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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생일주간, 빛과 어둠

서른여덟, 서른아홉

동네 성당의 감실 불빛은 아주 작고 희미하다. 성전의 모든 불이 다 켜지는 미사 중일 때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을 때는 불빛이 있는지 조차 맨뒤에선 잘 보이지 않을 정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불이 모두 꺼지고 조용해지면 그제야 '내가 여기 있었어. 계속 함께 있었어.' 하며 수줍게 빛을 드러낸다. 최근에 비교적 평일 미사를 자주 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불 꺼진 성당에서 머무는 시간이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된다.


요즘 나에게 예수님은 이 빛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다. 모든 거친 바람과 불과 지진이 시끄럽게 지나간 뒤,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율리야, 내가 여기 함께 있어. 계속 함께 있었어.'하시는 것 같다. 미사가 끝난 뒤에야 분명해지는 성전의 희미한 불빛처럼 말이다. 정작 폭풍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는 여전히 나는 혼자인 것만 같고 지금 당장 죽을 것만 같고 모든 게 망하고 끝나버린 것 같은 무력감이 나를 압도하면서 포기하고 싶지만. 그 거친 파도가 한껏 치고 지나가면 다시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지난 한 주도 쉽지 않았다. 특히 '생일 트라우마'라고 꼭 내 생일만 되면 어렸을 때부터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내가 당사자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싸움이 일어나거나 사건사고가 많았던 경험들이 굳어져 늘 생일 무렵에는 괜히 긴장이 됐다. 이번에는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 보름정도 밖엔 되지 않았고 움직이는 것도 어려우니 정말 조용하게 집에서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엄마와 함께하는 마지막 생일 외출이 될지도 모른다는 안팎의 생각들이 모아져 결국 도전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밥 먹고 구경하기. 엄마가 벌써 언제부터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곳. 퇴원하고 보름정도 지나고 나서니까 그때쯤이면 걸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예약을 해두었지만 가기 직전까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난생처음 구급차와 휠체어를 타고 덜컹거리며 먼 거리를 이동해 다녀왔고 누구 생일인지, 주변을 챙기느라 녹초가 되어 몸과 맘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아빠와의 오랜 갈등과 새로운 일들의 시작,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내 어깨를 굳어지게 만드는 자극들이 되었다. 어려움이 생기면 나타나는 무서운 내 마음의 흐름. '난 부족해. 내가 피해를 주고 있어. 그러니 사라지는 게 좋겠어.'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그런 나를 위해 내 안에 주님께서 들어와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 매 미사 때마다 성체로 내게 찾아오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 하느님이 알려주신 것이리라. 늘 소심하게 움츠러들고 작은 움직임에도 잘 놀라는 겁 많은 나를 아시고 힘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 나는 작고 부족하지만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시니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어.' 눈물이 났다. 용기도 났다. 이렇게 나를 바라보니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돌볼 힘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 힘으로 잘 버텨내다가 결국 엉뚱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깊은 어둠과 맞닥뜨렸다. 비가 내리던 지난 토요일, 다시 엄마의 섬망증상이 살아났다. 몸도 마음도 놀랍게 회복했다고 느꼈는데 궂은날이 찾아오니 바로 다시 이상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혼자 있는 걸 불안해하면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도망갈 수도 없고 속으로 아무리 기도를 하고 하느님을 찾아도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너무도 쉽게 다시 잃어버린 평화. 다시 나는 내 탓을 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을 공격했다. 찾아온 어둠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결국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고 다음날에도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예정된 일정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한 걸음을 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느꼈다. 집밖으로 나가 다른 일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니 한결 나아졌다. 일정 후에도 근처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 보내기. 추로스 가게에 들어가 달콤한 초콜릿에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산티아고 길의 마지막 날 우연히 만난 한국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같이 먹었던 추로스가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용기가 났다. 내가 이미 받았던 크고 작은 선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고 용기를 내어 면담고해도 청했다. 성당으로 향하는 것, 빈 성전에서 침묵 속에 머무는 것, 미사를 드리는 것,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내 작은 발걸음이 더해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이 다되어 성당을 나서면서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어둠뿐이던 마음에 빛이 가득 찬 건 꼭 하루만이었다.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꼭 어둠이 나를 삼킨 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고 나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만 같다.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 이 모든 유혹들은 힘이 세다. 너무도 참말 같은 거짓말.


하지만 어둠만 계속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어둠이 깊어지면 반드시 빛이 드리운다. 다시 또 어둠이 찾아오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깊은 어둠일수록 아주 작은 빛이라도 아주 분명해 보인다. 그 작은, 그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을 바라보는 것. 그게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작은 발걸음을 떼는 단순하지만 아주 무거운 일. 그 작지만 무거울 발걸음을 떼고, 기다리고, 빛을 바라보면 어느새 작고 희미하던 빛이 분명하게 다가오는 때가 온다고 믿는다. 그제야 아주 작고 사소한 빛들이 이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이 담긴 깊이 있는 대화, 바람에 부드럽게 날리는 초록한 나뭇잎, 그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를 알아챌 수 있길.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길.


다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내게 찾아와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이번 한 주간은 특히 미사 안에서 본기도가 마음에 오랫동안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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