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주기는 지난밤 일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고 콧속에서는 이상한 벌레가 나온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학교 옆의 어죽 맛집을 찾아가는데 학교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이상한 아저씨들이 있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설치한 장치 가까이 가자 죽어버리는 벌레. 그리고 사라진 어죽 맛집과 검은 양복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선풍기에 실체가 드러나는 어죽 맛집. 도대체 어주기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늘의 제시어: 서울 한복 카메라 자전거 모험 고요한
꿈이었던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이 떠오르면서 '만지지 마시오'라는 글씨가 무섭게 다가온다. 도대체 이 그림 속의 벌레는 무엇이길래 내 기억 속에 이렇게 생생하고 또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일까? 어쨌든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림을 그대로 책상에 두고 시계를 본다. 아직 학교에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데 잠에서 깼나 보다. 어두운 거실로 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니 일찍 일어난 아빠가 거실에서 체조를 하고 계신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주기 일어났니? 잠은 잘 잤어?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거야?"
아빠의 물음에 이상한 꿈과 벌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너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대답한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요. 오줌이 너무 마려워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얼른 거실 화장실로 들어간다.
문 밖에서 아빠가 체조하는 소리가 들리는 도중에 변기에 앉아서 잠깐 생각을 해 본다.
'일단 저 그림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대로 두고 얼른 학교에 가보자. 꿈속에서 보았던 이상한 아저씨들이 아직도 학교에 있는 것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화장실을 나오니 엄마도 일어나셨다. 엄마께 말씀드린다.
"엄마 오늘 학교에 좀 일찍 등교할게요"
"정말? 오늘 일찍 학교 가는 날이야? 학교 공지에는 그런 말이 안 올라와 있던데?"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가끔 일찍 가는 날도 있어야지 싶어서요"
"아이고 우리 어주기가 6학년이 되더니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일찍 학교에 가면 안 되는 것 아니니?"
"네 그렇긴 한데 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운동 하고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운동까지 한다고? 우리 어주기가 맞는 거지? 호호호. 알았어 잠깐만 밥 차려줄게"
엄마가 급하게 차려준 밥과 김, 달걀 프라이와 김치를 먹고 집을 나선다. 문 앞에서 엄마 아빠께 항상 하는 차렷, 인사를 하자 엄마와 아빠가 우리 아들 사랑해요. 최고 멋져하며 손가락 하트를 보내주신다. 씽긋 웃고 집밖으로 나와 학교로 향한다. 문이 닫힐 때 아빠가 엄마에게 "오늘 나 서울로 출장 가요. 출장 갔다가 늦게 올지도 몰라요"라고 하신다.
학교에 다가가자 꿈속에서 보았던 안테나도 검은 양복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학교 옆의 허름한 판잣집은 그대로 있는데 꿈속의 기억이 나서 무서워 반대쪽 교문으로 멀리 돌아간다. 도로 옆 전봇대에 설치되어 있는 CCTV카메라가 왠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열려있는 후문을 통해 운동장에 들어가서 어제 안테나가 서있던 위치로 다가가 살펴보는데 그 자리에 이상한 한복이 놓여있다.
'이 한복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 건들고 싶지 않은데 호기심이 너무 많이 생겨서 운동장 한 켠의 화단으로 가 부러진 나뭇가지를 들고 와서 한복을 들춰 본다. 그러자 한복에서 종이가 한 장 떨어진다. 한복을 치우고 종이를 집어보니 이 이상한 책 벌레 그림이 아니지 않은가? 깜짝 놀라 종이를 떨어뜨리고 손을 옷에 비볐다.
그러는 사이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이 교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고요한 이 순간이 곧 친구들이 노는 소리로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에 운동장에 아이들이 많아질 것을 생각하니 빨리 이 그림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복으로 책 벌레 그림을 싼 다음 가방에 넣고 교실로 갔다. 수업을 들으면서 가방 속의 그림이 신경이 쓰여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반 친구 상수가 쉬는 시간에 다가와서 주말에 뭐 했냐며 묻는다. 상수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인데 입이 좀 가벼워서 비밀 이야기를 하면 반 아이들이 다 알게 되어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엄청 하고 싶은데도 꾹 참고 그냥 신나는 모험 했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상수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잠깐만 보도로 나가자고 한다. 복도로 나가자 상수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어제 이상한 일이 있었어. 내가 학교 앞을 지나서 빵을 사러 가고 있는데 이상한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학교 운동장에 큰 안테나를 설치하고 있었거든. 학교 앞 도로에는 검은색 큰 버스가 세워져 있고. 그런데 빵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모두 다 사라지고 없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없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 들려 보았는데 신기한 물건을 하나 보았어. 이게 그거야"
라고 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복도에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잠깐 살피고는 내 눈앞에서 손을 펼친다. 손바닥에는 정말 조그마한 자전거가 놓여있다. 꼭 진짜 자전거처럼 생겼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몰래 보여줄 이유는 없을 것 같아서 상수에게 묻는다.
"와 진짜 정교하게 생겼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거야? 평상시랑 다르게"
그러자 상수가 이야기한다.
"어주기야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이 자전거 너랑 같이 발견한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어제 이 자전거를 본 적이 없는데"
그러자 상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더욱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어제 네 눈이 이상했어. 눈동자가 회색 빛이라고 할까. 뭔가 멍해 보였지. 그러면서 계속 나무, 나무 중얼거리면서 운동장을 돌고 있더라고. 그러다가 이 자전거를 발견해서 너에게 보여주자 갑자기 집으로 가버렸어."
그 이야기를 듣고 어제의 꿈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 이상한 일에 나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상수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용기가 생기면서 눌러오고 있던 호기심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