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섬세 Sep 09. 2023

애정, 사랑보다 가벼운

작은 친절과 얇은 종이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존재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다. 나에게 사랑이란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는 감정을 넘어 약간의 낯간지러움과 무거운 책임감을 첨가한 마음이다. 소위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허락된, 그 사이에서마저도 큰 용기를 내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맘인 것이다. 사랑에는 내가 당신의 아픈 구석까지도 껴안을 것이라는 결심과 당신으로 인해 생긴 내 상처도 감내하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다.


반면 나에게 애정은 사랑보다는 조금 더 가볍다. 작은 친절과 미소, 따뜻한 시선, 행복의 기원을 모두 아우른다. 감정이 가볍다는 건 일면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가벼워서 좋을 때가 더 많다. 침잠하지 않고 수면 위에 산뜻하게 떠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닿는다. 사랑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이라면 애정은 볼을 따뜻하게 덥히는 힘이다.


작은 친절들이 켜켜이 쌓이는 나날들이다. 비가 쏟아지던 날 모르는 아주머니는 우산을 선물로 주셨고, 귀찮아서 그냥 쓰던 찢어진 수경 끈은 수영 선생님이 바꿔주셨다. 이미 졸업한 연구실 선배는 내 논문에 시간을 써주기로 했고, 동문회 지인이 나눠준 행사 입장권 덕분에 오랜만에 한강의 노을도 보았다.


애정은 종이와 같아서 내 마음에 아주 얇게 덧대어진다. 한 장씩 보면 별 거 아닌데, 작은 행동과 말들이 여러 겹 쌓이며 두꺼워지니 쉽게 부러지지도 찢어지지도 않는다. 아주 단단하고 질기다. 덕분에 가벼운 무심함을 이겨낸다.


나도 당신에게 애정을 건네고 싶어 다정한 인사와 미소를 준비한다. 애정이 층층이 쌓여 당신 마음도 조금은 더 따뜻하고 단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과 외로움과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