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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Sep 16. 2019

반복되는 문제는 없다

조금 성급하게 마음이 뿌듯해진 2019년 9월 6일

몇 주 전 새벽에 핸드폰을 하다가, 적응에 성공하는 유학생과 실패하는 유학생의 특징이 나열된 글을 우연히 읽었다. 실패하는 유학생은 자기가 뭘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함. 포기가 빠름.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모름… 글의 모든 내용이 귀신 같이 나를 지목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찝찝했던 건 기억이 분명 난다. 그런데, 그 글에 정말로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나?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 글의 진짜 내용과는 상관 없이, 나는 단지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늘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글 속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재차 건드렸을 뿐이었다. 나는 실제의 글을 읽은 게 아니라, 내 머리 속에 있던 오랜 걱정을 재발견했던 것이다.


어떤 글을 마주하고 어떤 시공간을 마주하든, 나는 자주 같은 문제 의식으로 회귀한다. 나라는 사람과 그 사람이 고정불변하게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한 문제로 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수천 수억 가지 바깥 존재와 만나면서도 동일한 문제 의식에 머무르고 좌절하기.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렇듯 모든 걸 하나의 모델로 환원시키려는 태도를 ‘사본 만들기’에 비유한다.


지도가 사본과 대립한다면, 그것은 지도가 온몸을 던져 실재에 관한 실험 활동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는 자기 폐쇄적인 무의식을 복제하지 않는다. 지도는 무의식을 구성해 낸다. 지도는 장들의 연결접속에 공헌하고, 기관 없는 몸체들의 봉쇄-해제에 공헌하며, 그것들을 고른판 위로 최대한 열어놓는 데 공헌한다. (『천개의 고원』, 들뢰즈·과타리, 새물결, 2003, 30쪽)


‘나라는 사람’이라는 자아 하나를 계속해서 복제하다 보면 그 끝에는 항상 ‘자기 폐쇄’가 기다린다. 결이 다른 수많은 문제 상황에 대고, 나는 무기력하게 단 한 가지 대답만을 내놓았다. 그건 내가 나라서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이런 문제가 또 생기는 거야! 나는 그 결론에 상처를 입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며 질투하며 괴로워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전제가 굳건할수록 상황을 돌파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원래의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억지로 노력해봤자, 번번이 난 역시 나라는 결론에 갇히게 될 뿐이다. 예컨대, 이제 사본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좌절감만 안게 된다. 난 어쩌다가 사본만 만드는 사람이 되었나, 하는 자기연민은 덤이다.


주목해야 할 건, 믿기지 않더라도, 내가 이미 지도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정말 불변하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을까? 수천 수억 가지 시공간에 놓인다 해도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는 걸까? 자아 하나가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는 내 착각과는 달리, 충무로의 나와 샌디에이고에서의 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접속한다. 충무로에서 내 입-기계는 쉴 새 없이 수다와 농담을 생산해냈다. 내게 익숙한 한국어를 쓸 때, 난 마음이 편하다 못해 스스로 어떤 말을 뱉고 있는지에도 무신경했다. 반면 샌디에이고에서 내 입-기계는 절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다. 나는 혹시라도 서툰 영어 때문에 오해를 살까봐 전에 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상대방의 눈을 열심히 마주본다. 서울에 있을 때는 가지 않은 지도의 길, 등록되지 않았던 기관 없는 몸체들이 샌디에이고에서는 봉인 해제되어 실제 세계로 떠오른다.


언제나 사본을 지도로 바꿔 놓아야 한다는 들뢰즈-과타리의 당부는 내게 이렇게 읽힌다. 한 가지 자아만을 무한 복제하며 거기에 자신을 가둬두지 말 것. 난 나라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거라는 무기력한 결론을 반복하지 말 것! 무언가의 고유성이란 특정한 배치 안에서 순간 포착되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배치에 따라 다르게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나인 한, 영원히 같은 문제만을 반복해서 겪을 거라고? 천만에, 나는 이미 좀 전의 내가 아니고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는 이전의 것과는 반드시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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