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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Aug 24. 2021

일본 씨, 왜 그렇게 밥을 적게 줘요?

나의 두 번째 해외여행 이야기2





6년 전, 친구와 나는 토요일 저녁에 부산에서 '뉴카멜리아호'라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확인해보니 3시간 반이 아니고 밤 11시에 출항해 6시에 도착하는 여객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 일반실에서 친구랑 불편하게 쪽잠을 잤던 기억이 빤짝하고 떠오른다. 배가 어떻게 갔는지는 다 생략하고 우리는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나는 그곳에 가기 전에 일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서울처럼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고 최첨단의 도시를 상상했다. 게다가 심심치 않게 한국보다 5년 혹은 10년을 앞선 나라라는 얘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간 곳이 도쿄가 아닌 후쿠오카여서 그런지 혹은 첫 여행인 필리핀의 새로움이 너무 컸던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망스러웠다.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냥 간판만 일본어로 바뀐 느낌?


이 사진이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게 김이 빠진 채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그러나 역시 외국은 외국이었다. 노선도가 온통 일어로만 적혀있어서 엄청 당황했다. 하지만 미리 로밍된 휴대폰으로 네이버 블로그의 정보를 급하게 찾아보면서 어떻게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때 돈을 더 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른 체크인을 했다. 친구와 나는 기절하듯 낮잠을 잤다.



오후가 돼서야 일어나 숙소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인 하카타역에 도착했다. 나는 음식보다, 관광지보다, 야경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현지인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일본 만화를 많봐서 "다녀왔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무슨 의미야, 젠장, 밀짚모자, 바보 녀석, 죄송합니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 "하카타 역은 어디입니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정도를 추가로 독학했다. 게다가 나의 일본어 발음은 친구도 인정할 정도로 현지인과 흡사했다. 당장 아무나 붙잡고 내 일본어 회화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친구와 나는 어떤 쇼핑몰 안에 있는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사실 그때 당시에도(2015년) 구글맵으로 원하는 곳을 다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글에게는 사람 냄새가 나질 않는다. 앞에 아리따운 여성 한 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분의 아름다움에 끌려서였는지 그냥 앞에 있어서 길을 물어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노... 스미마셍, 000쇼핑센터와 도코 데스까?(어디입니까)"
그녀가 갑자기 피식하며 웃었다. 물어본 나와 옆에 있던 친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한 마디를 추가했다.
"스, 스미마셍?"
"길 건너시면 저쪽에 있어요."
"아.. 네? 저쪽이요? 가, 감사합니다."
그랬다.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나는 달아오르고 있는 내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72도로 인사를 하고 친구와 함께 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첫 일본어 회화 도전은 그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친구와 나는 아주 엉거주춤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녀가 또박또박 알려준 쇼핑몰 안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거기서 생선 튀김 정식 같은 걸 먹었다. 그때 받은 인상은 '뭐지?'였다. 한국의 푸짐한 한 끼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 밥상은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밥도 반찬도 생선도 심지어 레몬까지 요만해 보였다. 게다가 반찬을 더 달라고 하니까 돈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진짜 쪼잔하네. 역시 한국이 짱이여!'라는 유치한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랬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존중한다.


지금 보니까 별로 안 적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이후로 먹었던 대부분의 음식 양이 적어서, 적어도 사이드 메뉴 한 두 개씩은 더 시키는 게 우리만의 국(국민 룰)이 돼버렸다. 우리는 곧 식당에서 나와 쇼핑몰 위층에 있는 오락실에 놀러 갔다. 와! 과연, 오락기 선진국이었다. 아주 갖가지 게임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과 잔돈 바꾸는 법을 몰라서 그냥 잠깐 구경하고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와버렸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기들은 아주 요란한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실패를 발판 삼아 정말, 정말 의심의 여지없이 일본인인 사람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저어기 아저씨 한 명이 시야에 포착됐다. 일본인이 틀림없었다. 진한 붉은 향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무서워 보였다. 그리고 옆을 보니 상냥해 보이는, 일본풍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결연한 각오로 그분에게 다가갔다.



"아노... 스미마셍!"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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