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 전공에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한 여정
한국어 강사 소개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여기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이란 외국인, 교포, 다문화가정 자녀 등을 일컫는다. 국어기본법과 국립국어원에서 시행하는 한국어교원자격증제도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 즉 한국어 강사를 ‘한국어교원’으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어교원의 근로 형태는 시간 강사 혹은 프리랜서에 가까워 ‘한국어교원’ 대신 ‘한국어 강사’로 불리는 사례가 훨씬 많다.
대학교 부설교육기관(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한국어 선생님
1년에 4개의 학기와 4번의 방학이 있는 곳, 한국어학당
한국 사람들이 미국, 영국, 호주 등 다양한 곳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처럼 외국 사람들도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온다. 어학연수를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교 부설교육기관(‘한국어학당’, ‘언어교육원’ 등의 명칭으로 불림)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그러나 1년에 1학기, 2학기로 나뉘는 대학교 정규과정과는 달리 한국어학당에는 한국어학당만의 특별한 학기제가 있다. 한국어학당에는 1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개의 학기가 있고 한 학기는 10주로 구성된다. 학기 사이에는 약 2주간 방학이 있다. 즉, 한 학급은 10주 동안 유지되며 10주 후에는 다른 반으로 바뀌는 것이다. 학생들은 10주 동안 하루에 매일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듣고, 방학에는 고향에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와서 다음 학기 수업을 이어 듣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어학당에서는 10주라는 짧은 기간(짧다고 생각하면 짧고, 길다고 생각하면 길 게 느껴질 수 있는 기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이 수없이 반복된다.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한 학급의 담임을 맡으면 한국어 강의 외에도 학생 관리에 책임이 생기고, 담임 반 학생들과도 더 정이 들기 마련이다. 학생들도 학기 초반에는 쉬는 시간이 되어도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도 잘 안 할 정도로 어색해했지만 어느덧 서로 정이 들어서 학기 마지막 날 수료식을 할 때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수료식에서는 1년간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떠나는 학생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 학생은 한국어 공부가 어려워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막상 어학연수가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큰 듯했다. 평소 조용히 지내는 학생이라 교실에서 눈에 잘 띄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마지막 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내게 장문의 카드를 주는 것을 보고 나도 울컥한 적이 있다.
1년에 4번의 방학이 있으니 방학 동안 실컷 놀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휴가철이 아닌 애매한 기간에 쉬다보니 만날 사람은 대개 동료 선생님들 외에는 마땅치 않으며 수업료를 시급으로 받는 시간 강사의 특성상 방학 때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방학이라 쉴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이상하게도 외로운 기간이다. 방학이 되면 한 학기 동안 속 썩인 학생들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게 되어 후련하면서도 매일 보던 학생들을 더 이상 못 보게 되니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그리운 나와 달리 학생들은 벌써 나를 잊고 즐겁게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면서도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약 2주간의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새 학기가 어김없이 시작된다. 지난 학기 학생들은 각자 새롭게 배정된 반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 반 학생들이 ‘우리 반, 우리 반’하면서 지내다가 새로운 반 친구들과 어울리고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 새 학기에 잘 적응한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괜스레 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마음이 휑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빨리 정을 주고 다시 빨리 정을 뗄 수 있다면 간편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는 지라 새로운 만남은 항상 설레지만 이별은 늘 아쉽다. 언제쯤 이 짧은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려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알다가도 모를 학생들의 대답
어학연수를 온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이들이 먼 타국에 홀로 유학 와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하다. 처음에는 한글 자모도 읽기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한국어로 제법 긴 문장을 말하는 걸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 외국어 수업의 특성상 선생님이 수업 시간 내내 말하는 일방향적인 강의 방식은 지양된다. 대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학생들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대화 연습을 많이 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의 대답에 따라 수업 분위기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아는 학생이 있는 반은 수업하기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반 전체가 대답을 하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별 다른 반응이 없는 조용한 반이면 수업시간 동안 교사는 연극배우가 된 것처럼 평소와 다른 과장된 목소리와 활발한 연기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까지 온 만큼 수업시간에 곧잘 대답하는 편이다. 그런데 한국어 초급반에서 나오는 대답과 중급반에서 나오는 대답의 경향이 사뭇 다른 때가 있다. 초급반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한국어로 대답을 만들다 보니 종종 기발한 대답이 나오고는 한다. 반면 중급반에서 나오는 대답은 학생들의 사고방식, 문화적 차이가 드러나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표현법 ① - “얼음을 찜질해요.”
하루는 초급반에서 병원에서 사용하는 한국어를 주제로 수업을 했다. ‘소독약을 바르다, 붕대를 감다’ 등의 치료 관련 표현을 익힌 후 듣기 활동을 하면서 듣기 문제에 나온 보기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물었다. 보기 그림에는 얼음찜질을 하는 남자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모범 답안은 “얼음찜질을 해야 해요.”였다.
“여러분,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자 한 학생이 나를 향해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얼음을 찜질해요.”
그 대답을 듣고 다른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다른 학생들마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꾹 참고 학생들에게 얼음을 찜질하는 것이 아니라 얼음찜질을 하는 것이라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본 기말 시험에서 그 학생을 비롯하여 몇몇 학생들은 주관식 답안에 당당하게 썼다.
“얼음을 찜질해요.”
얼음을 찜질하지 말라고 수업 시간에 그리 강조했건만 소용이 없었나보다.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표현법 ② - “너는 생각이라는 걸 할 필요가 있어.”
이번에는 한국어 중급반 수업에서 생긴 일이다. 오늘 수업 활동에서는 ‘V-(으)ㄹ 필요가 있다’라는 문법을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생활비를 다 써 버렸다는 친구에게 어떻게 조언할 수 있을까? 아래 샘플 대화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 “이번 달이 2주나 남았는데 이것저것 사느라고 생활비를 다 써 버렸어.”
나: “벌써? _________________ ”
빈 칸에는 “너는 생활비를 아껴 쓸 필요가 있어.”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예상과 달리, 한 학생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벌써? 너는 생각이라는 걸 할 필요가 있어.”
평소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 이 학생은 이렇게 종종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처럼 말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표현법 ③ - “선생님! 똥이 나요!”
다음으로는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똥과 오줌은 위생상 한국어 금기어로 여겨진 탓에 한국어 학습 교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기들이라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 표현을 습득하지만 외국인들은 이러한 표현들을 놓치기 쉽다. 그렇지만 생활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표현이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급한 얼굴로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똥….”
그 뒤에 어떤 단어가 나와야 할지 학생들더러 추측해 보게 했다. 한국 사람은 그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마렵다”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고민 끝에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똥이 나요!”
얼마 전에 배운 표현인 ‘땀이 나다’에서 착안해서 생각해 낸 단어 ‘나다’. 나는 이들이 귀여워서 풋 웃고 말았다.
그 외에도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표현법은 늘 새롭다. 한국인이 보면 어색한 표현이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에, 그들의 사고방식과 관점에서 충분히 그렇게 표현할 법한 것이고, 그래서 그들만의 기상천외한 표현법인 것이다. 학생들의 대답은 이렇게 종종 내 예상을 빗나간다. 그래서 항상 학생들의 대답이 기대되고, 한국어 수업이 재미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수업 시간에 대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학생들이 대답을 하지 않아서 마주해야 하는 침묵의 순간, 내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면서 수업 시간에 나서서 대답하는 것을 주저한다. 나도 과거에 영어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 시간에 먼저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피한 적이 있어서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게 한국어 강사인 내 역할이기에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보다는 학생들이 대답하기 쉬운 질문으로 바꾸어 말하고,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들의 대답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눈빛으로 말한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그대여, 전 언제나 그대의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