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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16. 2019

이탈리아 토종 겨울음식은 구황작물덕후를 달랠 수 있을까

편의점 꿀고구마 없는 로마의 겨울은 너무 가혹해

편의점 꿀고구마 없는 가혹한 로마의 11월


어둠직한 저녁,로마 바티칸 동네 한편에 슬픔이 가득하다.

그것은 바로 어느 구황작물덕후의 집에서 나오는 기운이었는데..


밤과 고구마 없이는 겨울을 지나갈 수 없는,

옥수수 없이는 여름을 지나갈 수 없는,

나의 엄청난 심적 동요의 기운이었던 것이었고 것이었고 것이었던 것이다..!


내게 꿀고구마를 없이 겨울을 지내라는 것.

그것은 마치 이번 겨울은 겨울잠 없이 살라고 숲 속 곰에게 말하는 것!

이것은 소리 가득한 아우성!

내 속의 구황작물 자아는 계속해서 내게 외쳤다.

꿀고구마가 없다면 내게 죽음을 다오.

(요즘 들어 고전 소설 그것도 주로 번역본 읽다 보니 태초의 자연에 가까운 문어체만이 자꾸 떠올라서 그만..)


내 삶에 있어서 나 자신이 성공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 온다면

단연코 나만의 적외선 군고구마 구이 기계를 사는 날일 것이다.


나는 어마어마한 구황작물 덕후이다!
*구황작물의 가공제품도 매우 사랑한다.
예시) 옥수수떡, 고구마 케이크


여름이면 나는 가락 시장에서 옥수수를 포대로 사서 집에서 삶아서 뜯고, 맛보고, 즐기는 낙에 살았었다.

그리고 항상 부엌 뒤편에서 그걸 불안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이탈리아 남편이 있었다. 과도하게 영양의 균형과 세심한 맛의 풍미를 표현하는 셰프님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압력밥솥을 열어도 옥수수, 냄비 솥을 열어도 옥수수, 식탁 위에도 옥수수, 침대 한편에 쌓여있는 옥수수수수수.


항상 남편은 몇 년째 그렇게 끊임없이 옥수수를 '과식하면~ 배탈 나~'를 아기공룡 둘리의 가시고기마냥 내게 외쳐왔었다. 그리고 매 여름 옥수수를 과식으로 장트라볼타를 앓아왔지만 옥수수 사랑을 후회한 적은 단연코 없다.


매 겨울, 남편은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갓 구운 꿀고구마를 사서 왔다.

우리는 함께 인터넷에서 편의점의 군고구마 구이 기계를 유심히 보고, 공부하고, 가격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락시장의 주방 식품 도매 가게에서 실물도 영접하였다.

남편은 기억하고 있나요. 난 명품가방 필요 없어요. 꿀고구마 기계를 부탁해요.

원적외선과 맥반석 구이를 함께 할 수 있는 다목적 고구마 구이 기계. 영롱하구나. 출처-(주)아이스칸


이런 내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오늘 진지한 겨울나기 걱정을 하다가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탈리아인 남편은 이탈리아에서 즐길 수 있는 겨울 음식 5가지를 소개해주었다.


1. 콩과 파스타(Pasta e fagioli)

이 메뉴는 얼마 전 갑자기 한파가 왔을 때,

로마의 홍대, 연남동이라고 할 수 있는 트라스테베레 지역 레스토랑에서 먹어보았다.  

트라스테베레 식당에서 그날 저녁 우리가 먹은 콩과 파스타 사진.

베이스는 토마토소스였고, 보시다시피 부서진 파스타 조각들과 콩이 섞여있다.

따뜻한 액체를 숟가락에 먹는 일이 이탈리아에서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흔쾌히 먹었다.


2. 이탈리아 소꼬리찜(Coda alla vaccinara)

위의 콩 파스타 수프랑 같은 날 시켜 먹었던 메뉴이다.

그 이후 매 주말마다 가서 먹게 된 토마토소스에 오랜 시간 잔잔하게 조리한 로마 전통요리인 소꼬리 스튜.

나는 뭉근한 소고기가 마치 부드러운 갈비찜을 연상시켜서 좋아한다.

트라스테베레 식당의 소꼬리찜. 뒤는 남편의 양고기와 가운데에는 유대인식 아티초크 튀김.

다만 아쉬운 점은 남은 소스를 빵으로 닦아 먹어야 한다는 점!

공깃밥 한 공기 추가를 한다면 밥을 말아서 정말 먹고 싶다.

(항상 남는 소스에 밥 말아먹고 싶어서 외식 갈 때 햇반을 들고 갈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이 아이디어는 남편에게 매우 비난을 받고 포기했다.)

뭉근한 고기를 먹으면 나는 겨울 음식의 느낌을 받는다.

갈비탕 고기도, 갈비찜 고기도 그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겨울 음식 차선책.


3. 소고기스톡에 소고기 토르텔리니(Tortellini in Brodo)

이 대안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어렸을 적 이탈리아 중부지방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 머물렀을 때, 겨울에 많이 먹었었던 이탈리아식 물만두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직까지 이 라치오주의 로마에서는 훌륭한 토르텔리니를 만나지 못했다.


특히 겨울 음식에서 밀라노가 있는 롬바르디아주 출신의 남편과는 마찰이 잦다.

남편은 한국에서 겨울에 내가 소중히 쿠쿠로 지은 아름다운 김포 쌀밥 위에 100g의 고르곤졸라를 올려서 먹었었다. 나는 남편이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끝낼 때까지 어느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관경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참을 이 상황을 설명했었다. 나의 이 기분에 동조해줄 한국인의 의견이 매우 절실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추운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북부지방이기 때문에 롬바르디아의 요리는 매우 버터 가득하고 크림 가득하게 느껴진다.

(아마 내가 에밀리아 로마냐 주의 중부 음식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또 프랑스 음식에 비하면 버터 가득, 크림 가득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물만두와는 다르게 반죽에 계란이 들어가서 만두피가 힘이 강한 편이고 강한 쫄깃함이 느껴진다.

수프 위에 충분하게 파르미지아노 레자노 치즈(parmigiano reggiano)를 뿌려준다.

출처: buttalapasta.it의 tortellini in brodo 기사. 소고기 육수 안의 소고기 만든 토르텔리니
출처-www.ilgiornaledelcibo.it의 COME FARE I TORTELLINI 기사. 이렇게 토르텔리니를 빚는다.


4. 폴렌타(Polenta)와 소시지

출처-NY Times 쿠킹의 Creamy polenta with Parmesan and Sausage 기사

폴렌타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퓌레 같은 제형의 음식이다.

역사적으로는 서민들이 주 소비층이었다.

한국에서 우리가 전쟁 난에 감자를 많이 소비한 것처럼 이탈리아 어르신들은 폴렌타를 떠오르면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북부 도시 꼬모에서 해산물과 함께 퓨전 폴렌타 메뉴를 먹어봤는데, 의외로 한국인에게 친근한 맛이었다. 약간 굉장히 불은 조밥 같은 느낌이었다. 입에 넣고 킁킁 거리며 곡물의 맛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고소함이 올라와서 나는 즐겁게 먹었다. 불은 옥수수빵 같기도 하고. 식감 자체는 미끄덩해서 선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구황작물 옥수수의 고소함을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이탈리아 겨울 음식이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폴렌타에 고르곤졸라를 함께 준비한다면 나는 즐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공포스럽게도 북부 사람들은 폴렌타를 고르곤졸라랑 먹는다...)

출처-.foodnetwork.it와 la cucina di Margi의 고르곤졸라 폴렌타. 나는 실재로  이 요리와 마주하지 않아도 삶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5. 뱅쇼(Vin Chaud)와 마롱 글라세(Marron glacé)

뱅쇼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을 뜻한다.

레드와인에 오렌지, 넛맥 그리고 계피 등의 재료를 넣어 끓여 만드는 따뜻한 와인이다.

출처-Wikipedia에 Vin brulé로 검색해서 나오는 Un pentolone di vin brulé 사진. 뱅쇼 사진입니다.

조금 더 알아보고 싶어서 위키피디아에 찾는 중에 발견하였는데,

이 뱅쇼(영어로는 mulled wine, 한국어로는 온포도주)의 기원은 로마에 있다고 한다!

로마에서 2세기경에 와인을 따뜻하게 덥혀서 향을 입히는 요리를 처음으로 했다고 한다.


프랑스 단어인 뱅쇼로만 익숙해져서 프랑스 음식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거대한 강국이었던 로마가 유럽의 나라들을 정복할 때마다

이 음식을 전해주어서 다양히 퍼지게 되었고, 그래서 영국도 뱅쇼를 크리스마스에 즐겨먹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뱅쇼를 생각하면 프랑스 북부 도시 릴(Lille)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떠오른다. 당시에 파리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릴을 여행 갔었는데, 추위에 떠는 우리를 크리스마스 마켓의 따뜻한 뱅쇼가 달래주었었다. 처음에는 한잔을 사서 모두 돌려마시다가, 나중에는 계속 계속 더 주문해서 결국 인당 한잔 이상을 먹었었던 재미있는 기억이 난다. 계피향을 맡으면 뭔가 건강해지는 약효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향긋한 절인 오렌지 향에 기분 좋게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겨울 음식으로 인정!


그리고 마롱 글라세(Marron glacé)는 북부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 기원의 밤을 설탕시럽에 절인 디저트이다.

출처-Costaporto Torino의 MARRON GLACÉ E VIOLETTE CRISTALLIZZATE 마롱 글라세

15세기에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 지방에서 사보이 가문의 공작을 위해서 이탈리아 요리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이 사보이 가문, 혹은 사보이아 가문(Savoia)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그 가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남부 도시인 리옹 근교에서 그 시작의 사료가 찾아지고 있다고 한다.


대신 사실 이 마롱(Marron)은 밤(Châtaigne)과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마롱은 밤보다 열매 자체가 크기가 크고, 질이 좋은 것을 일컫는다.


한 겨울에 고급 식료품점에 가면 정말 위의 그림처럼 초콜릿을 감싸 놓은 것처럼 진열해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에서 자신들만의 레시피로 만든 마롱 글라세 하나, 그러니까 밤 디저트 하나를 3유로에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밤 디저트 한 개에 4000원인 것이다.

(아니. 이 가격이면 맛밤이 몇 봉지야!)


겨울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때마다 

구황작물덕후로서 오돌오돌 떨리는 하루를 보내는 요즘.

다음 겨울에는 좀더 의연한 자세로 마주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 모습을 기원해본다.

(저 대신 꿀고구마 많이들 즐겨주세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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