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을 방문한 것은 열 한 살 때였다. 고모네 가족이 1년 간 미국에서 살게 된 김에, 나도 영어를 익힐 겸 여름방학 때 두어 달 간 그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의 나이로 딱 영어 유치원 수준의 데이케어 센터를 다니다 보니 변변한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딱히 영어로 말할 기회가 많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의도했을 '미국 경험'은 거의 해보지 못한 셈이다.
나는 그래도 미국이 좋았다. 집에 가는 길, 항상 텅 비어있는 널찍한 거리가 좋았다. 어딜 가도 춥다 싶을 정도로 틀어져 있는 에어컨도 좋았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단 음식들도 그때는 좋았다. 그 중 어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미국 마트의 풍경이었다. 아주 커다랗고 아주 짠 냉동피자, 한국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크기의 우유통, 끝없이 쌓여 있는 물건들... 미국에 관해 내가 좋아했던 건 그런 투박한 넉넉함이었다. 많고 커다랗고 넓은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했다. 무언가를 아끼지 않아도 되고, 조금은 생각없이 방만해져도 된다는 데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유일한 것으로서 소중히 대하는 게 어려웠다. 물건을 함부로 쓰고 고장나면 버리고 다시 사고. 사람을 사귀고 놀다가 맘 같지 않아 불안해지면 새로운 곳을 기웃거리고.
스물 두살이 되어 뉴욕을 방문했을 때는 내가 기대하던 널찍하고 시원한 미국이 아니라 실망했다. 지하철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많았고 어딘가엘 들어가도 생각보다 후텁지근했다. 널찍하고 넉넉해서 자유로운 (자유롭게 뭐든 소모할 수 있는) 미국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에 있어서 내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어른들 손에 맡겨져 무언갈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흐렸던 열 한 살 때와는 달리, 스물 두 살의 여행에서는 알바를 해서 모았던 금액만큼만 돈을 쓸 수 있었고, 모든 결정의 순간에 어느 만큼의 돈이 드는지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저예산 여행을 해서 초조했던 것이냐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3주간의 미국 여행 예산으로 550만원을 책정했을 때는, 아 이 정도라면 웬만한 걸 할 때 조금도 망설이거나 고민할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뉴욕에 와서는 이 돈을 쓸까말까 고민하는 데 반, 막상 써놓고 나서 아까워하는 데 나머지 반절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십만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 이렇게 감흥이 없어도 되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건 돈이 충분히 없어서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을 하던 때였다. 그렇다면 하루에 백만원씩 썼더라면 내가 느끼는 초조함이 가실 수 있었을까?
직감적으로 그 물음에 아니다, 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뉴욕 여행 이후, 나는 유행어처럼 내 고민의 유일한 기원은 '돈'일 것이라고, 게으르게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넉넉한' 것, 에 막연하게 집착하는 건, 내가 무언가를 유일한 것으로서 소중히 대하는 데 무능해서라는 사실도 직시하기로 했다. 스물 세살, 샌디에고에 도착해 번쩍번쩍한 미국 마트의 풍경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을 때. 지겹고 괴로운 일을 하는 데 하루의 반절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돈을 넉넉하게 벌어야겠다고 다짐할 때. 그런 순간에 나는 사실 하염없이 게으르고 싶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래. 세상 모든 걸 조금 덜 소중하게 대하고... 투박하고 무심하게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