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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Oct 01. 2021

백신 패스, 조금 더 신중해주길

불평등을 강화하는 울타리 나누기에 반대하며

요새 '백신 패스' 도입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백신접종자(혹은 PCR 검사 결과 음성 확인자)에게만 다중이용시설 이용이나 행사 참석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정부는 해외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정책이기 때문에 도입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백신 패스 도입에는 여러가지 생각할 지점이 있습니다.



우선 해외와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릅니다.  해외의 백신 패스는 유럽국가 등 주로 강력한 봉쇄 조치를 폈던 나라들에서 백신 접종을 한 사람에게만 조건부로 방역을 풀어주는 형태입니다. 즉, 원래 못하던 걸 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백신 접종자에겐 혜택인 반면 미접종자에겐 현상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임 인원 제한만 있었을 뿐 전면적인 이동제한이나 영업금지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백신 패스는 할 수 있었던 걸 못 하게 하는 것이므로 미접종자에겐 불이익이며 접종자에겐 현상유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봉쇄를 도입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실증적으로 경험적으로 봉쇄 도입은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특정 시민들이 자유롭게 하던 일들을 못하게 하려면(즉, 권리를 박탈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발적 협조와 역학조사로 유행을 통제해온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접종자만 식당, 카페, 주점 등을 이용하게 하는 데엔 근거가 부족합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4단계에서 집합금지 중인 고위험 시설(유흥업소 등)만 제한적으로 백신 패스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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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나라에 미접종자에게 접종을 제공하려는 충분한 노력이 있었는지 미지수입니다.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거나, 휴가를 내지 못하거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 상의 이유가 있어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나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접종 의향이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고, 역사적으로 억압받았던 특정 계층에서 접종률이 낮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들이 접종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백신 패스를 도입하면 불평등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다소간의 강압이 포함된 디스인센티브는 오히려 당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접종률이 감소하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백신 접종에 대한 접근성을 충분히 높이는 노력이 '백신 패스'보다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미접종 감염자를 사회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다수가 안전하기 위해 소수를 울타리 안에 분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코로나19 대응에서 했던 실수를,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다고 말하면서 똑같이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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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을 설득하는 노력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쫓기듯 부작용이 큰 정책을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확한 이상반응 심사와 넓은 범위의 보상이 필요합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합니다.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의 우려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미접종자들이 기존의 활동을 제한받지 않게 하되,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활동의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긍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금 늦더라도 함께 가는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다수가 안전하기 위해 소수에게 짐을 지우는 형태가 되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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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적극적으로 허위과장 정보를 생산하는 소위 '안티 백서'는 따로 대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매우 소수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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