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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ug 11. 2021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델타 변이 유행과 지속 가능한 방역


1. 델타의 공습


델타 변이의 위력이 거세다. 인도에선 올 4월부터 6월까지 단 3개월 간 1,800만 명의 코로나19 확진자, 2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물론 이 엄청난 수치조차 심각하게 과소평가된 것으로, 추산에 따르면 실제 감염자는 약 2억 명, 사망자는 100~200만 명에 달했다(Anand et al. 2021).


인도를 휩쓴 델타 변이는 이웃의 네팔, 방글라데시를 넘어 현재 전 세계 135개국으로 퍼졌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되었다. 빠른 백신 접종과 함께 방역을 완화했던 이스라엘에서 하루 4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한동안 거의 확진자가 없었던 호주에서도 하루 확진자가 300명까지 급증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코로나19 유행 후 최초로 일 확진자 2천 명을 넘어섰다. 델타 변이가 국내 지역 감염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고되었다.


델타 변이의 위력은 전파력에서 온다. 감염재생산수(R0)가 5에서 8 사이로 추정되어 오리지널 바이러스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전파력이 높다는 건 놓치는 감염자도 많다는 뜻이다. 역학조사가 감염 전파를 따라가지 못한다. 델타 변이 유행 후 치명률과 중증화율도 소폭 상승했다. 실제로 바이러스의 위력이 더 강해졌는지 단순히 놓치는 감염자(분모)가 늘어 사망자/중증환자(분자) 비율이 과대평가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중증 환자가 빠르게 늘어날 뿐 아니라 중증환자의 연령이 젊어져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따라서 의료체계, 특히 중증 병상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못 받으면 치명률도 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위험군 백신 접종으로 인해 확진자 수에 비해 의료체계 부담이 비교적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백신을 맞지 않은 고위험군이 많아 유행 규모 자체가 커지면 감당하기 어렵다. 큰 규모의 유행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의료체계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아 당분간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새롭지 않고, 무섭지 않다.


급기야 미국 CDC 내부자료를 인용해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The war has changed)"는 보도까지 나왔다. 델타 변이가 백신의 예방 효과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접종 후 감염(a.k.a 돌파감염)된 사람에게서도 전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접종자도 마스크 착용 등 위생수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백신이 중증화 및 사망을 예방하는 효과는 여전히 높게 유지되어 최악은 면했다.


변이의 위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난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델타 변이의 등장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새롭지 않고,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변이의 등장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 특성상 변이가 쉽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되었다. 변이가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전파력이 높아지는 변화가 대단히 특별하다고 볼 순 없다.


델타가 첫 번째 변이도 아니다.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알파 변이는 지난해 유럽 대륙의 2차 유행을 주도했다. 그때도 전파력과 치명률이 높아졌다는 보도가 나왔고 실제 상당한 규모의 유행이 한동안 지속되었다(링크). 남아공에서 처음 발견된 베타 변이 역시 무섭게 퍼지며 남아공과 그 주변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베타 변이는 백신도 잘 안 들어 도입 예정이던 백신을 취소하는 사건도 있었다. 주목받지 않았지만 변이로 인한 가장 심각한 피해는 중남미 국가들에서 나왔다. 브라질에서 최초 확인된 감마 변이, 페루에서 최초 확인된 람다 변이는 중남미 국가의 느슨한 방역을 틈타 급속히 퍼졌다. 진단검사에 의해 발견된 감염자나 사망자 수는 적지만, 페루, 멕시코, 에콰도르, 볼리비아, 브라질 등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초과사망이 보고된 것으로 보아 변이로 인한 피해가 굉장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파는 182개국에, 베타는 132개국에, 감마는 81개국에 퍼져있다.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서 몰랐을 뿐, 변이의 등장과 전파는 전혀 새롭지 않다.



델타 변이가 더 무섭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작년 10월에 발견된 델타 변이가 급격히 퍼진 것은 백신 접종 개시로 인해 인도의 거리두기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인도가 인구대국일 뿐 아니라 유럽-미주-아시아 국가들과 인적 교류가 많아 전 세계로 쉽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델타의 급격한 확산이 이뤄진 곳은 다 거리두기가 기존에 비해 완화되었거나 준비 없이 국경을 열었던 곳이다. 나름대로 대응체계를 유지한 곳에는 급격한 확산세를 보이지 않거나 아예 전파 자체가 안 된다. 즉, 풀면 퍼지고 조이면 잡힌다는 방역의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파도, 베타도, 감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미국, 이스라엘, 유럽 주요국 등은 모두 백신 접종 후 거리두기를 너무 성급히 완화했기 때문에 델타 변이가 더 빠르게 퍼진 면이 있다. 전파력이 높아진 변이의 유입에 대비하였다면 현재 피해는 더 적었을 것이다.




3. 무서운 건 인간의 오만함이다.


"집단면역 달성 후 일상 회복."


지난 6개월 내내 지겹게 들은 말이다. 접종을 많이 한 나라에서 봉쇄를 해제하고, 마스크를 벗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부러워하는 보도들도 많았다. 1300만 명이 1차 접종을 마치면 거리두기를 완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나왔다. 11월에 '집단면역을 달성'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는 총리의 발언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살펴본 해외 사례들은, 한결같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접종과 거리두기가 균형을 이뤄야 유행이 통제된다. 접종 개시의 기대감이 방역의 강도(또는 그에 대한 순응)를 낮추면 어김없이 감염자가 늘었다. 접종률을 올리는 동시에 고강도 거리두기를 지속한 나라만 재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접종과 자연감염 후 회복을 통해 안정을 '집단면역' 수준의 항체보유율을 보이는 나라도 어떤 조건(변이, 국경 개방, 거리두기 완화, 백신 효능 감소 등)이 바뀌면 또 확진자가 늘었다.


우리나라라고 비껴간다는 법은 없었다. 그간 정부의 적절한 개입,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헌신, 일반시민들의 협조로 비교적 잘 막아왔지만, 단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뿐 장기전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정부의 (적어도 드러나는) 목표는 '확진자 줄이기'에서 한발짝도 못 나아갔으면서 확진자가 늘 수밖에 없는 정책과 메시지를 보냈다. 의료진과 공무원을 갈아 넣는 방역에 번아웃이 온 지 오래였다. 보상 없는 협조 요청이 오랜 기간 이어지며 피해 취약계층이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몰렸다. 반발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불신하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졌다.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강조한 백신 접종조차 삐걱대며 불만이 폭주하기에 이르렀다(주: 나는 백신 도입엔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장기전이 필요한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대처했을까?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만 마음속에 품고 플랜 비, 씨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처럼 보인다. '하루 확진자 2천 명'이 대단히 특별한 일 같지만 난 잘 모르겠다. 하루 2천 명이면 발생률이 대략 10만 명 당 4명이다. 지난 1주일간 평균 일일 확진자가 이스라엘에서 10만 명당 44명, 영국에서 40명, 미국에서 35명 발생했다. 접종률 8~90%에 달하는 아이슬란드와 몰타의 발생률은 각각 10만 명당 33명, 15명이다. 우리보다 상황이 더 나은 나라도 물론 있다. 하지만 2천 명 이상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우린 여기에 얼마나 대비가 되었나.


고비의 시작에는 항상 오만함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막아설 수 있다는 오만함. 아이러니하게도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대처하면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틈을 파고드는 게 이 영리한 바이러스의 특징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종식', '일상 회복', '자랑스러운 K-방역', '마지막 고비'를 말할 때마다 확진자가 치솟았다. 백신 접종하면 끝날 것처럼, 안 되면 무한정 사회적 거리두기를 쓰면 막을 수 있을 것처럼, 그간 해왔듯 사람들 갈아 넣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 고통의 시간은 더 길어졌다.




4. 해결책


해결책은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질병의 위험'을 평가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수용 능력(감당할 여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아래 그림). 소셜미디어와 언론 인터뷰와 기고로 지난 1년 반 동안 내내 해왔던 이야기다. 미리미리 준비하면 값비싼 수업료 - 종종 생명이 걸린 - 없이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철없는 착각이었다. 이미 준비 없이 위기를 맞았는데 별수 있나. (처)맞으면서라도 배워야지. 최악은 다 맞은 다음에 좀 나아졌다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장기전에 적합한 상시 대응 체계로 넘어가야 한다. 1차적으로 백신 접종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변이의 위력을 고려한 '질병의 위험'을 낮춰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장기화될수록 극심한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약간의 감염을 감수하더라도 비용 대비 편익이 큰 조치에 집중해야 한다. 강제하기보다는 정보에 기반한 결정(informed decision)을 내리도록 돕고, 중대한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강제적 제한 조치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라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수용 능력'을 높여야 한다. 역학조사 범위를 조정하고, 시설 격리에서 재택 치료로 신속히 전환하고, 중환자 병상을 늘리고, 의료진, 공무원 등 담당 인력을 보강하는 데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어느 하나 쉽다는 얘기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이뤄지려면 결국 좋은 거버넌스가 필수다. 과학적 근거가 사회경제적 조건과 조화를 이루며 정책에 반영되는 게 급선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면서 권한과 책임을 나눠지는 기구를 만드는 게 첫번째 과제라면, 이 기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두번째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통로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팬데믹 시대에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쉬운 해결책도 없다. 하지만 겸손하게 대응하면 고통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원칙대로만 하면 이번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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