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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Aug 18. 2021

낙인찍힐 용기

복학생을 좋아했던 그녀4

[지난 이야기]
복학생이던 나에게 먼저 찾아와 커피와 번호를 주고 간 그녀. 그녀의 이름은 나와 아주 닮아있었다. 나는 강숲, 그녀는 강숩.(가명이긴 하지만 이만큼 비슷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서 나는 '이름'이라는 강박에 시달려 괴로워한다. 이런 마음으로는 더 이상 못 만나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다음 날 그녀가 악몽을 꿨다고 했다. 내가 차 버리는 꿈을 꿨다고 말이다. 나는 위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럴 리 없다고. 꿈은 반대라고. 하아... 이제 그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일만 남아있었다.





거짓 위로로 일단 그 상황은 수습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간 후 전화를 끊고 우리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날 내내 고민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이름 때문에 받는 혼란의 크기가 더 컸다. 진심일 준비가 안 된 채 계속해서 미루기만 하는 만남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죄를 짓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전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먼저 손을 잡아놓고 다음 날 차 버리는, 나는 그런 놈이 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꿈은 반대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그날 저녁 그만 만나자고 말하는, 나는 그런 놈이 될 예정이었다. 뭔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그런 사람이면서도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내적 갈등'이라는 단어의 뜻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 숲은 숩과의 문자가 괴로웠다. 아직 그녀를 많이 좋아하는 '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식을 싫어하는 내가 가식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 고통받다가 그날 밤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잠시 후 그녀는 그 예쁜 목소리로 펑펑 울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그럴 거면 왜 사람을 헷갈리게 했냐고. 그녀는 잘 내지도 못하는 화를 내며 나에게 항의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만날 수는 없냐고 소극적인 애원마저 했다. 내 양심이 너덜너덜해졌다. 편의점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그녀와의 일주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한 회상 속마저도 숲과 숩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녀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1시간 정도의 통화가 끝나고 나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좁은 마음으로 용기 있는 소녀의 마음에 못을 박아버렸다. 침대 위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 위로 그녀의 흐느낌이 아직 들리는 듯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비겁했다. 온갖 핑계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어냈다. 설렘이 없었어. 좋은 사람 같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것 같았어. 등등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찌질한 변명들이다. 나는 끝까지 "네 이름 때문에 못 만나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미움받을 용기는 있었지만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힐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저의 찌질한 연애 실패담이었습니다. 굳이 내 흑역사를 써서 이미지를(그런 게 있다면) 스스로 깎아내려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까지는 추억이란 게 미화되기 마련이라 이렇게까지 못난 놈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타자를 두드리다 보니 기억의 먼지 속에 가려진 저의 찌질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놀랐어요. 이왕 연재를 시작한 거 그래 끝을 보자, 라는 마음에 이런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네요. 저의 죄를 이렇게 고백하고 나니까 사실 조금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못난 놈의 못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숩아! 미, 미안했어...





[입구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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