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월 6일 현충일에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 몇 달 전부터 숙소 예약 대기를 걸어 놓았으나 결국 불발이 되고 아버지께서 한 달 전에 그 숙소 당첨 되면 우리 데리고 가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이 나서 숙소도 예약이 되지 않은 김에 요즘 유행하는 맨발 걷기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대전 계족산 황톳길 걷기를 말씀드리고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 아내, 첫째, 둘째 이렇게 여섯 명이서 대전으로 향했다.
연휴 기간이라 길이 엄청 막힐 것 같아 집에서 아침 5시 30분에 나서서 중간에 부모님을 모시고 계족산으로 갔는데 다행히도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았다. 약 세 시간이 걸려 도착한 산 입구에서 도로변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고 8시 25분에 등산을 시작하였다.
이 황톳길은 대전의 소주 회사에서 2006년에 회사 회장님의 특별한 경험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계속 그 회사가 자금을 지원하면서 황톳길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황톳길은 바닷가 모래사장 같은 느낌일 것으로 생각하고 황톳길이 나오자마자 신발과 양발을 벗고 걷기 시작했는데 생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딱 찰흙의 느낌이었는데 물이 있는 곳은 찰흙처럼 찰진 느낌으로 발이 빠지고 마른 곳은 마른 찰흙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몰캉몰캉한 느낌이 재미있다가도 오르막길에서는 엄청 미끄럽기도 하고 또 딱딱한 구간에서는 발이 좀 아프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분이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약 세 시간 정도 걷다 보니 상당히 힘들기 시작하였다.
지난 4월 달에 개인적인 도전으로 20km 산행을 도전하였다가 무릎을 다치고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못하고 병원 다니며 지내다가 의사 선생님이 이제 먼 거리 걷기부터 해 보라는 말을 듣고 처음 하는 산행이기도 하였다. 평생을 등산을 해오신 아버지께서는 이번이 세 번째이고 엄마랑은 두 번째라며 황토의 효능에 대해서 흥분하셔서 계속 말씀하시는 통에 손자 두 놈들은 할아버지 말에 살며시 웃어 드리면서도 심드렁한 표정을 못내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자식 손자 며느리가 모처럼 만에 같이 놀러 간다며 새벽 2시부터 일어나셔서 김밥을 싸셨다고 한다. 그리고 수박도 사서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담아 오셨다.
맨발로 걷다가 중간에 놀이터가 나오고 널찍한 평상이 있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나서 할머니께서 직접 마신 김밥을 손자들이 맛있게 먹는다. 우리 어머니는 예전부터 플라스틱 반찬 통의 뚜껑 짝을 맞추지 못하셔서 반찬들의 국물이 새어 나와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맛있다고 맛있게 먹는 아들들이 고맙다.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가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시 돌아서 내려왔다. 전체 한 바퀴 도는 코스의 한 1/4 정도 한 것 같음에도 총 4시간의 맨발 걷기를 한 것이다 보니 상당한 피곤함이 밀려왔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인지 그래도 오후 한 시가 미처 되지 못하여 점심을 어디 가서 먹을까 하다가 예전에 가보았던 공주 공산성 옆의 비빔밥 집으로 이동하였다. 거의 졸다시피 하며 운전을 하다가 두시 가까이 되어서 공주에 도착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쉬는 날이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옆 식당으로 가서 먹었는데 인심이 고약하다. 거기다가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손님들은 어릴 적 소꿉친구분들 같았는데 엄청 시끄럽게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있다 보니 빨리 식당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좀 짜증이 나셨는지 얼른 나가자고 하셔서 식당에서 바로 나왔다. 아내가 공산성 바로 옆의 공주밤빵 집으로 가서 빵이랑 음료를 마시자고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그곳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정말 인기가 많은 맛집이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꼬불꼬불 많이도 서 있어서 한 20분쯤 기다려서 간신히 주문을 하였다.
빵을 엄청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이런 인기 맛집의 모습에 엄청 흥분하시고 기대하는 눈치셨다. 벌써 바로 앞 식당에서의 경험을 잊으시고는 정말 좋다고 손자들과 신나게 이야기하신다.
우리가 같이 먹을 빵과 어머니 아버지께서 활동하시는 게이트볼장에 가지고 가서 드실 빵을 아내가 사서 드리니 아버지께서 세상 이런 며느리가 어디 있느냐며 정말 좋아하신다. 그러고는 빵도 정말 맛있다며 잘 드시지도 않는 빵을 맛있게 다 드시고는 둘째 손자 아이스크림도 뺏어 드신다. 살면서 아버지께서 이렇게 빵이랑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나지를 않는데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빵집으로 가자고 한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빵을 먹고 어머니께서 공산성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한 번 올라가 보자고 하셔서 표를 사서 올라갔다. 아버지께서는 백제 역사에 관심이 많으셔서 공산성도 여러 번 오시고 또 그곳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등에 대해서도 예전 설명 들으신 것이 있다면서 의자왕의 마지막 항전 장소가 부여의 낙화암이 아니라 이곳 공산성이라면서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데 손자들은 그새 어디로 사라지고 나랑 아내만 듣고 있었다.
공산성 탐방을 마치고 다시 차에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아들 무릎 다친 것과 관련해서 한참 말씀을 하신다. '20대 때 생각으로 산행을 하면 안 된다. 아빠도 그렇게 해서 무릎 다쳐서 상당기간 고생해 봐서 안다. 나이가 50에 가까워지면 관절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시면서 내가 하는 등산 코스 하나하나 코치를 해 주셨다. '설악산을 가면 소공원에서 공룡능선으로 해서 한 바퀴 도는 식으로 가는 것은 정말 무리스럽다. 반드시 1박 2일로 계획해야 하고 백담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종주코스를 하기 위해 내설악 계곡을 통과해서 소청봉 산장이나 희운각 산장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공룡 능선으로 해서...'
올해 들어 부쩍 나이 드시는 것이 느껴져 가능한 한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함께하려 하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의 이러한 한결같으신 모습에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은 그만큼 부모님이 걱정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내가 내 아들들에게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며 잔소리하는 모습과 같아서 아 내가 아빠를 닮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특히 어머니께서 최근에 계속 계속 건강이 나빠지고 계시어 누나도 나도 동생도 너무나도 걱정이 크다. 그럼에도 오늘 손자들이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면서 힘든데도 끝까지 해내는 모습 또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 빈틈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를 채워준 아내의 지혜 또한 고마웠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이 모든 시간과 추억이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기억에 남아서 어떤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