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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Nov 10. 2020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영화 <소공녀>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영화 <소공녀>가 '방구석 1열'에 소개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었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의 중요한 모토가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자여서 그럴까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핸드 건조기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미소 장면을 본 순간 채널을 돌려버렸죠. 한참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건, 꽤 오랜 시간 동안 미소의 표정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서였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일찌감치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편함과 동시에 볼 수밖에 없는 운명에 항상 무너지고 마니까요. 

미소(이솜 분)는 가사도우미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삽니다. 5만 원이 채 안 되는 일당으로 밥을 사 먹고, 담배를 사고, 단골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하고, 백발을 방지하는 약 값과 월세와 세금을 적립하는데요.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말과 함께 마침 2014년 새해 첫날에 담뱃값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인상됩니다. 평소 피우던 담배가 비싸 사지 못하고 4000원짜리 담배를 사들고 오며, 미소는 방을 빼기로 결정합니다. 그녀의 일당으로는 담배와 위스키와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집을 모두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미소는 겹겹이 옷을 껴입은 채, 낡은 여행 가방에 여타의 짐을 매달고, 과거에 밴드를 같이 하던 친구들에게 잠자리를 부탁하러 떠나게 됩니다. 

1. 내가 원하는 삶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미소가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결정으로 집보다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녀를 만족시키는 삶은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 친구 한솔뿐입니다. 그깟 집은 없어도 그만이었던 것이죠. 현대인의 삶에서 집을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극 중에서 집은 그저 머물다가 떠나는 공간일 뿐인데요. 미소의 결정에 공감하기 어렵지만, 결국 남을 의식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미소의 철학이 보이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외부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사회적으로 보편적 기준에 도달하고 싶은 인정 욕구는 결국 우리들을 더 깊숙한 결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남으로부터 인정받는 삶. 그게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내가 속한 어떤 사회 일수도 있는데요. 미소는 당당하게 남들이 꺼리는 직업을 선택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취하면서 삽니다. 미소의 삶에 100% 공감하긴 어렵지만, 영화는 그녀가 찾아가는 오랜 밴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관객들에게 묘한 설득을 안겨줍니다.  

2. 행복한 사람은 없다

제 팔뚝에 직접 주사 바늘을 찌르는 문영(강진아 분)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점심시간마저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삶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삶이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미리 취득한 간호조무사 자격증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입니다. 행여 내 휴식시간을 뺏긴다고 할지언정, 여러 스트레스를 포도당으로 해결할지언정,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한다는 것이죠.

현정(김국희 분)은 30여 년 중국집을 운영하신 시부모님을 모시며 혼자에게만 부과되는 가사 노동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음식 솜씨는 형편없지만 그녀의 살림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용(이성욱 분)은 20년간 월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집을 쓰레기로 채우고 매일 밤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아내가 떠나서인지, 대출금 때문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에게 집이란 짐이자 삶의 구속과 같은 곳입니다. 

록이(최덕문 분)의 부모님은 자손의 생산을 기대하며 미소를 감금하기에 이르는데요. 그는 부모님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며 즐거운 곳에서는 ~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보이지만, 오로지 자식 결혼과 손주를 보고 싶다는 부모들과 함께 사는 공포스러운 집일 뿐입니다. 넓은 집에서 안락하게 사는 정미(김재화 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밝히는 미소에게 당황하는데요. 그녀가 누리는 경제적 안정에 비해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에 쩔쩔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경제적 부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죠. 

그녀가 만났던 친구들의 삶은 모두 집은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집이란 안락하고 평온, 휴식과 같은 것을 상징하지만, 극 중에서 그렇게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소가 살고 있는 삶은 행복해 보이나요?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지만, 무엇보다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 행복이 전제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나' 다운 삶이란

영화 <소공녀>는 미소의 삶을 통해 집 없이 살아도 행복한다는 주제를 전달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영화는 남들이 인정하는 삶,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타인 취향 중심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던집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의 삶에 측은함을 던지지만, 미소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모습을 본 순간 오히려 낯 뜨거워집니다.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삶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시부모를 모시면서 가사 노동에 힘겨워하는 삶이 잘 못된 삶 또한 아닙니다. 다만 남들을 의식하는 삶,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삶은 분명 또 다른 결핍을 자아낸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소확행, 욜로가 삶의 트렌드인 양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죠. 코로나 19 이후로 그런 용어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소확행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지극히 개인이 중요시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소공녀>는 내가 좋아하는 삶,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추구하는 삶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적으로 얼마나 있어 보이는가가 아닌 나의 내면에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말이죠. 

저보다 2년 정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절친은 조직 내에서 빠른 성장으로 인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는데요. 입사 동기에 비해 빠른 승진과 함께 만날 때마다 화려 해지는 친구를 보면서 저 또한 부러움을 감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삶의 길인 양 주의 깊게 듣곤 했는데요. 며칠 전 그 친구는 과감히 퇴사를 하고 다른 걸 준비하고 있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내가 나무라면...
원래 자라야 되는 줄기나 잎이 아닌, 자라면 자랄수록 나무를 죽게 만드는
뭔가 잘 못된 성장인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결국 그녀 역시 남들이 바라보는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결코 미소의 삶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에디터 SU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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