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서른여덟, 서른아홉의 기록을 글로 써서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지 벌써 두 달이 다 지나갔다. 결국 한 편도 더 쓰지 못하고 또다시 시작이다. '으이그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네가 그렇지 뭐~ 한심하다 한심해.' 자책하는 마음, 자기비난이 자동적으로 올라오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 마음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본다. '아냐~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 세상에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어. 너를 괴롭히면서까지 무언가 해내야 할 필요는 없어. 정말 기록하고 쓰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있다면 지금 여기부터 그냥 다시 시작하면 돼. 내가 함께할게. 기다릴게. 언제든 네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 나누면 돼. 괜찮아.'
다시 선물 받은 서른여덟의 내가 겪었던 매일의 시간 속에 이런 갈등은 거의 매 순간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부터 삶에 쉼을 허락하고 'doing' 대신 'being', 그저 '존재하는' 시간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불안과 두려움을 삶의 동력 삼아 무언가 '해내는' 삶을 살아온 내게 규칙적인 출퇴근 없이 '그냥 존재하는 삶'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에 대한 투쟁의 시간이었다.
1. 지난여름
특히 지난여름에는 마음으로 의지했던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상실에 대한 이슈까지 더해져서 '쓸모없는 존재'에 '버림받은 존재'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슬픔과 우울과 싸워야 했다. 정확하게는 우울과는 투쟁, 슬픔은 인정하고 수용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애썼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이 많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무렵 다녀온 피정으로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 덕분에doing의 삶을 사는 나의 오랜 습관들과 대면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2. 가을과 겨울
그래서 가을과 겨울을 지내면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못될 수 있는지, 남에게는 그렇게도 따뜻하고 너그러우려고 애쓰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얼마나 차갑고 무서운 판사가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강박적이고 가학적이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는 나를 만나고는 마음이 아팠다.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으로 나답지 못하게 되는 '일하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나에게는 비교적 'being'을 잘 허락해 주게 되었으면서도 '일하는 모드'가 되면 달랐다. 일하는 모드로도 나 자신에게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3. 봄과 다시 여름
프로젝트 중 한 달이나 피정을 다녀오는 바람에 봄이 다 지나갈 때에서야 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바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평생의 숙제 같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는 시간들을 만났다. 엄마의 병. 꼭 내 나이만큼인 그 병이 가져오는 마음의 병이 더 힘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함 속에서 죽음을 향하는 엄청난 힘들이 우리 가족 전체를 뒤흔들 때마다 지금까지의 마음을 돌보려는 노력들이 무색하게 아주 갈대같이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간이었다. 마치 어디까지 버티나 보려는 것처럼 마음을 흔들어대는 보이지 않는 힘과 영적 전쟁을 하는 시간. 그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난 이제 절대로 물러설 마음이 없다. 그 힘은 계속해서 내가 부족하고, 많은 것이 내 잘못 때문이고, 내가 많은 것을 망치고 있으니 이제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사라져 버리는 게 낫지 않느냐고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지만. 부족하고 부서진듯한 내 안에 하느님이 함께하고 계시니 완전하고 충만한 그 힘으로 살아낼 거라고,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는 거라고, 고통스럽지만 용기를 낼 거라고. 다시 한번 결심한다.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동안에 자정이 지났으니 이제 세상의 구분으로는 '서른아홉'. 이렇게 어설픈 것 세상에 내놓지 말라고 창피하다고 말하는 내면의 소리들을 뚫고 그냥 지금의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무래도 괜찮다고, 마음을 담았으면 그뿐, 괜찮다고 다독이며 내놓을 작정이다.
다시 선물 받은 '서른아홉'은 좀 그렇게 보내고 싶다. 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세상을 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기를. '무엇을 해내는 나'보다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기를. 한계가 많은 몸으로 제한된 시간 속을 살아가겠지만, 나보다는 내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힘, 그분을 더 믿고 의지하고 의탁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영원을 살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