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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Nov 03. 2020

박스 오피스 1위,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1995년 서울, 바쁜 출근길을 누비는 커리어 우먼 세 명이 있습니다. 바로 대기업 ‘삼진그룹’에 재직 중인 자영과 유나, 보람 입니다. 커리어 우먼이라는 꿈을 가지고 입사한 삼진을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로 여기는 자영, 회사의 불합리한 부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유나, 싫어하는 수많은 것들을 참으면서 하루를 나는 보람은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할 수 있다는 회사 공고를 보고 영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어 무시받던 것에 지치고, 20대를 바친 회사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싶었던 이들은 다른 말단 여사원들과 함께 토익 공부에 매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승진을 위해 모인 이 토익 공부반은, 자영이 페놀 방류를 목격하게 되면서 곧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장소로 변모하게 됩니다. 우연히 회사의 불의를 포착한 말단 사원 자영과 그의 친구들, 즉 무시받던 사원들이 그들의 세상을 뒤집어엎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입니다. 

“boys be ambitious”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주인공들은 여성들의 취업 기회가 적고, 특히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승진이 어려운 시대였던 90년대에 살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 탓에 상업 고등학교 출신인 이 세 명의 친구들은 입사한 지 8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말단 사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름 우등생들이 가던 상업 고등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대기업 취업의 좁은 문을 뚫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능력이 뛰어난데도 매일 사무실 청소와 모닝커피를 담당하고, 상사들의 담배나 점심 심부름이나 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영보다 늦게 입사한 무능한 남자 후배는 벌써 대리를 달았는데, 자영은 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도 팀원들의 취향에 맞게 커피 타는 속도만 빨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학 천재인 보람도 사무실에서 영수증 빵꾸를 메우고 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유나는 대졸자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며 마케팅 팀의 잔심부름을 도맡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여사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토익 공부반은 그들에게 꿈을 펼칠 새로운 발판으로 떠오릅니다. 그들에게 토익 공부반은 단순한 승진 방법이 아니라, 나도 이 회사에서 정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기대와 불합리한 상황을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인 것입니다. 토익 600점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들이 달달 외우던 “boys be ambitious”라는 관용구도 답답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상황을 향해 나아가는 사원들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칼을 뽑았으면 4B 연필이라도 깎아야 할 거 아냐!”


매일 영어 공부를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던 어느 날, 자영은 새로 온 상무의 짐을 챙기러 공장 지대로 외근을 나가게 됩니다. 상무가 두고 간 물건들을 포장하는 등 잔심부름을 마친 자영은 상무가 버린 금붕어를 강에 풀어주기 위해 공장 옆의 하천으로 향하고, 거기서 죽은 물고기 떼와 함께 검은 폐수가 유출되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헌신하던 회사의 공장에서 콸콸 흐르는 폐수를 본 자영은 이를 쉽사리 넘기지 못하고 바로잡기 위해 애씁니다. 후배 대리의 이름으로 직접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고, 그를 설득해 본사에서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합니다. 자영의 우려에 답하듯이 다행히 조사 결과 폐수에서 유출된 위험 성분 페놀은 극소량이었고, 자영과 후배는 공장 인근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사건을 설명하고 사과하며 합의서에 서명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마을을 돌던 자영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공장 인근 과수원을 방문했을 때,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던 전과 달리 과수원에는 깨진 사과가 뒹굴고 조각난 사과 속에는 벌레가 죽어 있었습니다. 분명 회사에서는 경미한 양의 유해 성분이 방출되었다고 했는데 과수원 주인은 피가 나도록 몸을 긁고 드러난 얼굴과 목에 피부염이 돋아 있는 모습입니다. 서울로 돌아온 자영은 죽은 벌레와 과수원 주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고, 회사의 조사 결과와 자신이 본 것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이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며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수에 능통한 보람이 자영의 증언과 검출된 유해물질 수치가 맞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자영이 목격한 만큼의 폐수의 양을 계산해 보았을 때, 회사에서 내놓은 페놀 검출량이 도저히 들어맞지 않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회사의 비리를 눈치챈 자영, 유나, 보람은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우선 폐수에 포함된 유해 성분의 정확한 양을 알기 위해 영어 토익 공부반 선생님의 도움을 빌려 회사가 성분 분석 의뢰를 맡겼다고 하는 외국 연구소에 문의를 넣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알려준 번호는 미국의 평범한 농장이었고, 회사 내부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같은 토익반 여직원들을 통해 폐수를 분석한 곳이 국내 검사기관이라는 걸 알아내게 됩니다. 자영, 유나, 보람이 예상했듯이 회사에서 공유한 페놀 유출량은 조작된 것이었고 그들은 하천에 섞여 들어간 유해 성분의 양이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합니다. 막연하게 의심하던 비리를 눈으로 확인한 삼인방은 몸으로 뛰며 증거를 모으고, 본격적으로 이를 공론화하며 비리 집단을 척결해나가기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물론 이들의 싸움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자영과 유나, 보람은 어려운 문서를 번역하며 밤을 새고, 조사 결과를 은폐한 이를 찾아 미행하고, 증거를 찾기 위해 녹음기를 들고 회사 임원의 방에 잠입합니다. 이토록 힘들게 얻어낸 결과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고, 믿던 사람의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회사의 외압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삼진그룹의 말단 직원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 결국 그들이 뜻하는 바를 이뤄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혼자가 아닌,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문제를 발견한 자영과 그가 목격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나서서 발로 뛴 유나와 보람에 이어서, 그들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준 토익 공부반 사원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인지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 회사 임원들까지. 

저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가진 매력이 바로 이러한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2020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어색한 상황들이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현재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계속 옳은 것을 향해서 나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연대하면서 맞는 방향으로 향하려고 함께 노력합니다. 영화 속에서 유나는 회사가 돌아가는 흐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훌륭한 마케팅 전략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심부름을 하면서 기회를 엿봅니다.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 수상자인 보람은 고작 부서의 룸살롱 영수증을 메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보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상사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한계에 굴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고 조언하는 사람인 동시에 회사의 비리에 가담하는 사람입니다. 자영에게 담배 심부름 같은 잡일을 시키던 상사는 자영의 계획을 눈치챈 뒤로 그녀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렇듯이 영화는 입체적이고 이중적인 면을 가진 아주 다양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거쳐갑니다. 상사의 불의를 알게 된 이후로 망설이지만 결국 나아가는 보람처럼요. 영화는 이렇게 평범한 모두가 옳다고 느끼는 곳을 향해 애써 나아간 결과가 더 나아진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현재의 우리와 같은 인물들이, 색 바랜 90년대 속에서 다 함께 당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담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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