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n Jun 29. 2019

홀로서기

혼자 있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고 싶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 취직했을 때, 승진했을 때 

행복한 순간들은 꿈같이 다가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두근거리는 설렘보다는 너무나 익숙하고 편한 하루하루. 

회사에 가고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주말이 되면 친구를 만난다. 특별함을 찾기 위해 여행도 가고 취미도 만들어 보지만 누가 만약 갑자기 내게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시드니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겪은 시련은 셰어하우스 사기였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노련한 사기꾼의 입담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정직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다.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항상 모든 일이 나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기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보석 같은 존재들이 되어 주었다.

그중 같은 집에 살던 토모코는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나를 데려가 인터뷰를 보게 해 주었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외국인과 함께 일하고 싶던 나에게는 정말 절호의 기회였다. 시급도 높았고,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본인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그때의 나로서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더더욱 좋았던 것은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었다. 시드니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걱정스러운 마음들이 사르륵 녹아내려 버렸다. 그렇게 걱정만 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은 그냥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만 갔다. 모든 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목표를 세우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현실에 부딪혀 이런저런 꿈들이 사라지고 난 후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뭐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대학 전공을 선택해야 할 때 나는 일본어 관련 학과를 선택했다. 그 당시 일본 문화와 드라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이유였는데, 학교에 가고 나니 그 흥미가 갑자기 다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토록 관심 있던 일본어가 전공이 되니 갑자기 너무 멀게 느껴져 버렸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외우고, 강의를 듣는 시간들이 그저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은 홈스테이를 경험하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홈스테이나 일본인 학생들 가이드를 신청할 수 있었는데, 나는 모든 행사에 참여했다. 일본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해보니 더 잘하고 싶은 열정이 샘솟았고, 대화를 하고 싶어도 말이 잘 나오지 않자 부족한 나 자신이 답답해 나도 모르게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강의실에 앉아서 강의를 들을 때보다, 더 빨리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너무 아쉽고 짧게 느껴졌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년뿐. 주어진 이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주말이면 침대와 떨어질 줄 몰랐던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걷는 양도 늘었다. 버스를 타기보단 새로운 길도 걸으며 동네 구석구석을 다 알고 싶었다. 길을 걷다 예쁜 카페가 있으면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공원이 있으면 앉아 생각에 잠겨 보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살았던 세상과는 너무 다른 이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졌다. 목표가 생긴 것이다.

조금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렘으로 가득 찼다.




시작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남들의 경험을 들어서는 절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해외생활을 정말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가장 행복하고 소중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내가 완벽한 시작을 했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완벽한 셰어하우스를 구하는 것에 실패한 대신 좋은 사람들을 얻었고, 다음 셰어하우스를 구할 때 실패하지 않을 자신도 생겼다. 집을 볼 때 어떤 것을 미리 알아봐야 하는지, 얼마의 금액이 적당한지, 빌이 포함인지 아닌지 체크해야 하는지, 미니멈은 있는지, 실제로 겪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나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에요, 실패할까 봐 두려워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수많은 고민들에 둘러싸여 고민하거나, 오히려 아무 고민도 할 수 없을 만큼 텅 비어있는 상태인 사람들이 많다. 누구보다 반짝일 수 있는데, 그들은 주저하고 겁을 낸다.




호주 시드니에서 가장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가장 눈부시게 반짝였던 달링하버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매일매일이 너무 행복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절대로 놓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25, 직장을 그만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