation)와 기침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무지막지하게 시켜놓고, 정작 나는 드레싱만 받고 꼼짝도 안 했다. 말을 진짜 안 듣는 3대 불량 환자가 있는데, 선생님, 목사님, 의사다.
누워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다 갔다. 우리 언니는 어제오늘 본 사람들이 자기가 3년 동안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수술을 받은 다음 날 빅뉴스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우리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다시 승인을 받았다. 사실 몇 년 전에 의료기관인증평가에서 이 ‘상종’에 떨어지면서 정말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 여파로 많은 교수들도 떠나고, 인턴 전공의와 펠로우가 줄줄이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당시에 나에게 ‘너는 언제 나올 거냐’고 물어본 사람들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곳을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제 다시 ‘상종’ 이 되었으니 모든 것들이 정상화되기를 소망한다.
또 하나 빅뉴스는 있는데 미국에 계신다는 PS 교수님이 우리 병원에 오시기로 하셨다. 참 신기했다. 얼굴도 뵌 적이 없고, 한국에 계신 것도 아니신 분이, 부산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신 분이 우리 병원에 오신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토요일 아침, 어제 상종 통과로 너무 기분이 좋으신 진료부장님이 커피를 사들고 오셨다. 내과 총무인 우리 남편과 함께 미국에 계신 PS 교수님과 스피커 폰으로 통화했다. 언제 오실 것인지, 무엇을 준비해 드릴 것인지를 상의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참 좋은 분인 것 같았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처음 나의 두 가지 기도제목을 모두 들어주셨다. 나의 기도제목은 첫째가 한 달에 천명이 넘는 예약 환자들을 봐줄 수 있는 의사를 보내달라는 것과, 둘째는 우리 아이들이 슬프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12월 말에 떠나기로 하셨던 K 교수님께서 여행을 떠나기로 하신 날까지 남아주시기로 하셨다. 교수님께는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 처음 소식을 들은 교수님은 그동안 고생을 끝내고 이제 홀가분하게 떠나려고 했는데, 마음에 얼마나 큰 짐을 느끼셨을까? 교수님의 아들이 ‘엄마, 전역이 연기된 말년 병장 같다.’고 했다고 한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김부경 교수 건강 잘 챙기세요. 일단 내가 하고 있을게요.’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멋진 분이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세계여행 중이시다. 지금은 아직 K 교수님과 펠로우 선생님이 이 많은 환자들을 다 떠안고 있지만, 3월 14일에 K 교수님이 떠나시고 나면 그 뒤는 어쩌나 걱정했는데, 얼굴도 뵌 적이 없는 분이 미국에서 오신다고 한다. PS 교수님은 2월 26일에 귀국하셔서 3월 4일부터 환자를 봐주시기로 하셨다. 이로써 첫 번째 기도에 대한 응답이 모두 이루어졌다.
두 번째 기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별 걱정 없이 행복했다. 평소에 내가 학회로 자주 집에 없어 엄마가 없는 것에 익숙하기도 하고, 늘 든든한 우리 남편이 아이들이 어떠한 슬픔도 느끼지 못하도록 아이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의 기도, 시어머니의 수고, 남편의 깊은 마음 그 모든 것 밑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풍 속에도 이토록 평안할 수가 없다.
사랑한다 말하시네
사랑의 주 내 안에 계시네
다함이 없는 주의 크신 사랑
세상에 없는 놀라운 사랑
그 안에서 나는 자유하네
날 살리신 주는 내 전부
나도 모르던 외로움과 슬픔을
내 주님은 다 아시네
이제 일어나 주를 보네
사랑한다 말하시네
어노인팅의 '사랑한다 말하시네' 찬양 링크입니다.
https://youtu.be/27bn51WFASE?si=f7TzBFVe56Q9j1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