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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17. 2019

집사랑둥이 이탈리아인들은 그 집 욕조부터 달라요

목욕은 자쿠지 월풀욕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자쿠지 욕조와 함께하는 로마의 11월


새로 이사 온 아늑한 우리 집이 매우 맘에 든다. 이 집을 찾을 때까지 수많은 집들을 4개월간 열심히 돌아봤지만, 다들 똑같이 생기고, 집이 아무리 가구로 꽉 차 있어도 이상하게 영혼이 없는 느낌을 받았었다. 백 년도 더 된 집에서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묘하면서도, 깊게 생각하면 참 서운한 일이다. 별 특이한 인생이 아닌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집에서만큼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집이란 공간은 이탈리아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집은 
내 이야기만 존재하는 순간의 공간이 아니다.
 
자신들의 조상부터 그리고 이후의 자손들까지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영원이 되는 공간이다.

"이탈리아 남자들 정말 그렇게 로맨틱한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연애에서는 확답 못 드려도 확신이 드는 부분을 분명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 남자들, 자신의 집을 모실 때는 확실히! 굉장히! 로맨틱해요!


이런 이탈리아인들의 집사랑둥이 특성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이 집에 처음 이사 온 날.

목욕을 마치고 나서.


이 집을 처음으로 둘러보았을 때에는 도란도란 와인을 기울이고 대화할 수 있는 작은 바가 마련되어있고, 

특이한 창문 구조 아래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는 등의 일상의 부차적인 생활공간에 끌려서 선택을 하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당시에는 하나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욕실에서 내가 이렇게 집에 대한 감사함과 특별함을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욕조가 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뭔가 크기가 조금 크구나."라고만 생각하고 감흥이 없었다.

근데 샤워기 안에 들어가서 샤워부스 창을 닫는 순간부터 놀랬다.


처음에는 완전히 내가 들어가서 샤워 유리가 닫히는 샤워부스만 사용해봐서 완전히 유리가 닫히지 않는 것에 의아했다. 근데 약간 벌어진 틈새로는 욕조 앞에 배치된 라디에이터의 훈기가 들어와서 더욱 따뜻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또한 절묘하게 열린 틈은 어떻게 샤워기 각도를 돌려도 물이 세어 나갈 수 없도록 계산을 해서 만든 것이었다. 


미세한 틈이 바로 앞의 라디에이터 열기를 직접 쐬게 해 주고, 절묘한 각도는 물이 절대 밖에 세지 않게 한다.

특히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샤워기 바로 앞에 있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서서 샤워해서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몰랐었는데 앉아서 샤워해보니 너무너무 편했다.


또한 샤워부스로 사용하지 않는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할 때에는 

이 의자 공간에 책과 맛있는 주전부리를 식탁 삼아서 올려놓을 수도 있다. 


매우 작은 배려가
매일의 일상의 한 부분인 목욕을
단순 세안 행위가 아닌,
특별한 액티비티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


샤워할 때는 의자로, 물 받고 목욕할 때는 책과 주전부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대망의 클라이맥스는 월풀욕조의 수중 마사지 기능이다. 

욕조에 물을 넣고 마련된 욕조의 스위치를 돌리면 물안에 공기가 주입되어 부드러운 물의 수압이 몸을 전체 마사지해주는 기능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욕조에서 매일 목욕을 해서
이탈리아에 파바로티 같은 훌륭한 성악가들이 많고,
클래식 음악이 발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어느 순간 들었다.

이런 삶의 질을 높여주는 욕조를 만든다면 정말 디자인만 해도 특허를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샤워를 하면서 이 것을 개발한 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이 욕조를 집에 설치할 생각을 해준 소중한 인연의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연락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영롱하구나. 자쿠지 형제 만세


더욱 감사하기 위해서는 이 욕조 회사를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욕조 한켠에 '자쿠지(Jacuzzi)'라고 쓰여있기에 검색을 해봤다.


사실 이 자쿠지라는 이름을 나는 이번에 궁금해서 찾아보기 전까지는 큰 오해를 해왔었다.

그 발음의 소리 때문인지 일본어에서 나온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이 자쿠지라는 말을 사용하면 항상 조심스레 욕조(Bath Tub)로 말을 바꿔서 대답을 하고는 했었는데, 

출처- jacuzzi.it

알아보니 이 회사는 '자쿠지'라는 성을 가진 이탈리아 가족이 만든 브랜드였다. 

그리고 자쿠지는 고유명사화 되어서 수중 마사지 기능이 있는 욕조를 통상 자쿠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자쿠지 가문 형제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 조카의 치료를 위해서 물 안에 공기를 주입해서 마사지를 할 수 있는 이 월풀 욕조를 개발하였고, 현재에도 가정집뿐만 아니라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서도 사용이 된다고 한다.


집 안의 평범한 화장실에서 그것도 욕조에서 샤워를 하면서 이렇게 삶에 감사함을 느낄 일인가? 

그렇지만 정말 행복한 샤워였다.


매일매일 목욕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렸을 적 거품 놀이 목욕했던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당분간 나의 사무실은 공원이 아닌 욕조일 확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덕분에 청결한 사람이 될듯하다.)


이탈리아의 훌륭한 발명까지 해준 집사랑둥이들 모두 감사합니다!






메인 커버사진의 출처는 jacuzzi.it의 Jacuzzi® Hot Tubs의 제품설명 홈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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