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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호수라고 그대 바람처럼 잔잔하진 않고

이스라엘, 치유의 기억

카나의 혼인잔치가 끝나고 우리 순례단은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리니 저 멀리 수평선이 내려다 보였다. 말로만 듣던 그곳, 청년 예수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 부활 후에 먼저 가서 제자들을 기다리겠다 하신 곳, 갈릴래아 호수였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넓어서 바다 같은 갈릴래아가 그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곳이 갈릴래아 호수

순례를 떠나기 전 가장 궁금했던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인지 갈릴래아 호수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빨라지는 심장박동과는 반대로 막상 눈앞에 펼쳐진 호수는 넓고 고요했다.

갈릴래아 호수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배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재의 관광객들을 싣고 호수 이곳저곳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 순례단도 성경 속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나무배에 올랐다. 성경의 어느 장면에서처럼 호수 어디선가에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실 것만 같았다.     

막상 배에 올라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가 보니 파도가 치듯이 물결도 세고 바람도 거칠었다.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예 배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갈릴래아 호수라고 그대 바람처럼 잔잔하진 않고~ 넘어져도 임의 자락 놓치지 마오~"

"두려워 말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하리라~" 


풍랑 속의 예수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수 위를 걸어 다가오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 두려워하던 제자들,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걷겠다고 호기롭게 나서던 베드로가 몇 걸음 못 가 물에 빠져 허우적 대는 모습, 여기에 두려움과 불안함에 휩싸여 있는 내 모습까지 겹쳐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표징들을 이미 마주쳤는지 모른다. 남 보기 대단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문득문득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던 소소한 놀라움들이 분명 있었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감사함을 외쳤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확인받고 싶어 하고, 여전히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그런 감사의 순간들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이라는 호수는 늘 잔잔하길, 항상 고요하고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여전했다. 어쩌다 찾아온 평화 속에서도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에 스스로 큰 파문을 만들어내며 너무도 쉽게 다시 흔들리고 공포에 휩싸이는 내 약한 모습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듯 침묵하고 계신, 침묵 속에서 늘 함께이실 그분은 이런 내 모습까지도 가만히 아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성경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분과 함께 거센 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또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무너질 게 뻔했다. 그렇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손 내밀어 꼭 붙들어주실 것임을, 내가 먼저 그 손 놓지 않으면, 아니 내가 먼저 뿌리쳐도 그분이 나를 꽉 잡아주실 것임을. 난 그저 그분 손 놓지 않겠다는 믿음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 아니 배운 것을 실천하는 데에는 한 평생이 걸릴 것만 같다.  


다만 망망대해 같은 호수 한가운데에 방향 없이 떠다니는 것 같은 내게 그분이 먼저 찾아와 주실 때도 있다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손길, 부르심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나 아닌 누군가가 되어 애쓰지 않아도, 부족하고 의심 많은 나인채로, 찌질하고 때론 바보 같은 나인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향해 가려는 믿음 한 자락 붙잡고 있는 사랑스러운 나인채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스럽게, 나보다 더 큰 인내심을 가지고 이미 사랑하고 계신 그분의 시선을 느끼면서. 나를, 사람들을, 세상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분처럼.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갈릴래아 호수를 통해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갈릴래아 호숫가와 올리브나무

보트에서 내리고 나니 그제야 호수 주변의 세세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수님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오래된 올리브나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맞춰 입은 웨딩촬영 현장까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여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다음 목적지이자 숙소인 '참행복선언성당'으 가기 전 점심을 먹고 장을 봤다.

일용한 양식과 이스라엘의 식재료들

시큼한 맛이 강한 샐러드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피타빵, 쌀밥과 양꼬치 고기까지, 해외에 나오면 뭐든 신기해 보인다고 '코카콜라'라고 쓰여있을 이스라엘 문자를 사진 찍고, 커피가 맛있다는 곳에서 아이스라테를 주문해 더위사냥 맛의 커피 셰이크를 받아 마셨다. 수박, 감자도 신기해 보이게 만드는 이곳의 마트에서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잔뜩 장을 봐서 '참행복선언성당' 순례자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어 씁니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이후 2019년 가을에 떠났던 이스라엘 순례기를 정리합니다. 성경에 나왔던 장소에서의 엄청난 시간들을 어쭙잖은 단어의 조합들로 정리하는데 매 순간 한계를 느낍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정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종교적인, 역사적인 정보들보다 '지금, 여기' 삶의 고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애썼던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스라엘 랜선 여행, 랜선 순례' 계속 같이 걸어 주실 거죠?! 좋아요와 구독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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