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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Jul 17. 2021

한밤중에 필리핀 골목길에서 생긴 무서운 일

나의 첫 해외여행 이야기 2화


       

               


이번 화에서는 이 여행의 핵심인 ‘작은 섬 체험’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쓰기 전에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저번 편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디테일한 일정표를 짠 건 아니다. 그저 숙소와 비행기만을 예약했고 세부의 유명한 맛집이나 대표적 관광지 한두 개 정도를 대충 검색해봤다.      



그러니까 몇 가지 기본 재료들만 던져놓고 그날그날 느낌이 시키는 요리를 만들어 간 셈이다. 첫날은 뭐 다음 날은 뭐, 라는 플랜은 애초에 없었다. 왜냐하면 여행을 실제로 가기 전까지는, 현지의 공기를 직접 맡기 전까지는 자연스러운 레시피를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미리 만들어진 인스턴트 계획보단 로컬 식당에서 갓 지은 싱싱한 계획이 더 맛있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성향 차이기도 한 것 같다. 애초에 성격상 계획을 세우는 걸 안 좋아하기에 즉흥여행에 대한 장점을 그럴듯하게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방식의 장점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날 무엇을 할 건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느낌을 믿자 정도로 합의 봤다. 친구가 나랑 여행 성향이 맞아서 망정이지, 그가 만약 계획 파였다면 나는 그때 소중한 친구를 한 명 잃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뭐할까?”

“잠깐만, 검색 좀 해볼게. 이 주변에 맛집 많네.”

“그래? 그럼 일단 밖에 나가자.”     


처음엔 일일이 검색하면서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이틀 차인가 삼일 차부터는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느낌이 오는(손님이 많은) 식당에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 맛없으면 욕하고 맛있으면 ‘역시 우리는 촉이 좋아’라고 서로를 속이곤 했다.      



첫날밤, 호텔 수영장에서 놀다가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러 밖에 있는 펍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골목길을 하나 지나야 했다. 엄청 어두웠다. 걷다 보니 필리핀 남자들이 한 명 한 명 튀어나와 우리를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손으로 민망한 동작을 취하면서 “클럽? 클럽? 뷰티풀 걸”을 외쳤다. 우리는 노노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따라붙었다. 그때 상황이 뭔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어쩌지, 어쩌지’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앞에 줄지어 있는 택시 쪽으로 우리를 유인했다. 밖에서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택시기사 한 명과 덩치가 눈빛 교환을 했다. 필리핀 남자 5명 정도가 우리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택시 앞까지 도착하자 덩치 녀석이 저기에 타라고 손짓을 했다. 협박과 권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다행인 건 우리가 대로변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2차선 길에서 차들이 슝슝 지나다니고 있었고 주변에는 4명이나 5명 정도로 무리를 지은 서양 관광객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나와 친구는 계속 “어떡하지?”를 반복했다. 섣불리 반항하다 혹시 그중 한 명에게 칼을 맞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그런 사례가 많다는 걸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뇌의 모든 시냅스들이 연합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수를 떠올리지 않으면 택시에 타고 어디로 잡혀갈지도 모르는 터였다. 그때 맞은편 끝에 펍이 하나 보였다. 야외 테라스에서 서양인 여자 두 명이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헤이!!” 꽤나 멀었기에 그들이 내 목소리를 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순간 우리를 둘러싸던 남자들의 시선을 그쪽을 향했다.


“마이 프렌드, 마이 프렌드 데얼, 위 투게더” 나는 다급하게 손가락으로 그 펍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다시 헤이!! 를 외치며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정말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를 붙잡거나 쫓아오거나 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저기 탔으면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러니까. 죽다 살았네.”     



그 일을 겪고 나서 우리는 해가 진 이후로는 절대 호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호텔 안에도 펍이 몇 개나 있었다. 순간 허탈해졌다.          



아참, 즉흥여행의 장점에 대해서 적는다는 게 그 위험성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말았다. 생각하고 말하지 않고, 말하면서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마다 내게 똑같이 하셨던 말씀이 있다. “말하기 전에 딱 3초만 생각을 해.”      



처음 했던 말을 조금 바꿔야겠다. 무작정하는 즉흥여행은 경우에 따라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여행지의 안전 정보에 대해서는 철저히 알아보고 치안이 별로인 나라에서는 밤에 웬만하면 바깥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것 같다. 즉, 어느 정도 위험은 차단한 상태여야 마음 놓고 즐겁게 즉흥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뻔한 말이긴 한데 아무튼 경험으로 직접 깨달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우리는 그때의 무서움을 안주 삼아 호텔 안의 펍에서 산미구엘 맥주를 ‘안전하게’ 마셨다.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다음날, 우리는 계획에 쫓기지 않아 푹 잘 수 있었다. 오전 11시쯤 커튼을 쫙 펼치고 세부 전체가 펼쳐져있는 것만 같은 경치를 보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할래?”

“음... 뭐하지.”

“호핑 투어가 재밌다 던데 한 번 해볼래?”

“좋지.”

“아 그런데 전날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네?”

“하면 되지.”     


여행 내내 우리의 계획은 그런 식으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그렇게 여행을 해도 3박 5일 동안 하고 싶은 걸 다 했고, 가고 싶은 곳을 다 갔다. 먹고 싶은 것 또한 다 먹었다. 가기 전에 너무 많이 알아보면 실제로 여행 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이나 신비로움이 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어디 어디는 꼭 가봐야 한다,라고 일정표에 못을 박아버리면 나중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그곳을 가지 못했을 때 왠지 모를 미련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세부에 유명한 관광지가 6개가 있다고 하자. 그곳들을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쩌다 4개 장소만 간다면 그 여행은 일종의 미완성으로 끝나버린다. 또한 6개를 다 채우려고 시간적, 심적 여유를 두지 않고 빡빡하게 일정에만 집착한다면 그건 여행보단 일에 가깝지 않을까?     


 

반면 애초에 그 목록을 2개나 3개 정도로 느슨하게 잡거나 별다른 계획 없이 아예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여행을 다닌다면, 당장 SNS에 올릴 사진은 별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몸과 마음은 편안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너무 계획적 여행의 단점만 부각해놓은 게 아니냐고 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여행 성향을 계획파와 즉흥파, 이 두 가지로 나눈다면 나는 극단적 즉흥파에 가깝다. 그래서 오로지 내 입장에서 내 멋대로 써봤다. 하하          




아... 어쩌다 보니까 ‘작은 섬 체험’에 대해선 시작도 못했다. 이번엔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쯤 되면 저주가 걸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때의 추억들을 무시한 채 그냥 얼렁뚱땅 마무리를 짓고 싶진 않았다. 내 속에 잠자고 있던 23살에 나에게 말할 기회를 최대한 주려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되어 버렸다. 다음 화에선 그 섬에 있었던 이야기를 진짜 써봐야겠다. (다른 기억들이 안 떠오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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