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SU Jan 23. 2021

과학에 ‘숨’을 불어준 소설, 테드 창 <숨>

사람은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삽니다. 가령, 좋아하는 가수가 발매한 노래는 항상 좋으리라는 행복한 편견, 메뉴 선택에 번번이 실패하는 음식점의 음식은 다 입맛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편견 등 참 많은 편견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편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수학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항상 어려워해 이공계에 진학하지 못했던 저에게는 과학이 항상 하나의 편견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 줄기로 뻗친 무궁무진한 과목은 하나의 뭉뚱그려진 지루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과학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저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준 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 <숨>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시간 여행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소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바라는 시간 속을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이 책의 시작을 맡고 있는 첫 번째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시간을 여행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타임머신 이야기는 시공간을 오고 가는 과정보다 시공간을 오고 가며 발생한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을 그대로 간직한 타임머신인 ‘세월의 문’을 통해 시간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소설과 다른 점을 지니고 있죠. 무엇보다 무슬림의 이국적인 배경은 우리에게 더욱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퍼즐을 맞추어 가며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능가하는 새로운 교훈을 주는 소설은 다소 무거울 것만 같았던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을 풀어주었습니다. 

네 번째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와 생애 주기>는 제게 새로운 시선을 안겨주었습니다. 데이터 어스라는 가상 육지 속에서 반려 동물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냅니다. 가상현실을 다룬 다른 책에서는 단순히 로봇과 인간 사이의 갈등 혹은 사라지는 인류애를 다룬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반려동물을 통하여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것이 굉장히 새로웠습니다. 이 세계 속 반려동물은 학습 능력이나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기에 주인과 상호작용 및 대화가 가능합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 책을 읽은 뒤 ‘배움’은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디지언트 육성 시장이 쇠퇴하면서 많은 디지언트는 정지되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디지언트라는 점에서 유저들은 어찌 보면 죄책감 없이 시스템을 정지하였지만 현실 세계의 반려동물보다 높은 인지 능력을 가진 디지언트를 정지하는 것은 가상이라는 글자 속에 유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인공지능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것이 언제나 편리함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일깨워 준 소설이었습니다.

“단어들 또한 단순한 말 조각이 아니었다. 단어들은 생각의 조각이었다.
그것들을 옮겨 적으면 생각을 벽돌처럼 잡고 다른 배열들 속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실린 소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하나의 단편 소설 안에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 이렇게 두 개의 소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언어 없는 세상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조차 품어본 적 없는 제게 과학의 발전에 따른 언어의 의미를 일깨워준 소설이었습니다. 더불어 이 소설의 제목처럼 하나의 기억도 사실적인 진실, 그리고 감정적인 진실의 두 갈래로 나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렇게 왜곡된 사실에 크게 의문을 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이기적인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언어를 표현하는 구절들이 빠짐없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나의 창고 속에 보관된 기억 하나하나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과학이 녹아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과학에서 한 발 나아가 일상 속 과학을 일상이 아닌 이야기로 바꾸어 이야기합니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과 수 천년 간 쌓여온 문학, 다를 것만 같은 두 학문의 융합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이 단편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발전해야 할 방향의 지평을 전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무엇보다 이 속에 담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가볍고 쉽게 풀어내고 있어 더욱 좋았던 소설집이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다. 모든 작품이 보석이다. 당신은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흡입하게 될 것이다.”


블레이크 크라우치라는 소설가가 이 책을 읽고 한 이야기입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우주여행이 언젠가 우리에게 당연해지는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잠시나마 우주여행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게 해 준 소설, 테드 창의 <숨>이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8729?e=23944651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팟캐스트 추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