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열번째 현안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현재 소위 '위드 코로나'를 시행 중인 해외 주요 국가들의 상황을 살피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만한 점을 찾아봤습니다. 간략한 보고서이지만 그간의 제 조사와 분석, 고민은 꽉꽉 눌러 남았습니다.
1. 이미 '위드 코로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께서 이런 말을 했죠.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장기간 공존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지난 1월부터 단체 줄넘기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한 말이 아닙니다. 지난해 9월에 한 말입니다. 장기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상했고,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에 방역 대응의 방식과 수위를 계속 미세조정해왔습니다.
사실 올초부터 영국이나 이스라엘, 미국, 싱가포르에서 백신 맞고 일상을 회복하는 게 부럽다는 말을 들을 때 약간 의아했습니다. 소위 '위드 코로나'를 한다는 나라들보다 우리나라 유행상황이 더 안정적이고 방역 조치의 강도도 낮으며 시민들 활동도 더 자유로웠거든요. 보고서에 들어간 [그림 5]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이동량은 백신이 없던 올 3월이나, 백신이 있는 올 10월이나 위드 코로나 한다는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편입니다. 경제 타격은 가장 적었고 회복은 가장 빨랐다는 점도 이전 포스팅에 보여드렸습니다.
바이러스와 안전하게 공존하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한국은 이걸 비교적 잘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러워할 대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2. 'K-방역'의 그늘
물론 이는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동안, 뒤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장기간 집합금지 중인 고위험시설 업주 및 종사자, 심야 영업제한의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진, 방역 담당 공무원, 보건소 직원들,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대면 서비스업 종사자,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취약계층 학생들이 있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소위 '고위험' 활동이 놓여있던 사람들의 인내도 길어졌습니다. 감염자들은 필요 이상의 사회적, 심리적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방역 당국의 실제 정책은 '위드 코로나'였으면서, 메시지는 여전히 '확진자 수 감소'가 목표인 것처럼 나왔습니다. 이 둘 간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시민들 사이의 혼란, 편가르기, 상호비난 등은 또다른 사회적 비용이었습니다. 소수를 갈아 넣어 만든 'K-방역' 신화에 갇혀 확진자 확산에 대비한 대응 체계 정비와 병상 확충, 인력 지원을 소홀히 했습니다. 영업제한에 대한 손실보상도 너무 늦고 너무 적습니다. 이제 바꾸자는 목소리조차 '지금은 감염 통제가 우선'이라며 뒤로, 뒤로 미뤄뒀습니다.
해외와 비교하여 평균적으로 잘한 것은 어떤 사람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실패하면 모두 실패하는 단체줄넘기처럼, 누군가를 쓰러지게 남겨둔 채 이 팬데믹과의 전쟁에서 오래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3. 그래서 더, '위드 코로나'
그래서 방역체계의 질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백신 접종률을 충분히 끌어올리고, 역학조사 및 검사 범위를 수정하며, 피할 수 없는 감염 확산에 대비하여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보상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영업시간 제한 등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영역은 지금이라도 풀되, 너무 갑자기 감염이 늘지 않도록 마스크나 모임 인원 제한 등 비용이 적은 조치는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합니다. 유행 상황에 따라 서서히 예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너무 서두르면 독이 됩니다.
또한 감염의 사회적, 심리적 비용을 관리하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합니다. 걸려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감염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서로를 '감염원'으로 보지 않는 연습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감염이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시스템을 갖춰야지만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위드 코로나'는 백신이 있는 '우리'만 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빠른 백신 접종을 통해 거의 유행을 잡았다고 환호했던 영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다 델타 변이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고강도 거리두기로 감염을 통제했던 호주와 뉴질랜드도 더 이상 봉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인도의 극심한 유행 상황 가운데 발생한 델타 변이가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유행이 통제되지 않고 급격히 확산되는 나라가 남아있다면 한 나라에서의 '위드 코로나'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신 보급뿐 아니라 유무형 접종 인프라 지원까지 포함한 글로벌 백시네이션 노력에 어느 때보다 더 큰 관심이 필요합니다.
4. 아슬아슬한 균형
팬데믹 시대에 균형감각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방역과 일상 사이, 공동체와 개인 사이, 안전과 자유 사이, 과학과 정치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습니다.
의과학 분야 감염병 전문가 분들과 약간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제가, 보상이 크지 않은 여러 활동에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보고서도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저의 제안이 가닿아야 하는 분들께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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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해외 사례 주요 내용 + 경제 전망 + 백신 패스 논의 등이 담겨 있습니다.
간략 요약:
영국은 맞으면서 열었고,
북유럽은 비교적 준비가 잘 된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열었고,
서유럽은 열기 무서우니 백신 패스를 활용하는 중,
싱가포르와 호주는 연다고 말만 하고 지지부진한 상황, 입니다.
각 국가는 과거 유행 경험, 의료체계 준비 상태, 감염에 대한 인식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전환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