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하루하루 나이 드신다고 느껴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부모님과 만나고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올 초에 부모님께 금요일마다 부모님 식사 사드리러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워낙 동네에서 게이트볼, 동창 모임 등을 열심히 하시는 부모님이시다 보니 약속 잡기도 어렵다. 드디어 어제 부모님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생겼다.
마침 방학인 둘째가 회사 근처에서 모임 약속이 있는 엄마와 함께 회사로 왔다. 그래서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고 서울의 공기를 느낀 다음 아내는 모임으로 가고 둘째와 나만 지하철을 타고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사람이 없이 운전이 되는 지하철의 맨 뒤칸에서 멀어져 가는 지하 터널을 아들과 바라보며 부모님께 간다. 지하철도 신기하지만 영화에서나 보던 지하 터널 내부를 실제로 보니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둘째가 소중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모습이 단조롭다 보니 금방 질려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같이 보면서 미금역에 내렸다. 나는 엄청 재미있는 만화인데 둘째는 별로 재미있지가 않다고 하여 둘째가 재미있다는 만화를 보니 내가 재미가 없다. 같은 플랫폼에서 동시에 연제가 되고 있는 만화임에도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세대 차이인가 싶다.
부모님께서 오늘은 병원 정기 검진날이라 병원에 가 계셔서 부모님이 계신 병원으로 향한다. 둘째가 오늘 것을 모르고 계셨던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며 반기신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그렇듯이 엄청 반기며 나와 손자를 반기신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 내의 스카이워크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 옆에 있는 산길을 잠시 산책하기로 하고 나왔는데 이번 주 태권도 시범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한 둘째가 발바닥이 아파서 못 걷겠다고 하여 어머니와 둘째는 산책로 계단에 앉고 나와 아버지만 산책을 잠깐 하고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에 타서 둘째가 먹고 싶다고 한 참치집으로 향한다. 미금 역에 유명한 중화요릿집을 가려고 하였는데 둘째가 자기는 간장게장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참치회라고 하여서 부모님 단골 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될 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아서 엄청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래서 억울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열심히 했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소용이 없다. 고3 때부터만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는 어머니가 기억하는 내가 더 객관적이다 보니 아들도 할머니 말만 믿는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손자를 교육하겠냐 싶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둘째가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아빠 스스로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여서 아빠 대단하지? 하고 말하니 그것이 아니라 아빠가 대단한 것이 아닌데 아빠 생각에는 대단한 것처럼 말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박장대소를 하며 깔깔깔 웃으시고 아버지도 엄청 즐겁게 웃으신다.
식당에 도착해서 항상 시키는 참치 정식을 주문하였다. 둘째가 엄청 맛있게 먹는다. 초밥도 할머니, 할아버지 것 다 얻어먹고 회도 김에 싸서 초장에 찍어 오물조물 잘 먹는다. 따로 시킨 탕도 떠주니 국물이 시원하다며 잘 먹는다. 어머니 아버지 께서도 이 식당은 항상 만족스럽다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신다. 식사를 하면서 첫째 이야기 둘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모님께서 이렇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즐거운 일인데 요즘 출산율이 이렇게 낮을까 하면서 옛날 분들 가치관의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나 혼자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옆에서 듣던 둘째가 너무 재미없다고 식당 의자에 누워버린다. 그때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거둔다. 같은 사회 현상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도 세대차이일 텐데 쓸데없이 내가 말이 많았다 싶다.
처음으로 내가 따로 시간 내서 부모님과의 시간을 만든 날이다. 부모님께서도 그것이 새로웠는지 여러 번 이렇게 시간 낸 자식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계셔주시고 이렇게 산책도 하고 말씀도 나눌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인데 자꾸 자식에게 고맙다고 하시니 오히려 죄송하였다. 부모님과의 세대차이와 둘째와의 세대차이를 모두 느낀 날이지만 그 보다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훨씬 좋았다. 올 한 해도 건강하게 보낼시길 바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