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것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평생 갈 줄 알았던 인연이 사소한 일로 틀어진다든가, 타인에 대한 애정이 동전 뒤집듯 미움으로 바뀐다든가 하는 것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때로 우울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셋은 끈적하게 얽혀있어서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뭉뚱 그러져 있다. 애써 모른 척하려고 해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내 감정의 원인과 형태를 선명하고 기민하게 느끼고자 노력했던 순간들이 원망스럽다. 내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면 우울과 외로움은 생각과 감정의 길을 통제한 채 거대한 등을 돌리고 앉는다. 얘기 좀 하자고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내 손에 불쾌하고 끈끈한 점액만 묻어날 뿐이다. 나도 결국 지쳐 주저앉는다.
그럴 때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잠시 나로부터 벗어난다는 감각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 자극은 온전히 나를 잊고 몰입하기가 어렵다. 배우의 대사 사이 공백에, 배경의 빈틈에 딴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하지만 책과 글은 다르다. 촘촘한 까만 글씨 뒤를 탐닉하다 보면 숨통이 트인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몇 번씩 소리 내어 읽어본다. 점차 뒤끓던 감정이 가라앉고 호흡이 편안해진다.
어쩔 수 없는 것들과 외로움과 우울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