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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16. 2021

필리핀 택시에서 바가지를 쓰는 기막힌 방법

나의 첫 해외여행 이야기 1화

        

쏘리 미스테이크, 노 미터       


  


군대에서 전역하고  알바로 돈을 모아서 첫 해외여행을 갔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절친이랑 함께 간 여행이었다. 장소는 필리핀으로 정했다. 돈이 없던 대학생에게 애초 선택권이란 별로 없었다. 영어권에다가 물가도 저렴하고 에메랄드빛 바다도 볼 수 있는 여행지가 그 나라밖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원래 여행 계획 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즉흥적으로 떠나는 걸 훨씬 더 선호한다. 하지만 친구가 바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한가했던 내가 계획을 짰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이리저리 뒤져서 알아봤다. 계획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D-day가 되었고 우리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까지 갔다. 그냥 김해공항에서 타면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 뭐 첫 여행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치자.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탑승수속을 밟았다. 첫 해외여행자들이 대 그렇듯 우리도 쓸데없이 인천공항에서부터 카메라 셔터를 계속해서 눌러댔다. 나중에 절대 보지 않을 사진들을 위해서 말이다. 특히, 나는 더 심했다. 그 들뜨는 순간들을 담으려 몇 분에 한 번씩 카메라를 켰다. 그 덕분에 다시 돌아와서 사진 정리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첫날 사진이 200개라고 하면 다음날은 50개 그다음 날은 20개가 되는 그런 기이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어느덧 세부 막탄 공항에 도착했다. 진짜 숨이 막힐 것 같은 찜통더위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친 습기가 우리를 덮쳤다. 시작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도 20대 초반의 젊음과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택시를 타고 세부 시티까지 갔다. 물론 바가지를 썼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보고 가도 막상 능수능란한 택시기사들의 리드에 따라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어느새 큰 지폐 한 장을 바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노 체인지?”

“노 체인지!” *체인지는 잔돈이라는 뜻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던 당시의 친구와 나로서는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여전히 들뜨는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아주 높은 쌍둥이 빌딩이었다. 한쪽은 18층, 다른 건물은 30층 정도로 기억한다. 작은 건물 옥상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고 높은 건물 꼭대기에는 롤러코스터를 비롯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필요한 돈만 양말에 집어넣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왔다.(지금 돌이켜보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입구 양 옆으로 총을 들고 서있는 경호원들의 무관심을 받으며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앞에 번화가가 보였다. 아얄라 몰이라는 쇼핑센터 주변이었던 것 같은데 내 에세이에서 언급하는 지명은 믿을 만한 게 못된다. 그런 쪽으로는 기억력이 꽝이기 때문이다.    


 

그때 필리핀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 눈동자에서 증오 섞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그 남자들의 시선을 받자 역시 돈이 양말 안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소심한 나는 그 분위기에 바로 기가 죽었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었다.      


“쟤네 무섭지 않냐?”

“우리가 더 크잖아. 괜찮아.”


자신감이 넘치는 그 친구가 마냥 부러웠다. 우리는 블로그에 적힌 맛집들을 탐방했고 4천 원 정도 저렴한 마사지를 받았다. 곧 택시를 타고 이런저런 관광지에 다녀갔다. 더위와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그제야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적다 보니까 무슨 여행일기처럼 돼버리고 있다. 쓰는 나마저도 지루해지니까 여행 중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으로 바로 넘어가자.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기념품을 팔던 어린이들이었다. 여행지마다 4살이나 5살로 보이는 조그마한 소년과 소녀들이 나무로 만든 장식품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 예쁜 눈으로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런 애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 간절한 눈동자를 보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기념품들의 가격은 꽤나 비쌌다. 문제는 하나를 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내게 벌떼처럼 모여들었단 사실이다.      



그들의 물건을 다 사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선행이라고 했던 행위가 다른 아이들에게 질투심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의 딜레마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난감해져서 쏘리쏘리를 외치며 그들에게서 달아났다. 그 이후로 기념품팔이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울을 일부러 모른척했다. 우리 기준으로 어린이집에 있어야 할 아이 누더기 옷을 입고 나와 그곳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그런 동정도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함께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웃으며 관광을 즐겼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일반화하진 말자. 그냥 내가 간사했던 거다,라고 생각하자.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사실 그 여행에서 이 기억이 가장 깊게 남아있다.) 바로 작은 섬 체험이었다. 둘째 날인가 세 번째 날, 우리는 호핑투어를 예약했다. 호핑투어란 배를 타고 어느 지점에서 물속에 뛰어들어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들과 함께 노는 그런 것이다. 돈을 좀 더 내면 잠수 체험도 할 수 있다. 이후 작은 섬에 내려 초호화 해산물 뷔페를 즐길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탔다. 그때쯤 우리는 이미 당할 만큼 당했기 때문에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미터 온!”을 외쳤다. 우리는 뒷 자석에 앉았다. 꽤 이른 시간에 출발했기에 친구는 옆에서 고개를 꾸뻑꾸뻑 하며 졸고 있었다. 나는 기사가 혹시나 허튼짓을 할까 봐 계속해서 그를 주시했다. 정확한 위치를 잘은 모르지만 손에 지도가 있었기 저기 보이는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택시는 계속해서 같은 루트를 뺑뺑 돌았다. 투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에 점점 초조해졌다. 나는 조급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유 저스트 라운드! 와이 노 브릿지!” 나는 오른손으로 원을 크게 세 바퀴 그렸다.     

     

그러자 기사는 움찔하더니 오케이라고 말하며 다리를 건넜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 차의 미터기는 특이하게도 기어 변속기 쪽에 달려있었는데, 갑자기 기사가 어어어어어라는 소리를 내더니 팔꿈치로 미터기의 작은 버튼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전원이 꺼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나를 힐끔 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쏘리 미스테이크, 노 미터”(저거보단 더 유창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기사는 마치 썰렁한 농담을 하고 나서 머쓱해하는 친구처럼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분명 미소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친구를 한 번, 지도를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택시 기사를 더 이상 자극했다간 배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냥 돈을 더 주더라도 안전하게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모얼 머니, 오케이?” 나는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그레윗! 웨얼 유 프럼? 코리아?


그때서야 그 얄미운 기사는 해맑웃더니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정신승리를 해버리고 쿨한 척 그와 수다를 떨었다. 계속 삐져있으면 왠지 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돈으로 예상 가격보다 한 2천 원 정도 더 주고 제시간에 맞춰 투어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는 쭈욱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더니 “금방 왔네?”라고 순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긴 하지. 너에겐’     


 

고작 2천 원 가지고 그런 실랑이를 벌였다니 참. 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현지인 시급으로는 얼만데...”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런 것까지 따질 만큼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술안주 거리를 얻었다 생각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친구와 함께 호핑 투어장으로 들어갔다. 즐기기에도 아까운 소중한 첫 해외여행을 안 좋은 생각들로 망쳐버리긴 싫었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까 어느새 너무 길어졌다. 아직 작은 섬에 대한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그걸 짧게 요약하기엔 그때 느꼈던 경이로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한 편의 에세이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들을 계속 끄집어내서 결국 이렇게 됐다. 이후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다음 화에 올리도록 해야겠다.     



쓰기 전에는 그렇게 희미하던 추억들이 스토리에 몰입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글쓰기는 참 기특한 녀석이다. 지나간 여행도 다시 보내주고. 역시 이 맛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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