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다들 홍콩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늦은 여름과 이른 가을이 되면 홍콩영화들이 보고 싶어 지곤 합니다. 아마 늦여름의 무더위가 하나의 소재처럼 사용되는 왕가위 영화들과 초가을의 쓸쓸한 계절감이 잘 드러나는 홍콩 누아르 때문에 그러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홍콩 영화하면 중화권 특유의 진한 선을 가진 연기파 미남 배우들인 장국영, 주윤발, 유덕화 등이 차례로 떠오르는데요. 저에게 있어 홍콩 출신의 배우 중 단연은 양조위입니다. 그의 깊은 눈매로부터 흘러오는 우수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속절없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눈빛을 가진 양조위가 나오는 여러 영화들을 짚어보면서, 한때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홍콩 영화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화양연화
첫 번째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영화의 거장 왕가위의 작품 『화양연화』입니다. 이 영화는 들켜서는 안 될 사랑을 나누는 절절한 연인, 모완(양조위)과 리첸(장만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한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이후 이상하리만큼 혹은 운명의 장난처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자신들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모완과 리첸은 불가항력적으로 솟구치는 감정을 무시하고자 노력하고, 서로에게 멀어지지도 그렇다고 다가서지도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숨겨야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감독은 절제되고 정적인 연출로 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모완과 리첸이 한 화면 안에 함께 잡히는 일은 굉장히 드물게 있으며 또한 둘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은 마치 구설수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유추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배우들은 서로에게 구구절절 사랑의 기염을 토하지도 않으며 스킨십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청초함으로 물든 고전적인 마스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장만옥의 절절함과 양조위의 깊은 눈빛에서 쏟아져 나오는 애수가 연인의 애절한 분위기를 눈부시리만큼 아름답게 구성해줍니다.
2. 무간도
두 번째 영화는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가 오마주한 작품이자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가 되기도 했었던, 홍콩 누아르물의 대표작 『무간도』입니다. 『무간도』는 경찰로 위장한 조폭 유건명(유덕화)과 조폭의 스파이로 들어간 경찰 진영인(양조위)의 뒤바뀐 운명에 관한 영화입니다. 둘은 약 십 년 전, 서로의 영역에 위장 잠입했었고 오래간 자신의 조직 내에서 신뢰를 쌓아 한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영인이 연관된 마약사건을 유건명이 맡게 되면서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진영인은 경찰 측으로 유건명은 삼합회 쪽으로 정보를 흘리는데, 그 정보들이 겹치게 되면서 삼합회와 경찰은 서로에게 위장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삼합회의 보스인 한침은 진영인을 불러, 숨은 첩자를 찾아내라고 하고 동시에 유건명에게 경찰 자료를 조사하라고 지시합니다. 진영인은 점점 자신을 향해 좁혀오는 포위망 속에서 유건명의 뒤를 쫓게 되고,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 속에서 갈피를 잃게 됩니다. 이때 양조위의 표정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18층 지옥의 제일 낮은 곳을 칭하는, 고통이 극심한 무간지옥으로 향하는 진영인의 복잡한 심경과 지난한 고뇌가 그의 눈빛 안에 고스란히 녹아져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까지 전해집니다.
3. 해피투게더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앞서 설명드린 화양연화를 연출했던 동일한 감독, 90년대 홍콩 문화의 대표하는 왕가위의 영화 『해피투게더』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마치 홍콩에서 찍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홍콩 색이 짙습니다. 홍콩 출신의,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 연인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는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습니다. 둘은 우연히 본 이과수 폭포 그림에 매료되어 그곳을 가게 되는데, 가는 도중에 보영이 아휘를 떠나가게 됩니다. 보영과의 이별로 아휘는 홍콩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여비를 구하기 위해서 탱고바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어울려 노는 보영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영은 손이 부러진 채 아휘를 찾아오게 되고 아휘는 갈 곳 없는 보영을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여 성심성의껏 돌봐줍니다. 보영은 그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계속해서 부축이고, 또다시 자신을 떠날 것이 뻔한 보영을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아휘는 결국 그를 떠나게 됩니다. 『해피투게더』는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우수에 잠긴 눈빛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장국영과 양조위 모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두 배우는 잦은 다툼과 이별 속에서 서로를 애증 하는 연인의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선을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신다면, 둘의 눈빛이 부딪힐 때 만들어지는 아우라 그 자체만으로 이미 이 영화가 끝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양조위가 나온 영화들을 중심으로 홍콩 영화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위의 소개해드린 영화들은 한때, 세계적인 찬사를 얻고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로서 짜임새 있는 줄거리와 탄탄한 연기력, 아름다운 미장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하여 양조위의 대체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진 눈빛까지도 말이죠. 혹시 아직도 위 영화들을 보시지 못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은 꼭 보시기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 영화들로부터 그리고 양조위로부터 며칠간 헤어나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하시고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