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에 빠진 50대 아줌마 이야기
그 전엔 관심도 없었다. 친한 지인이 딸과 함께 BTS 투어를 다니고, 그곳에서 아미(ARMY)를 만나면 서로 BTS와 관련된 기념품을 교환한다고, 여행전에 미리 기념품을 준비했다는 얘기도 그저 한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귀로 나갈 뿐이었다. BTS가 월드스타라는 건 알았지만 나랑 별 상관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BTS가 '방탄소년단(Bang Tan Sonyeondan)'이라는 우리말 발음 나는 대로 영어로 표기한 뒤 이니셜을 딴 것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팀 이름을 너무 쉽게 지었군!' 이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방탄소년단' 안에 담긴 심오한 뜻을 알고 감동의 도가니 였지만 말이다.
그랬던 나였는데, 어떻게 Butter 라는 빌보드 1위를 연속 9주나 차지하는 명곡을 알아보게 되었을까?
그 얘기를 하자면 내가 어떻게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나는 직장인이다. 예전엔 직장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해서 꼭 점심을 누군가와 같이 먹었지만, 점점 결국 남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1분 1초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간을 쓰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다이어트겸 건강식으로 샐러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서, 도시락을 먹은 후엔 사무실 근처를 꼭 걷고 있다. 요즘 같은 뙤약볕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이것으로 분명 건강도 좋아지고, 체중관리도 되고 있기에 앞으로도 쭉 지속할 생각이다.
걸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노라면 지루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벅스뮤직을 들으며 걷고 있는데, 정말 우연하게 Butter 를 선택하게 된 것이 지금의 1일 10 BTS 를 하는 내가 된 것이다.
처음 Butter 를 들었을 때 부터 느낌은 남달랐다. 그 이전 BTS 곡들이 다소 좀 무겁고, 어두운 느낌도 좀 느꼈었는데, 이번 곡은 정말 가볍고, 신나고,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어 아무리 더운 날도 힘든줄 모르고 걷기운동을 하게끔 도와주었다. 중간에 다른 가수들의 곡들로 변경도 해 보았지만, 뭔가 모르게 단순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Butter 를 들어보니 뭔가 입체적이면서도 복잡한 여러가지 요소들이 녹아있는 듯 느껴졌고, 하지만 그것이 무겁거나 심각하진 않아 기분 좋게 흥얼거릴 수 있었다. 몇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Butter 이후 Permission To Dance 가 신곡으로 나와 처음 들었을 땐 왠지 모를 눈물까지 나왔다. 생각해 보시라. 한여름 뙤약볕에 점심 잘 먹고, 이어폰 끼고 왠 아줌마가 걷고 있는데, 눈가엔 감격인지 뭔지 눈물이 촉촉하게 맺힌다. 아니, 살짝 맺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줄줄 흐르기까지 한다.
사실 Permission To Dance 는 영어곡이기 때문에 가사를 잘 알아듣지도 못한 상태였다. 물론 나중엔 가사 번역 해 주는 리뷰들이 있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뜻인지 내용은 거의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났을까? 거기에 PTD 의 위대함이 있다고 느꼈다. MV 를 본 것도 아니었고, 벅스를 통해 음악만 들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가사 뜻이나 동영상 장면 없이 그저 음악만으로도 BTS팬도 아닌 나 같은 아줌마에게 뭉클함을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가사를 좋아한다.
젊은 나이지만 이미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들이었기에 남다른 고민도 많았으리라. 그래서 남들은 중장년이 되어야 하는 '하강'에 대한 고민도 이미 깊게 했을 것이다. 맴버인 슈가(SUGA)가 다른 인터뷰에서 '추락이 아니라 착륙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것도 이 가사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We don't need to worry. Cause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그러다 문득 '오빠부대'가 떠올랐다. 조용필이 '기도하는~' 이라고 '비련'의 첫소절을 부르면 바로 '아~악!'이라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그 소녀팬들이 '오빠부대'의 원조격이라고 알고 있다. 나도 그때 소녀였지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한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여성 팬들이 마치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 소리 지르는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볼 뿐이었다. 감수성이 떨어져서 였을까..? 좋아하는 쟝르가 달라서 였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세월이 지났고 가수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감동과 즐거움, 발걸음을 신나게 해 주는 대중음악은 여전히 옆에 존재한다. BTS 의 팬클럽격인 ARMY 는 주로 젊은 여성층이겠지만, 남성들도 있고, 나같은 아줌마도 있으며, 한국인도 있고, 미국인, 유럽인, 동남아 등 국가와 연령을 초월한다. 스토리가 있고 맴버 개개인의 매력이 잘 표현되는 BTS 이기에 한번 입덕을 하면 탈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BTS 로 대동단결! PTD 가사를 모른채 음악만으로 뭉클함을 주었듯, BTS의 Butter와 PTD은 세대간 차이를 '제로'로 수렴시키는 능력이 있는 곡이다. 최근에는 BBC Radio에 출연하여 I'll Be Missing You Live 무대를 선사해 주기도 했다. MZ 세대 자녀라면 부모님께 Butter 나 PTD을 한번 들려주시라. 혹시 필자처럼 늦게 BTS 의 매력에 빠지는 부모님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엔? 엄마, 아빠 라는 말 잘 통하는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