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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17. 2019

장미와 함께 '로마의 휴일'

roma, italia

어느 일요일 아침

roma, italia


길었던 일주일 끝에 휴일의 아침이 밝았다. 

깊고, 꿀같이 달콤한, 아침 늦잠을 푹 잤다.  


오늘의 일정은 브런치를 즐기고, 장미 정원에 가는 것. 

날이 추워지면 장미들이 시들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장미를 보러 가야 할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일리(illy)에 들렸다. 

보통은 집 앞의 카페를 가지만 휴일에는 드라이브도 할 겸,

콧구멍에 로마 공기도 쐴 겸 베스파를 몰고 일리로 향한다.    

일리는 이탈리아 북쪽의 트리에스테(Trieste) 지역에서 만들어진 커피 브랜드이다.


 이탈리아의 아침식사에 대해서 저번에 잠시 언급했었는데, 

카푸치노와 코르네토(Cornetto: 이탈리아 스타일의 크루아상)로 이루어진 

'달콤한 아침식사'를 주로 즐긴다.


*갑자기 달콤한 아침식사라는 말을 내가 자연스럽게 쓰는 것에 나 자신이 놀랐다.

이 말을 처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내 친구의 시모네 덕분이다.


시모네는 6년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할 때 만났던 독일인 절친한 여자 친구이다.

학기가 끝나고 독일 스투트가르트 주변의 작은 마을인 루드빅스부르크에 있는 그녀의 집에 여행을 갔었다.


시모네의 어머니는 정말 긴 여행으로 초췌해진 나의 부츠를 손수 닦아주시고, 

어떻게 해서든 고국의 먼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작은 동양 여자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주셨었다.


그녀의 집에 첫날 도착했을 때, 잠들기 전에 시모네가 내게 물었었다.



5년 전, 시모네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파리로의 여행

"달콤한 아침식사를 좋아해? 

짠맛의 아침식사를 좋아해?" 


그때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베이컨도 먹고, 빵에 쨈도 발라먹는 나는 짠맛과 달콤한 맛을 따로 구분하여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한 의식은 또 남편과 지내면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남편은 무조건 달콤한 아침식사만 선호한다.

내가 베이컨을 아침에 구우면 힘들어했고, 

우리 집에 있을 때는 아침부터 팔팔 끓이는 엄마의 미역국을 힘들어했었다.


그리고 달콤한 것이 입에 가득할 때 짠맛의 음식을 내가 맛보라고 하면 매우 곤란해한다.

(입에서 단맛과 짠맛이 함께 공존하는 것은 아침의 매우 예민한 입속의 심기를 건드리기 때문인 걸까?)

이런 것이 내가 경험한 단짠단짠의 매력을 즐기는 우리와 사뭇 다른 유럽인들의 입맛인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코르네토는 베이커리마다 맛이 매우 다르다. 


나는 평일에는 여느 백반집의 찌개 같은 정겨운 고소하고 깊은 크림 향의 동네 바 코르네토를 좋아하고, 

쉬는 날에는 고소하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게 과일의 향이 밸런스를 맞춰줘서 조금 더 깊은 내적 만족감을 주는 코르네토를 선호한다. 

오늘은 후자의 일요일이기에, 이것을 즐기기 위해 일리로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일리의 코르네토는 가벼우면 부드러운 오렌지향이 깃든 크리미 한 맛이 좋은 코르네토를 만든다. 

커피맛도 빵맛도 수준급이지만 최고의 화룡점정 포인트는 바로 일리 바(Bar)의 인테리어와 손에 쥐고 들 

어올려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리의 커피잔이다.  


손잡이는 아름다운 곡선으로 들어 올릴 때 검지와 엄지에 기분 좋은 묵직함을 선사해주고, 커피잔에는 매

번 이탈리아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다른 리미티드 에디션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오늘의 잔에 들어있는 것은 최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비엔날레 기념 삽화가 그려져 있다.

왼쪽이 베네치아 비엔날레 에디션, 오른쪽은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 일리컵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굉장히 현대인들에게 일상적인 행위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굳이 나가지 않아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지친 하루 중에 몸을 일깨구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


그런 흘러가는 일상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혹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순간들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 순간을 포착해서 흘려보내지 않고 짧더라도 온전히 기억하도록 본인에게 선물해주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괜히 소녀병이 걸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반대여. 줌마줌마아줌마) 

일상에 지쳐서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싶은 커피 한잔도 “아!”하며 감탄을 하면서 놀래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어떤 신비로운 것이 이 나라에 있다.


가볍게 브런치를 먹고 장미정원으로 향했다. 

스쿠터를 타고 가며 하늘과 함께 어우러져서 흐드러져가는 가을의 로마의 소 나뭇잎 들을 보았다.


고대 로마제국의 유적지 그리고 현대 내가 있는 장미정원


햇빛에 비춰서 환했다가 그늘에 가려서 어두워졌다가 같은 잎도 모양을 바뀌어가며 경쾌하게 로마의

가을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후의 바람은 매우 따뜻했다. 로마는 언덕으로 (혹은 작은 산으로?) 만들어진 도시인데,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언덕 위에 로마를 세웠지.. 암!)


집 주변만 해도 수많은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미정원은 또한 콜로세움에 가까운 언덕 위에 위치하여 있다. 

스쿠터를 타고 작은 언덕을 올라간다. 

징-소리를 내며 스쿠터가 장미가 핀 언덕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장미가 핀 이곳. 일요일이다 보니 가족들, 연인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다. 

도심 중앙에 갑자기 떡하니 언덕 위에 장미의 정원이라니. 

풋! 하고 웃게 되는 엉뚱해서 아름다운 로마.

세계의 거의 모든 장미 종들을 모아 높은 장미정원. 

장미와 함께 그 뒤에는 2000년 전 로마제국의 유적지가 함께 보인다.

언덕 위에서 장미와 함께 2000년 전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 바라보자니 가슴이 벅차 온다.


그냥 이 도시가 주는 그 거대한 놀라움이 있다. 

알아갈수록 2000년 전의 로마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대단했다. 

2000년 후대의 사람으로서 그 거대한 그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놀라우면서도 어느 날은 엄숙해진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의 위대함 때문일까. 

요즘 현대인들보다도 짧은 생을 살고 간 2000년 전 살아 간이가 건네고 간 선물을 보면 

이 땅에 잠시라도 머물고 가면서 후대에 조금은 이로운 면을 남기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아름다운 장미. 큰 잎 안에 향기를 머금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어느 장미 종의 장미는 검붉은 가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혹적이면서도 깊은 여성의 립스틱과 같은 색깔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장미처럼 얇고 뾰족한 것이 아닌, 마치 큰 뿔처럼 당당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가시이다.

우아하고 당당한 가시를 가진 장미 / 꽃보다 남편??

괜히 로마제국의 유적지를 배경으로 삼아서 그런지, 꽃마저도 위엄을 가지고 의견을 피력하는 듯하다.


세월이란… 그리고 위대한 업적이란.. 그리고 강한 생명력이라..


그뿐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 로마의 장미 정원은 이전에는 유대인들의 지내던 지역이 가깝기에 

유대인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무솔리니 시대에 그는 이 무덤을 다 엎고 그 자리에 장미정원을 세웠다.

그래서 장미 정원은 위에서 바라보면,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함께하는 6개로 만들어진 촛대 모양을 띄고 있

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무덤을 절대 가지 않는다. 죽은 이의 기운이 말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죽은 이

가 아래에 있는 그 땅을 산자가 밟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장미정원 또한 현재에는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로마의 유대인들을 이곳을 오지 못한다. 

(이 또한 우리 아침 바 Bar의 인원이 미노와 로베르타 부부에게 들은 것이다. 그들은 독실한 유대인) 


거대한 과거의 흔적 보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다 보니 유독 보이는 구절이 있다.

1787년 1월 25일, 로마
이제 로마 체류에 대해 설명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먼바다로 나갈수록 점점 수심이 깊어지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이다. 나에게는 이 도시를 관찰하는 일이 그렇다. 과거의 것을 모르고는 현재의 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양자를 비교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차분한 마음이 필요하다. 세계의 수도인 이 도시의 지형만 해도 벌써 우리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이곳은 훌륭한 지도자를 모시고 유랑하는 대 부족이 정착한 것이 아니고, 신중하게 제국의 중심지로 건설된 것도 아님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어떤 강력한 군주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서 이주민의 거주지로 삼았던 것도 아니다. 그와 반대로 유목민과 천민들이 먼저 터를 잡고 건장한 몇몇 청년들이 ‘그’ 언덕에 세계의 주인이 살 궁의 토대를 쌓았던 것이다. 그 언덕에 살던 자들은 집권자의 횡포로 습지와 갈대밭 사이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의 일곱 언덕은 뒤에 있는 땅에 비해 그리 높다고 할 수 없고, 테베레 강과 나중에 캄푸스 마르티우스가 된 테베레 강의 태곳적 하상(河床)에 비해서만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위대한 묵직함을 내가 느끼는 것은 비단 로마제국의 무게만이 아니다.

괴테가 230년 전 이 도시에서 느낀 것처럼 과거의 것을 모르고는 현재의 것을 인식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더욱 도시를 공부할수록, 알아갈수록 고민의 수심은 깊어지는 것을 가진 신비로운 힘을 가진 곳.

 

굉장히 오랜 역사에 의해서 변해온 도시의 공간은 한 시대만을 대변하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2000년을 흐르며 변모하고 그 의미 또한 바뀌어오고, 

누군가에게는 환희를, 놀라움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하는 슬픔을. 

전해준 역사의 공간이다. 


이것들을 이해하고 다양한 측면을 공부하고 도시를 바라볼수록 위대함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더욱더 무거운 아름다움에 도취되고는 마는…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서 황홀해지는 곳이 바로 이곳 로마라는 도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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