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Italia
roma, italia
11월 어느 저녁,
남편은 로마 바티칸 동네의 한 레스토랑에서 셰프로서 키친을 책임지느라 매우 바쁜 시간.
토요일 저녁 나는 혼자서 동네 슈퍼마켓으로 장을 보러 나섰다.
‘우유 조금 혹은 마지막 계란은 남았으니까...’하면서 오전에 장볼 것을 미루다가 점심에 텅텅 비는 냉장고를 보고서야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결혼 이전에는 조금이라도 먹고싶은 것이 있으면 긴 생각없이 재료를 사서 만들어먹고, 금새 먹고 남은 재료들을 오래도록 냉장고에 두다 버리는 날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연애 때는 정말 몰랐다.
(어쩌면 알았지만 그때는 어려움 마져도 눈에 콩깍지 씌여서 넘겼었겠지?)
요리사가 이렇게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집 키친의 모든 식재료와 식자재들은 엄격한 HACCP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티비에서 나오는 “HACCP~해썹~!” 이라는 광고를 빼고는 이에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예를 들면, 주방에 택배 상자를 절대로 식탁에 올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상자를 비운 뒤 집 밖으로 퇴출시킨다.
(벌레가 함께 올 수도 있고 많은 오염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정집임에도 주방을 다 사용한 밤에는 남편의 철저한 2차 소독시스템으로 “주방 마감”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되면 고무장갑을 끼고 (과장을 더해서) 흡사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를 연상시키는 완전무장으로 남편은 주방을 벅벅 문대고 칙칙 소독하고 쏴아아 물청소한다.
그리고 모든 식재료들은 진공포장되어서 저장되며 식칼, 가위 등의 집기류들은 완벽한 살균프로세스를 거친 뒤에야 찻장에 보관된다. 큰 패키지의 고기를 구입한 경우,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게 집에 도착과 동시에 100g씩 정확히 소분하여 냉장고, 냉동고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또한 밥을 할때에도 파스타를 할때에도 우리는 정량으로 일인분을 재서 조리를 한다. (어머니의 “한입만 주면 정떨어져”이론에 따르면 정이 없는 우리집 현장). 또한 남편의 철학대로 우리집 냉장고에서는 어떤 음식재료도 낭비하지 않는다. 정량을 계산해서 장을 보고, 예상되는 많은 양을 구입하면 바로 신선한 채로 소분하여 급속 냉동고에 저장해야한다. 또한 냉동고 속 재료도 계획해서 빠른 시일내로 소비해야지 오래두면 음식이 건조해진다는 것.
이렇게 설명하고나서야 남편의 주방 관리 스타일에 조련 아닌 조련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오늘 냉장고를 비운 뒤에서야 장을 보러 가는 것을 합리화해볼 수 있겠다.(사실은 움직이기에 엉덩이가 무거워서였기에..^^)
저녁에 동네 슈퍼마켓은 정말 붐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기보다는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 짧게 싱싱한 먹을 것들을 구입한다.
점심에 김치볶음밥을 먹었기때문에 오늘 저녁은 이탈리아 피아디나(Piadina)를 가볍게 만들어 먹고 싶다. 피아디나는 넙적하고 동그란 빵을 구워서 그 위에 햄,치즈 그리고 채소들을 올린 후 반을 접어 먹는 가벼운 샌드위치 느낌의 음식이다. 저번에 남편이 한번 만들어줬는데 너무 간단한데 맛있어서 오늘 한번 따라해먹으려고 한다. 남편이 일하고 돌아오면 11시가 넘으니 배고플걸 생각해서 프로슈토 꼬또(Prosciutto Cotto: 돼지 햄)도 넉넉히 사고, 심심한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갈은 토마토 소스도 사고, 로마 주변의 라치오 주 안에서 키운 싱싱한 달걀도 구입 완료.
(이탈리아에서는 우리집 금방 0km에서 재배된 식재료를 소비하자는 운동이 있다. 집에서 가까운 농가의 제품을 이용하면 배송비도 줄이고 배송되는 동안 차로 배출되는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기도하다. 동네 농가를 살리는 운동의 한 방법이기도하기에 0km재료라고 로마지역의 대표인 콜로세움을 그려놓은 로마가 속한 라치오 주의 달걀을 구입한 것.)
사실 오늘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아름다운 이탈리아 식재료의 패키지였는데 어째 서문이 길어졌네. 위의 사진은 토마토만 갈아넣은 오늘 세일했던 토마토소스 패키지이다. 디자인이 이뻐서 자꾸만 자꾸만 손에 쥐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다시 들여다 보았다. 이탈리아에 살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방,옷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스매그(Smeg: 이탈리아의 디자인 가전제품 브랜드)를 보더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집 안의 작은 가구의 디자인에도매우 공을 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급기야 천원의 토마토캔도 팩에 들어있는 슬라이스 햄의 포장도 디자인이 사는 것에 기분이 좋다. 누군가는 슈퍼에서 파는 햄의 포장 디자인이 예뻐서, 토마토병의 디자인이 황홀해서 하루를 기분좋게 보낼 수도 있다는 것!
오늘의 장보기 일과는 처음 대문 나오는 순간 대로에 가득찬 사람들의 공기를 마시며 ‘아...왜 진작 안나왔지?’로 시작해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손에 쥔 채로 들고온 토마토 병을 바라보며 ‘아..이렇게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인 것을..’으로 마무리 짓는 짧지만 뿌듯한 여정이었다.
(물론 이후 아득한 냉장고 소분과 정리의 시간이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