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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Oct 15. 2019

요즘 나는 안녕한가요?

190821 설레고 불안했던 날들 중 하루


    안녕이 편안함, 무사함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요즘 안녕하진 않다. 샌디에고라는 타지에서 외국인 교환학생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막 갖춰 나가고 있는 요즘, 내 일상을 채우고 있는 건 서류에 내 신원을 밝히는 것, 내가 이곳에 있어도 너희 나라에게 안전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시키는 작업이다. 해외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인종 차별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잦은 서류 작업이라던데.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큰 일이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자기 증명에 대한 요구... 분명 내가 하는 건 사소한 문서 작업인데 왜 이렇게까지 나 소모되는지. 쏟아지는 안내 사항을 간신히 귀담아 듣고, 영어 실력이 천차만별인 여기 외국인들 중에서도 나는 영어를 못하는 편이라는 걸 상대가 눈치 채 주기를 바라고... 미국에 온 뒤로 나는 항상 나를 설명하는 딱지 몇개에 대해서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는 상태다. 나는 여기 한 학기 와 있는 교환학생이야, 한국에서 왔어, 이름은 소피야, 아 한국 이름이 따로 있는데 그건 모두 발음하기 힘들어 해서 발음하기 쉬운 걸로 하나 만들었어... 자기소개의 기본값이 아무래도 한국에서보다 너무 긴 거다. 딱 그만큼 자의식이 무거워 진다.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변화. 여기 와서 나는 뭔가를 모른다는 게 더 무서워졌다. 사사건건 이런 간단한 거를 몰라도 되는 건가? 하는 자책이 들다 보니 다른 사람 역시 나를 그렇게 평가할까봐 두렵다. 외국인들에게 어눌하게 들리는 발음으로, 뭔가를 몰라서 당황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상대가 조금이라도 냉정한 표정을 보인다면 난 아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고개를 드는 거다. 빨래를 처음 한 날의 일이다. 분명 세탁 가격이 1.75 달러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계좌 기록을 조회해보니 12600원이 빠져나갔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이해시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1층 데스크에 말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될 구실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직원의 도움을 받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는 거다. 카드가 읽히지 않아 여러번을 꽂았다 뺐다 반복했던 일로 중복 결제가 된 거라면 환불을 받기 위해 또 그 직원에게 가타부타 설명을 해야할테고... 아니 근데 그러기엔 결제가 한 번 밖에 안 됐는데? 그럼 설명을 듣기 위해서 또 직원에게 가봐야 할 거고... 온갖 생각으로 속을 끓이다가 나는 눈을 딱 감고 에라이, 터덜터덜 1층 직원에게 가서 물었다. 직원은 차분하게 내 말을 듣더니 아! 하며 환한 웃음으로 세탁비 결제는 10달러 단위로 되고 앞으로 세탁비를 결제할 때는 거기서 금액이 차감될 거라고 설명했고... 그게 전부였다. 나는 다시 평정을 찾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돌아왔다. 

    모르고, 걱정하다가 질문하고, 심심한 답변 받기. 내 요즘을 요약하는 건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간단한 일련의 사건들 안에서 나는 나 혼자만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다시 내가 이렇게까지 나약한 인간이었는지를 실감한다.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에 찌질하게 나풀대는 마음을 보다 보면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191015

    그런데 사실 이런 마음 속 소요는 내가 약하기만 한 사람이라는 것만을 말해주진 않는다. 작은 일에 두려워하는 나 옆자리에는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숨 한번 들이마시고, 무수한 두려움을 이기고 상황에서 가장 마땅한 일을 해내는 나도 항상 있는 거다. 나 내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싶지 않다. 서류에 규격화된 내 개인 정보를 기입해야 된다는 규칙처럼 나를 시종일관 시험하고 증명하고 제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이런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무탈함, 안녕하지 못함 속 일상을 지속해 나가는 용기를 긍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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