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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Sep 12. 2021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


  뽀또(가명)는 나이가 들수록 화사해진다. 시원한 입매로 웃어주고, 뒤로 넘어가고, 눈을 마주치며 말을 받아주는 그를 보며 기분이 좋아지다가도 때로 신기할 때가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걔는 좀 새침했었다. 처음부터 걔가 맘에 들어서 왈가닥대던 내게 어린 뽀또는 약간은 냉담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지금도 그에게 때로 그때 얘기를 하며 투덜거린다. 


  그때는 좀 더 방어적이었고 지금은 좀 더 여유로워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뽀또는 자신의 영역을 꼼꼼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겁내지 않는 꼿꼿한 태도로 뽀또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꾸려나간다. 늘 떠벌거리며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나와는 달리, 그에게는 어떤 마음과 생각은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해내는 하는 담담함이 있다. 나는 뽀또의 그런 면을 언제나 동경했고 그래서 걔가 지켜나가는 세계를 힐끔힐끔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너는 어떤 음악을 듣니,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니. 소셜미디어의 얄팍함에 개탄하는 꼰대 z세대인 나지만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로 뽀또의 취향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만큼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동안 뽀또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 만큼 내가 이모저모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내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사랑’에 관해 얘기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의외라서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가 최근 끝낸 연애의 여파가 크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그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엿보지 못한 공간에서 새로운 자신을 또 발견해 나간 것 같았다.


  인터뷰 덕에 오랜만에 뽀또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몇 가지 정리해놓은 인터뷰 질문 외에도 그에게 물어볼 것이 참 많았다. 정확히는 그가 ‘사랑’에 관해 얘기를 하고 싶어진 경위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왈가닥 연애(그것도 최근에 끝난 연애) 얘기를 하라고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가 요즘 신경 쓰는 것은 ‘루틴’이라고.


“요즘 일상의 키워드는 ‘루틴’이야. 연애를 할 때는 몰랐는데, 끝내고 보니 그 사람에게 맞추느라 내 일상이 정리가 안 돼 있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맞춰있던 내 일상을 수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했어. 잘 자고, 꾸준히 운동하고… 요가를 시작했어. 그러다 보니 헤어지고 힘든 것도 차차 극복이 돼 가고 있네. 이렇게 삼삼하게 살아보니까 오히려 이런 작은 성취들이 더 ‘자극적’인 것 같아.”


오래 사랑해왔던 것들

  본격적인 ‘사랑’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사랑해온 것들에 대한 내력을 말로 글로 전해들어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멍석을 깔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뽀또는 답변을 준비한 메모지를 바스락 바스락 만지며 담담하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사랑해왔던 것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뽀또  10대에는 음악, 드라마, 책 같은 콘텐츠를 깊이 사랑했던 것 같다. 드라마는 주로 미국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나 <Friends> 같은 것들을 많이 봤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과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겠지만, 10대 때는 영국 락밴드나 여러 인디밴드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컴퓨터가 생기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들이 올리는 추천 음악을 들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내공이랄 게 좀 쌓여서 음악을 트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 1세대네? BJ 뽀또였네? (깐족깐족)

뽀또  그렇다. 다들 알려나, 그 땐 시아라이브라는 게 있었다. 당시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터넷에서 ‘인디음악 갤러리’를 눈팅하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그런 음악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내가 말하고 진행하고 그런 건 하기 싫어서 내내 음악만 트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음방 컨셉은… 듣다 보면 자살할 것 같은 음악. 그 정도로 조용하고 잔잔하고 좀, 안으로 침잠하는 음악을 당시에 많이 들었다.

  ‘뼈 INFP였군.’

뽀또  또 10대 때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특히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때 읽었던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걸 꼽자면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과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 둘 다 조숙한 청소년의 내면을 묘사한 글이었고, 당시 공감과 동일시를 많이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책 읽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그런지 글을 쓰면 학교에서 잘 쓴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더 좋아하게 됐고… 창작에 대한 욕구가 그때 왕성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에이포 용지로 소책자를 접어서 거기에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써서 친구들이랑 같이 보기도 했다.


  책이랑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랑 만나기 전 뽀또의 어릴 적 얘기를 이렇게 자세히 들어보니까 재밌다. 나도 A4로 소책자 접어서 이런 저런 얘기 쓰는 걸 좋아했는데 공감도 많이 된다. (역시 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이 좋은 것 같아.) 그럼 이십대의 사랑 얘기로 넘어가자. 그 때, 혹은 지금은 어떤 것들을 사랑하고 있나? 

뽀또  이십대 초반에는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연애’가 화두였다. 모두가 연애할 상대를 찾아 헤매던 시기였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영향을 받아 사랑을 쏟을 사람을 찾느라 바빴다. 소개팅도 했고, 나 좋다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보기도 했다. 이십대 초반은 내게 사랑에 있어 과도기 같은 시기였다. 사랑을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딱 꽂히는 상대를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사랑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놓겠다고 다짐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이십대 중반에, 신기하게 처음으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연애를 했다. 그렇게 연애라는 키워드가 내 것이 된 거는 이십대 중반 때였다.


연애라는 사랑

  그렇지, 이십대 초반은 아마 누구에게나 연애와 사랑이라는 주제에 있어 헤매는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과도기 안에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어쨌거나 연애란 조바심을 가지지 않기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뽀또  ‘연애’로 묶이는 안정적인 일대일 관계에 대한 이상과 그로부터 느끼는 위기감은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도 더 강렬한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는 주변 커플을 보고 미디어를 보며 이상적인 연애 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보고 들으니까.

  맞다. 특히, 나는 친구들한테 애착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의 후순위로 내가 밀려나는 느낌이 견디기 힘들었다. 원래 늘 붙어 있으면서 세계가 겹쳐져 있던 친구들이 내가 영영 다 알 수 없을 자신만의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도 왠지 좀 쓸쓸했다. 어떤 연애는 내 친구들을 영영 바꿔놓기도 하는 크나큰 관계니까 더더욱 그랬다.

뽀또  아무래도 연애 관계는 당사자 둘의 관계고 그걸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다 알 수 없으니까. 일대일 관계의 특성 상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너무 많은 맥락이 제거되니까 절대로 완전히 공유하는 것도 이해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다. 나도 성아가 느낀 쓸쓸함이 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궁금하다,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뽀또는 사랑을 할 때 어떻게 변하는 것 같나. 

뽀또 연애는 약속의 관계이지 않나, 너와 나 둘의 관계를 선순위에 두고 노력하겠다는 그런… 그러다 보니 기대가 많아진다. 전에는 몰랐는데 나는 의무와 약속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이 정도 해주고 상대도 이만큼은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나 같은 경우는 연애를 할 때 의무감이 많아졌으니까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애인을 만나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두게 된다. 또 직장인이라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주말은 우리의 시간이라고 정해놓기도 하고. 

  불안하기 싫다. 이런 내 심보가 너무 가성비를 챙기려는 마음 같기는 하지만 이게 솔직한 마음이다. 감정 소모 없이 안정적으로, 우리는 서로 밖에 없기로 하는 약속을 하는 편이 좋다. 물론 연애를 하는 중에도 그런 약속과 의무를 다 하고 상대도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는 게 항상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막상 연애를 해보니까 그 전에는 몰랐는데, ‘연애’라는 관계가 내 성향과 잘 맞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어릴 때도 친구들 여럿이랑 우르르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항상 ‘단짝 친구’ 하나가 있는 애들도 있지 않나. 나는 후자인 편이고 일대일 관계를 항상 편하게 느꼈다. 우리는 가장 친한 관계, 라는 무언의 약속으로 묶이는 것이 나를 안정적이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다.

뽀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랑을 많이 느끼고,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관심이 없는 대상에는 에너지 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편이라 남들이 보기에는 드라이해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사랑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하고, 더 잘 하려고 생각하고.


  사랑과 ‘약속’이나 ‘책임’ 같은 단어를 결부시키는 그를 보며 나는 나와는 사뭇 다른 내 친구의 모습을 다시 발견했다. 예컨대, 나는 가족으로든 연인이로든 사회적으로 ‘약속’이 된 관계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많은 편이다. 의무감이 선행되는 관계가 얼만큼 진실할 수 있는가, 선택과 자유를 도려내고 그 자리를 너만을 위하겠다는 약속과 책임으로 채워넣는 게, 그게 사랑일까. 나는 같은 로직으로 엄마의 사랑한다는 말을 반만 받아들이며 엄마의 의무감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사랑한다는 말을 꾹꾹 눌러쓰며 미래를 약속하는 인스타그램 속 연인들을 보며 피식댔다. 그들은 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그런데 여기 뽀또는 그런 의무감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위하겠다는 끊임없고 의식적인 다짐이 관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인터뷰를 한 그때도 그걸 받아적고 있는 지금도 곰곰하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어쩌면 나는 싫은 마음, 내키지 않는 마음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상을 사랑에 부과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관계라도 사람 둘이 만나서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그런 마음이 안 들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돌아오기로 하는 약속은 내가 재단한 것보다 훨씬 더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말하기

  사랑이 항상 좋을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랑은 여러모로 파괴적인 감정을 동반하기도 하지 않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랑의 가장 힘든 점은 뭔가. 

뽀또  글쎄… 사랑을 할 땐 난 너무 좋다. 물론 좋을 땐 좋고 힘들 땐 힘들지만. 제일 힘든 부분을 꼽자면 아무래도 사랑이 끝날 때인 것 같다. 연애를 놓고 생각해도,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에 남이 되고 만다. 내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 같은 울타리였던 사람이 한 순간에 저 멀리 우주를 건너 남이 되어버린다. 가장 힘든 건 이게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헤어진 사람과는 당연히 전과 같을 수 없다.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한들, 다시 안 볼 사이가 된다고 한들 어떤 측면에서는 다 똑같다. 과거를 다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았던 순간들은 기억이 되어버리고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별이라는 게 너무 슬프고 힘든 것 같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다음에 만날 사람과는 이별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

  과거를 다시 살 수는 없다는 말이 인상 깊다. 이별이 힘든 만큼 혹시 사랑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들 때 다가오는 사랑을 피한 적은 없나?

뽀또  그래도 다가오는 사랑을 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 완전히 열려 있다, 지금도.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치만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이번에 사랑을 할 때는 현실적인 걸 더 많이 생각해볼 것 같다. 설렘이나 느낌에 모든 걸 걸어보려고 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나와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성격인지 따져보고 최대한 이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굉장히 용감하다. 방금 ‘다가오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랑이 온다는 것을 예감했던 적이 있나? 

뽀또  난 그런 감이 조금 빠른 것 같다. 왜냐면 난 웬만해서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참 궁금해지고 그걸 매일 생각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증상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별 게 다 궁금해진다. 일상적인 부분부터 남에게 좀처럼 오픈하지 않는 추악한(!) 부분까지.


  술술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나였으면 주저하고 망설이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내게는 아직 사랑이 너무 어렵기만 하기 때문이다. 뽀또가 생각하기엔 사랑은 어려운 것인가, 쉬운 것인가? 

뽀또  난 마음만 먹으면 사랑을 주고받는 것 자체는 쉬운 것 같다. 

  '대체 사랑을 주고받는 게 어떤 면에서 쉽다고 할 수 있지?'

뽀또  그냥 어쩌다보면 휘리릭 이뤄지는 것들이다, 그런 건. 하지만 정말 어려운 부분은 그 사랑이 나와 그 상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는 문제다. 다른 말로, 사랑은 쉽지만 그 사랑이 행복하려면 그건 어렵다. 사랑을 이루는 두 사람이 모두 성숙한 인간이여야지만 가능하다. 

  예전에는 사랑이 행복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포기란… ‘기대를 말아야지’를 되뇌며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성숙이 아니라 냉소일 뿐이다. 그 사람을 진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 때 포기라는 전략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사랑계의 오은영 박사님과 함께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사랑 도사, 사랑 예찬론자가 된 뽀또가 “사랑 없이 살고 싶다”고 결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뽀또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애가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인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친구를 만나고, 모임에 나가고, 회사 사람들과 점심 시간에 맛있는 걸 먹고 산책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런 소소한 인간적 연결이 결국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느라 우두커니 멈춰 있는 대신, 내게 이미 주어진 사랑들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건 공통 질문인데, 뽀또에게 특히 더 물어보고 싶다. 뽀또가 생각하는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뽀또  얼마 전 친구와 글쓰기 모임을 했는데, 거기서 친구가 한 말을 빌리겠다. 꽃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똑같을 수 없다. 사람을 보고 사랑할 때만 우리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 사람도 나를 다시 좋아해주지 않을까, 라는. 그러니까 ‘좋아한다’는 건 그 상대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 때 알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확히는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 최근에 많이 듣고 있는 노랜데, 아리아나 그란데의 ‘POV’라는 노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바로 그 사람의 관점(POV)에서 나 자신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노래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은 나부터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항상 위축되어 있는 나지만 사랑 예찬론자 뽀또와 대화를 하면서 그 마음이 전염되고 말았다.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사랑도 좋지만, 내게 이미 주어진 사랑을 새삼 재발견하며 행복하고 싶다,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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