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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Sep 08. 2021

맛집을 좋아하는 사람

  윤영이 내 인터뷰 요청에 응했을 때 나는 기뻤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윤영과 나는 ‘친하다’라는 말로 묶이기는 힘든 사이였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를 본 것은 그가 새내기이고 내가 대학교 2학년생이던 전생 같던 시절이었고 그 마저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단체 행사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윤영을 흠모하는 나의 마음에 취해서인지 나와 윤영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나는 윤영이 좋았고 그에게 내 호감을 숨긴 적이 없었다. 그 들이댐은 주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댓글을 다는 소심한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윤영에게 ‘난 네가 궁금하다’는 메시지가 전해지기에는 충분히 적극적이었다(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안에서는). 착하고 기민한 윤영은 나의 메시지그 때마다 성의 있게 받아주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던 나의 인터뷰에 윤영이 기꺼이 응한 것은 아마 그의 다정과 아마 그렇게 얼기설기 쌓아온 우리 사이 상호적인 호감 덕일 것이다.


  윤영을 좋아하며 나는 내 스스로가 꽤 피상적이고 이미지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윤영이 스스로를 연출하는 방식이 좋다. 저화질의 사진 속 구석에서 활짝 웃고 있는 윤영, 청바지와 긴 머리와 ‘숙녀’라는 세련된 단어가 잘 어울리는 윤영. 느리고 흐린 화면과 만화적인 이미지와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윤영은 매력적이다.


  윤영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학교 퀸카 앞에서 삐걱대는 너드처럼 나는 윤영을 만나기도 전부터 긴장한 상태였다. 최대한 재치 있고 얘깃거리가 될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해내고 싶었는데 능력 부족에 부담이 더해지니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들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윤영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할까, 내 질문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 데 제한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하며 첫 인터뷰 날이 밝아왔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식당이 하필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가지 못하게 되었다. 만날 장소를 정한 윤영은 거듭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만날 장소를 정하는 부담을 그에게 온전히 넘긴 것이 켕겨서 거듭 그럴 필요 없다고 전했다. 결국 급하게 들어가게 된 곳은 연남동에 있는 한 전집이었다. 전을 파는 식당이라 인터뷰를 하기 시끄러울까봐 걱정했는데, 우리에겐 다행이지만 사장님께는 유감스럽게도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아주 한산했다. 우리는 육전을 주문하고 막걸리 대신 소주와 맥주를 굳이 찾아 마셨다. 그리고는 각자 노트북을 꺼내 조금은 어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영과 함께 자라온 맛

  윤영과 음식의 연은 윤영 스스로가 기억할 수 있었던 가장 아이였을 적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윤영의 집에는 언제나 메인이 되는 생선과 고기 반찬을 포함해 갖은 진수성찬이 올려 있는 것이 당연했다고 한다. 많이 먹고, 잘 먹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그것이 새삼스러워진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 다른 아이들과 급식을 함께 먹게 되면서였다.


윤영  내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중학교를 올라가고 나서였다. 급식에 생선이 나오면 남기고 먹는 친구들이 과반수였다. 뼈를 발라내는 것이 ‘귀찮아서’ 안 먹는다는데, 아니 먹는 게 귀찮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 때 알았다. 모두가 먹는 걸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는구나.

  조부모님이랑 함께 사는 집에서는 흔한 풍경일 수도 있겠지만, 특히 우리 집은 먹는 데 진심이었다. 지금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란 것도 어렸을 때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외려 항상 음식이 푸짐하게 준비되고, 그것을 잘 먹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그것이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면서 먹지도 않았다. 물론 오빠랑 비교해도 내가 유독 어렸을 때부터 못 먹는 것이 없기도 했다. 나중에는 오빠가 내 먹성을 따라오기 시작해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렸을 때 먹은 것들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식사 메뉴가 있나?

윤영  어리기도 했고, 집에서 먹었던 식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막상 꼽기는 어렵다. 그런 와중에도 인상 깊었던 음식이 있긴 있다. 바로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인데, 그 메뉴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히지만 하여튼 단적으로 말하자면, 간장 소스를 끼얹은 우럭 튀김이었다. 어린애가 보기에 검은 소스를 뒤집어쓴 커다란 생선 덩어리는 비주얼적으로 충격이기도 했다. 그런데 먹어보니까 너무 맛있는 거다. 그래서 그 음식만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맛도 모양도.

  집에서 당연하게 먹었던 그 메뉴를 지금은 어디 가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힌다. 그땐 어렸기 때문에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클 줄도 몰랐고, 어느날 그냥 저녁 식사로 먹었던 우럭튀김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될 줄도 몰랐다. 그래서 만약에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다면 꼭 그 요리를 다시 먹어보고 싶다. 그땐 당연하게 지나쳤지만 지나고 보니 나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 그 식사를 어릴 때로부터 자라나온 이 시점에서 다시 먹어보면 어떨지 궁금하다.


  윤영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젊은 우리가 앞으로도 돌아보게 될 지점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는 지나치고 통과하는 데 열심이라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차곡차곡 나를 구성하고 있었던 하루들을 어느날에는 문득 돌아보게 되리라. 바삐 걷고 있다가 모퉁이에 있던 돌부리에 걸려 엉거주춤하듯 말이다. 내 어설픈 인터뷰 요청에 별안간 어린 시절 집에서 먹던 식사와 거대하고 까만 우럭튀김을 떠올리게 된 윤영이 그래도 많이 씁쓸해 보이진 않아서, 오히려 조금 즐겁게 그 날을 지금의 자신과 꿰어가는 것 같아서 속으로 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소주와 맥주를 조금 빨리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윤영의 마음을 엉성하게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맛을 좋아하는 사람의 하루

  윤영의 공간이 되기로 공약한 이 글에 내 입장이 끼어들게 되어 민망하지만, 개인적으로 난 음식의 맛을 감별하는 데도 느리고 맛에 대한 기준이 없다시피 해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면 공간과 메뉴를 찾는 일이 귀찮고 부담스럽다. 혼자 식사를 할 때는 냉동 도시락이나 편의점 삼각 김밥을 자주 먹고, 배달음식을 시킬 때도 치우기가 쉬운 음식을 찾곤 한다. 맛집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즐기는 윤영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속속들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맛’을 좋아한다고 선뜻 이야기 한 사람은 나랑 대체 얼마나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나? 그런데 윤영은 ‘맛잘알’이라는 호칭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해명하고 싶은 눈치였다. 실제로 윤영의 대답을 들어보면 윤영과 음식이 맺고 있는 관계는 ‘잘알’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퉁치기엔 조금 부족하다. 둘의 관계를 논하기 위해서는 ‘맛’이 빠지지 않는 윤영의 미시적 일상에 대해 소개해야만 한다.


윤영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맛잘알이 아니다. 비싸거나 화려한 음식만 먹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내가 먹는 음식이 뭔지, 맛있다면 대체 왜 맛있는지, 뭐가 들어간 건지, 어떻게 만드는지, 어디서 파는지 같은 걸 일일이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곳에 어떤 음식을 파는 집이 있다’ 같은 데이터가 많이 쌓이게 되었다. 직접 음식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붙이게 되기도 했고.


  그래도 나 같은 경우는 아예 ‘맛있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윤영이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이 궁금하다.

윤영  물론, 맛집이 맛집이기 위해서는 음식이 제일 중요하다. 분위기나 인테리어는 다 그 공간 나름의 개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깔끔하지 않은 노포도, 어떤 사람은 되려 기피하기도 하는 인스타 맛집도 오케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맛’의 기준을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맛’이라고 보면, 이런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기본기에 충실하다. 재료가 신선하고, 서로 조화가 잘 되어있고,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깔끔하고 삼삼한 맛이라고 해야할까? 사람들이 흔히 눈이 확 뜨이는 화려한 맛이나 자극적인 맛을 더 좋아하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작 여러 곳을 여러 사람과 함께 다녀보니 입을 모아 ‘거기 진짜 맛있다’고 말하게 되는 곳은 기본에 충실한 곳들이었다.

  그런데 맛만큼, 어쩌면 맛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다. 세트 메뉴의 조합, 음식이 나오는 온도나 밑반찬 구성 같은 것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요리를 하고 대접할 때 어느 만큼 고민을 했는지, 어느 만큼 성의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예전에 공덕에 있는 오래된 설렁탕집을 간 적이 있는데, 노포인데도 내부가 깔끔하게 리모델링 되어 있었고 각종 식기와 김치통 같은 것이 위생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제일 감동적이었던 것은 추가 주문을 했던 소면이 토렴되어서 따뜻하고 맛있게 나왔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 집이 음식을 대하는 성의가 물씬 느껴졌다. 그런 공간이 유독 기억에 남고 ‘맛있는’ 집이라는 인상이 남는 것 같다. 흔히들 맛만 있으면 좀 더러워도 괜찮다고들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땐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집은 음식 맛이 없을 수도, 더럽거나 불친절할 수도 없다.


  역시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구나.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맛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엿보인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렇게나 이곳 저곳 맛있는 집을 찾아서 갈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비결을 좀 공유해달라.

윤영  좀 과장이지만… 하루종일 그것만 보고 있으면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교과서를 외우면 된다’고 대답하는 전교 1등들을 떠올렸다. 그들과 윤영의 학구열은 다르지 않아보인다. 나는 전교 1등도 해본 적 없고, 무언가를 그렇게까지 열렬히 좋아해본 적도 없어서 그게 좀 신기하고 부러웠다. 내게도 ‘하루종일 보고 싶은 것’이 있었던가? 사실 내겐 그런 게 없어와서, 그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것이 뭔지 알고 싶어서 인터뷰집을 기획한 것이기도 하다.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아볼 순 없어도 훔쳐볼 수는 있을테니까.)


윤영  정작 사람을 많이 안 만나서 모두 가보진 않아도 지도 앱에 지역별로 가보고 싶은 맛집이 리스트업 되어있다. 잘 가지 않는 지역까지도 빠삭하게! 누군가와 함께 식당을 갈 일이 생기면 대략적인 위치와 음식 장르를 정한 뒤에 블로그나 검색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선별해놓은 그 지역 식당 리스트를 쭉 보낸다. 이렇게 해도 거의 실패가 없는 편이지만, 정말 실패하기 싫은 날에는 한번 가보고 괜찮았던 곳이나 후기를 보고 진짜 괜찮을 것 같은 곳을 간다.

  물론 갈 곳과 메뉴를 정하는 일이 부담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동행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음식을 넘어서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교통, 동선, 이후 일정, 가게 분위기, 시스템… 따져봐야 할 게 너무 많다. 어른들과 밥을 먹을 땐 색다른 곳을 데려가 드리고 싶어도 결국 안전한 선택을 좇아 한식집이나 노포로 우회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게 아쉽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맛집 데이터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자주 가게 되거나, 식당을 소개하기 자신이 있는 ‘나와바리’가 있나?

윤영  지역을 꼽자면 그래도 연남동과 이문동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마포구가 익숙했다. 부모님이 걷는 걸 좋아하셔서 주말이면 늘 엄마 아빠를 따라서 하는 것도 없이 홍대 근처를 하루종일 걸어다녔다. 그 익숙함을 좇아서 스무살이 넘어서도 계속 마포구를 뱅뱅 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연남동이고.

그리고… 이문동에는 당연히 추억이 많다. (나와 윤영이 다닌 대학교가 위치한 곳이 때문이다.) 어떤 추억이냐 하면 주로는 취한 추억이다. 동기들끼리 사이가 유독 좋아서 새내기 시절 이런저런 추억이 많은 동네다. 나는 이문동을 사랑한다, 고도 말할 수 있다. 변두리, 올드 타운의 감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무언가 변하기 직전의 감성이 내게는 훨씬 더 인상 깊게 다가온다.”


  아까는 함께 다니기 힘든 유형, 예를 들어 어른들과 식사할 때의 고충에 대해 얘기했는데, 반대로 함께 맛집을 다녀서 좋았던, 다니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윤영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과 갈 때가 많다. 그 친구가 바로 임혜진이다. 맛집에 관련해서라면 내가 송은이고 혜진이 김숙이다. 내가 찾아오면 그냥 그 친구가 따라오는 식이다. 혜진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하자면… 걔는 일단 무던하다. 분위기에 휩쓸린다거나 나쁜 영향을 잘 받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잘 잃지 않는 단단함이 있으면서도,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런 단단함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는 편이다. 적정한 온도로. 그래서 혜진과 맛집을 가면 ‘실패’할 수가 없다.

  또 다른 친구는, 나만큼 맛집에 미친 사람 김송현. 나는 방에 누워서 정보 수집을 주로 하지만, 송현 언니는 그만큼 바쁘게 다녀보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둘다 맛집에 미쳐 있으니까 번갈아 가면서 총대를 멘다. 송현 언니도 맛집에 대한 기준이 뚜렷한 편인데, 그러면서도 음식에 관대해서 둘이 함께 다니면 충돌할 일이 없다. 우리 둘의 조합은… 닭갈비를 먹을 때 사리를 넣을지 밥을 볶을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조합이다. 왜냐면 당연히 둘 다 할 거니까.


  이렇게 맛집, 음식에 대해 한 시간을 넘게 떠들어본 게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대상이지만 혹시 권태기가 온 적은 없었나. 그냥 대충 먹고 싶다라든지.

윤영  솔직히… 없는 것 같다. 나는 딱 '맛집'보다는, '맛'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같다. 후라이를 하나 해도 완벽하게 해야 하고, 요거트로 끼니를 때워도 주변에서 제일 맛있는 요거트집 찾아가야 하는 스타일이다.


  권태’기’라는 것이 따로 없을 정도로 권태를 디폴트로 놓고 살아가는 나는 무언가를 한 순간도 빠짐없이 좋아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윤영이 조금, 많이 부러웠다. 먹는 것만큼 우리 삶에 밀접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윤영이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에, 삶에 열심인 것이라고도 해석이 되었다. 나는 음식을 좋아하면서 하루 매 초를 세워나가는 윤영의 모습이 조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 매 초 매순간 좋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란 게 나에게 있(었)나?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나지도, 열심히 훈련해보지도 않은 내가 윤영의 ‘좋아함’을 얼만큼이나 담아낼 수 있을까? 첫 인터뷰는 그렇게 나를 경탄하게 하며, 동시에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기죽게 하면서 끝이 났다.


에필로그: 윤영이 ‘좋아한다’는 것

  윤영이 맛있게 타준 소맥을 마시고 빠르게 취해가던 차 나는 대질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윽하게) 윤영아, 너에게 ‘좋아한다’는 건 어떤거니?”

  그건 사실 음식에 대해 나는 한 차원도 생각해본 적 없던 것들을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말해준 윤영의 표정만으로도 대답이 되는 질문이었다. 솔직하고 당당하다는 프레이즈를 (무언가를 납작하게 타자화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진 않지만, 음식과 자신에 관해 얘기하는 한 윤영의 모습은 정말 그래보였다. 청바지와 긴 생머리의 윤영(혹은 단지 윤영이라는 내 관념)만큼이나 시원시원해보였다.

  그런데 윤영은 약간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오히려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나는 (어디에서나 좋아한다고 말하기 편한) 피상적인 것만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라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것들을 단적으로 꼽자면 아이돌이랑 맛집, 이런 건데. 이런 건 어딜 가서든 가볍게 대화 주제로 하기 좋은 것들이잖아요. 내가 좋아한다고 선언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 것들. 그치만 예를 들어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했는데 그런 일을 입밖에 내면 큰일이 되잖아요. 전 그런 좋아함 앞에서는 좀 방어적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오히려 더 가볍게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느낌?”


  공감이 가는 고민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1n년 동안 사람 중에서 아이돌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해보기도 했다. 나의 좋아함은 어째서 얕은 것으로만 향할까?

  맛집, 아이돌, 패션, 콘텐츠.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나는 다가오는 모든 좋아함을 얕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좋아함이 동반하는 부담과 멋쩍음, 어쩌면 두려움을 무마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 좋아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그걸 섣부른 방식으로 선언하고 표현해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유행이 된 아이돌에 대한 주접 댓글처럼 마음을 발산해버리고 나면 때로 그 ‘좋아함’은 적어도 내가 씹어먹기 편안할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온전히 ‘좋아함’을 감당한다는 건 그것이 동반하는 ‘약해지는 마음’까지를 견디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나는 ‘수줍음’을 촌스럽고 역겹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알러지 반응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좋아함 앞에서도 강해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덜컥 좋아해버리는 일이 무섭지 않을 수 없고, 상대방도 나를 그만큼 좋아할지, 내가 이렇게나 무언가를 좋아해도 될지 고민하는 일이 쪼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맥락을 모조리 탈각하고 나서 무언가를 좋아해버리는 방식은 대체 얼만큼 진심일까?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떠안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 그리고 어쩌면 윤영의 연약함. 이 모든 게 우리가 아직 스물 다섯이고 스물 셋이어서 그런 것이라면 참 좋지 않을까. 우린 아직 어리니까. 아무도 우리에게 온전히 좋아한다는 게 뭔지 알려주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글을 맺으면서 생각한다. 어딘가 조각나고 깨진 좋아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우리의 대화가 그래도 무의미하진 않다고. 어쩌면 연약함을 연약함이라고 기록하는 최초의 시도가 될 수도 있다고.


추신: 나는 얼마 전에 친구를 졸라 윤영이 나를 데리고 갔던 전집에 그 친구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육전에 얹어먹은 고수 무침이 잊히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고수를 싫어하는 친구에게는 그 맛을 소개할 수 없었다.) ‘맛집’ 전문가 윤영의 추천 답게 거긴 참, 다시 찾아도 좋은 맛집이었다.


추신2: 아래는 윤영이 관대하게도 공유한 맛집 리스트다. 글에 실을까 나만 알고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이런 정보는 널리 알려서 이롭게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     종로3가 부산횟집 – 해장으로도 식사로도 완벽한 미역지리

2.     회기 스시선생 – 학교 근처에서 제일 신선한 연어를 먹을 수 있당

3.     연희동 로얄싸롱 – 컨셉에만 충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음식에 진심인 귀여운 경양식집

4.     이문동 배드해빗클럽 – 여기도 컨셉과 음식에 둘다 진심인 곳. 계속해서 리뉴얼이 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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