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을 떠나 카나(Cana; Kanna)로 향했다. 주님탄생예고성당에서 위쪽으로 20분 정도 버스로 달렸다. 미사의 여운은 분명 마음에 남아있었지만 끊임없이 들리고 보이는 새로운 정보들은 흡수되지 않고 벌써부터 튕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장소,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이었다.
이곳 카나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 나타나엘)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필립보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듣고 처음에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필립보는 다시 "와서 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따라 당신께 오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를 '참 이스라엘 사람,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 하시며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전한다.
믿음이 생기는 과정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참 비슷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통해 전해 듣게 되는 말씀들에 의심 혹은 반감까지도 가지게 되던 때가 있고, 우연 같은 아주 작은 부르심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가 있었다. 그렇게 궁금함이 생기고 발걸음을 살짝 돌려 그분을 향하게 되었을 때, 내가 알아채기도 훨씬 이전부터 이미 나를 지키고 있던 그 시선들을 한꺼번에 느끼며 눈이 번쩍 떠지는 그런 과정들 말이다.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43-51)."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으로 가는 길
두 갈래 길에서 한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을 알려주는 사인이 보였다. 성당까지 이어지는 긴 벽에는 성경의 '카나의 혼인잔치' 성경 말씀이 적혀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1)."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
아치 모양의 기둥, 파란 하늘과 함께 보이는 꼭대기 중앙의 성모 마리아상, 정겨운 아이보리색 벽돌들이 소박하게 멋스러웠다. 주님탄생예고성당의 거대함과 웅장함 뒤에 방문했기 때문일까, 빛바랜 듯한 느낌들이 친근함을 더해주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면사포를 두르고 부케를 든 신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동이 6개가 올려져 있는 제대를 바라보며 세 커플이, 그리고 하객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카나의 혼인잔치 성당 안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을 일으키신 만큼, 이곳 성당을 방문한 부부들은 혼인 갱신식을 한단다. 우리 순례단에도 한 커플이 있어서 모두 예수님과 성모님처럼 카나의 혼인잔치에 초대될 수 있었다. 앞에 예식을 마친 분이 베일과 화관, 부케까지 기쁜 마음으로 넘겨주는 작은 기적까지 마련되었다. 혼인성사에서처럼 주례 사제 앞에서 반지를 교환하고 예식을 치르는 부부를 보면서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꼭 여기 와서 나도 혼인 갱신식 해야지'하는 마음도 생겼다. 우리 순례단 모두를 성경 속으로 초대해준 신기하고 감사한 시간을 기념하며 다 함께 '이 시간 너의 맘속에' 율찬을 축가로 대신했다. 결혼식 대형으로 자리를 잡고 기념사진을 남긴 후 짧은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성당 뒤편 우물이 있는 정원과 지하의 유적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각자 흩어졌다. 성당 옆쪽에 우물이 있는 작은 정원을 돌아보기도 하고 다시 한번 성당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했다. 성당 오른편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문이 나있었는데 자꾸 궁금함이 올라와 살짝 들어가 보았다. 계단 아래에는 옛 지형들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지하에는 그 시절 사용되던 돌로 된 물항아리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용기 내어 내려가 보지는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허락됐던 찰나 같은 개인 시간이 끝났다.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를 향해야 했다. 빠르게 착착 진행되는 일정들이 아직 내 발걸음에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카나에서 맛본 포도주 빛깔의 석류주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첫 기적이 일어난 갈릴래아 카나 곳곳에는 와인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러 큰 길가로 가는 길에 우리는 와인 대신 와인빛의 석류 착츱 주스를 맛보게 되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 성당을 지나서 골목이 끝나가는 곳 즈음에 있는 가게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앞에서 주스로 만들어주어서 신선함이 더해지는 듯했다. 달콤한 주스로 지친 몸을 깨우며 골목길을 한참 차지하고 있다가 버스에 다시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이번 순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장소, 갈릴래아 호수였다.
카나의 나타나엘 바르톨로메오 사도 성당
갈릴래아 호수까지는 나자렛에서 이곳까지의 두배보다도 더 가야 했다. 달달한 석류의 맛이 여전히 입속을 맴돌았고 머리는 여전히 멍했다. 태풍으로 마음 졸이며 비행기를 기다리던 인천공항부터, 새벽에 도착한 나자렛, 오전에 울며불며 드린 주님탄생예고성당에서의 미사, 카나에서의 혼인잔치, 이 모든 시간들이 꿈을 꾸듯 지나갔다. 어디를 지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일들이 몰아치는 것 같다는 더부룩함까지도 느껴졌다.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는 삶이라는 시간도 나는 잘 소화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지 하지 않았는지. 잠을 줄이거나 더 빠릿빠릿하게 내가 아닌 내가 되어서야 '쉼'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 건낸 작은 미소로, 이야기들로 수십 번 수백 번은 일어났을 일상의 작은 기적들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주 끈질기게 '와서, 보라'고 내가 알아차리기도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을 기적 같은 시간이 있었음을 한순간에 느끼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상의 수많은 기적들 속에서 매 순간 '주님이시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기적을 청한다면 예수님은 뭐라 하실까.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이후 지난 가을에 떠났던 이스라엘 순례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왔던 그 장소에서의 엄청난 시간들을 어쭙잖은 단어의 조합들로 정리하는데 매 순간 한계를 느낍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정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종교적인, 역사적인 정보들보다 '지금, 여기' 삶의 고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애썼던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스라엘 랜선 여행, 랜선 순례' 계속 같이 걸어 주실 거죠?! 좋아요와 구독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