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로맨스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은 반가웠지만 묘한 고민거리도 생겼습니다. 다들 무언가 꿈을 꾸고 있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듯한. 무엇보다 저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반갑지 않은 동질감에 저녁 내내 잠을 설쳤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는 기대 심리는 누구한테나 있기 마련입니다. 아직까지 취준생인 친구와 어떻게 하면 회사를 그만둘까 전전긍긍하는 친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은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갔던 회사가 나에게 계륵같이 느껴지는 건 비단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늦은 야근 뒤에 집에 왔을 때 책상에 놓여 있는 <동미>라는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갑자기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골드미스? 노마드? 자유로운 삶? 국적을 넘나드는 글로벌한 레지던스. 한동안 워라벨, 욜로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후, 코로나 19는 그렇게 우리를 (장소만 재택으로 바꿨을 뿐) 결국 일을 해야 먹고 산다의 환경으로 회기 시켰습니다. 아직까지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요즘에 베를린이 웬 말일까요. 책 속에 펼쳐지는 자유와 예술, 음식, 풍성한 이국적인 것들, 무엇보다 나도 틴더남을 조우할 수 있게 해 달라!! 어머니가 사 오신 귤 한 봉지를 다 먹었을 즈음 마지막 '베를린 인덱스'를 꼼꼼히 색연필로 줄까지 치면서 열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문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문체는 자유롭지만 가볍지 않은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요즘 에세이 책을 읽어볼라치면 죄다 상처 받지 않는 법, 싫은 사람 밀쳐내는 법, 나를 사랑하는 법 등 보이지 않는 심리 전쟁통에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가 무슨 심리 싸움하는 곳도 아니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동미>.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고급진 그녀의 문체와 이국적인 사진들, 또 내 마음속에 그녀의 삶처럼 살고 싶다는 바램 정도. 엄청난 시도를 해야만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동미>를 읽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삶은 이런 삶만 있지 않다는 것을 기름기 쫙 뺀 담백한 한 사람의 인생을 <동미>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내 주위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은 뭐가 그렇게 고민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고민이 나쁜 건 아닌데요. 조금 더 넓은 어떤 레퍼런스를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매번 유사한 고민들을 풀어놓으며 다시 내일 또다시 내일... 아니야. 이런 것도 있어. 저런 것도 있고. 단지 네가 선택하면 되는 거야. 와 같은 레퍼런스요. <동미>가 딱 그런 책입니다. 다소 무책임했던 워라벨, 욜로 보다 <동미>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미래가 더 현실적이고 와 닿았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 환상은 또 다른 선택이자 삶이 주어진 다는 것을. 비현실적인 장밋빛 미래보다 삶의 다양성을 보여준 <동미>를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내 인생의 새로운 레퍼런스 <동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