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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15. 2019

저는 프로 공원근무러입니다

유랑하며 일하는 그 기분 좋은 불안정함

로마 11월 14일 


이전에 머물렀던 그 어느 도시보다 완연한 날씨의 11월. 

11월이라 하기에 무색한 온화한 날씨에 기분이 좋은 요즘!


('내가 머물렀던 그 어느 도시' 중 

강추위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것은 

오늘 글을 쓰게 만들어줄 우연이 아닌 필연이겠지..?)

장미가 이제 끝물인 온화한 11월의 로마


아침의 로마 기온은 영상 16도 언저리이다.

오늘 한국은 모두가 18살 겨울날을 떠올리면 심리상 가장 춥게 기억됐을 그날, 대 수능의 날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의 겨울을 생각해보면 시험이 다가올수록 주는 그때의 긴장감과 코가 시려운 추위가 함께 기억되어 날씨만 추워도 자동반응처럼 나는 그 당시의 긴장한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열고,

포털에 대수능 날을 알리는 기사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되돌아본다. 

온화로운 날씨에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귀찮은 듯 등지고 긴장 풀려서 

너무 푹 늘어져있는 나를 비춰보니 요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렇게 그간의 겨울들을 이제 졸업하는 건가?

그래도 역시 겨울이 다가오면 심드렁한 사색과 주저리가 늘어나는 거는 그대로구만.

일어나 보니 식탁에 덩그러니 남은 어제 '점심'의 흔적


아침은 바(Bar)에 들렸다가

점심시간 전에 남편과 함께 동네 시장에서 점심거리를 장을 봤다. 

그리고 점심을 요리해서 먹은 뒤에 

남편 출근길에 나도 따라나와서 오늘 일하러 갈 곳을 결정한다. 

나를 주변에 내려주고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남편. 오늘도 수고! (자세히 보면 고영희 선생님 계시고요)


하루는 시칠리아 식 스타일의 바(Bar)에서 일을 하고, 

바티칸 뒤뜰에서 맥북을 가져가서 일을 하기도 하고. 

가장 자주 가는 업무공간은 공원이다. 

특히 집에서 가까운 보르게세 공원(Villa Borghese)에 자주 간다. 


오늘은 외롭고 쓰디쓴 폼을 잡는 가을 아저씨 느낌으로 맥북을 터덜터덜 들고 일터로 나섰다. 


나는 프로 공원근무러이다. 


나 외에는 

관광객들 상대로 로마제국 시대의 검투사 옷을 입고 돈을 받고 포토타임을 마련해주는 검투사님들

1유로에 공원 화장실의 청결과 경비 역할을 하는 형님 등이 같이 보르게세 공원을 사무실로 공유하고 있다.


흡사 이 패션으로 로마 검투사 형님들은 근무하신다


공원의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오늘 업무도 파이팅!'하고 서로 눈빛을 주고, 웃어 보인다. 

*가끔은 공유 사무실 이웃인 나에게는 화장실 사용료 1유로를 안 받기도 한다.*


나는 이 공원에서 책을 쓰고 있다. 
오늘은 나도 갈매기도 둘 다 생각이 많다. 겨울이라서.


관광객들이 공원 초입구에만 많기에, 나는 공원 중간 깊숙이 걸어 들어간다.

조용하고, 거대한 로마의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길들을 둘러본다.

로마 커플들은 오늘 모두 공원에 나온 것 같다.

띄엄띄엄 숨겨진 장소에 위치한 그들의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로마의 흔한 길 모습.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파릇파릇 초록이들과 일터로 향하는 아저씨 컨셉의 내 발

한참을 걷다가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는 젊은 커플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용 관람차가 있고 (이 공원에 동물원, 미술관도 있어요)

다양한 이탈리아 역사에 중요한 위인들의 두상 조각들이 나를 둘러쌓고 있으니 

나도 괜히 심각한 표정으로 일을 임해야 할 것 같다. 


나무 사이에서 글을 쓴다. 타닥타닥.



공원에서 일을 하면 아무렇게나 몸을 벤치의자 위에 널브러뜨려도 좋다.

(한국인으로서 망신 스러 울 정도로 녹아내려있지는 않으려 노력합니다만..) 

다리를 밴치에 올려도 거리낌이 없다.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다리를 쭉 뻗어서 등받이에 기대서 글을 쓴다.

근육이 저리기 시작하면 자세를 바꾼다.

이번에는 아빠 다리.


'홀로 아빠 다리를 하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나무에 둘러싸인 동양인을 다른 이의 눈으로 상상하니

요가하고 명상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싶으니 그 순수한 서양인의 상상을 깨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심각하고 빠져든 몰입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주시했다. 

(실상은 잠시 유튜브)

다시 집중해서 글을 쓰다가 잠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책을 꺼냈다.


요즘은 괴테(Goethe)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휙 하고 지나갔다.

머리통에 툭하고 마른 열매가 떨어졌다.

*그나저나 <이탈리아 기행>에서 괴테가 이 11월에 로마에 불어오는 바람은 시로코라고 불린다고 한다.* 

 

다음은 방금 읽은 내가 이 도시에서 느끼는 감정과 닮은 230년 전의 괴테의 글.

1786년 12월 13일, 로마  
정말이지 와보지 않고는 이곳에서 어떤 식으로 수련을 쌓는지 알 도리가 없다. 말하자면 여기에 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 갖고 있던 개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신던 신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오면 제법 대단한 사람이 되며, 비록 그것이 그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특별한 개념을 얻게 된다.

맞아. 어떤 식으로든 매일이 이곳에서는 수련 같다.

'시원한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고도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 나'는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다시 태어난다. 

이전에 나를 휩싸였던 개념들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200년 전의 카노바(Canova)의 조각과 현대의 장미가 함께하는 이 곳


돌아보면 번뜩 나는 때를 잘못 산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꼭 회사원처럼 하이힐을 신고 다니고, 한 번도 흔한 운동화를 교복에 신지 않은 요상스러운 여학생이었다. 그 검은 구두를 신었을 때 드는 기분이 내 바람이었을까. 

너무 어렸을 때 미리 많이 신어서 그런지 정작 일을 하러 나가는 회사원이 되었을 때는 한 번도 아. 아니다. 매번의 회계감사 날에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신었었구나.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는 화장도, 진중한 하이힐도 더 이상 당기지가 않더라. 

그러더니 주변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조직에 나와서 공원에서 글을 쓰고 있다. 

세상에 참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코웃음이 나겠다. 

(친구 여러분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한 인간의 성장통을 지켜보고 있사와요.)


인생은 '매번의 선택이 쌓여서 만들어가는 이야기 보따리이다'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지나갈수록 이 놈의 선택은 감히 내 머리에서 나오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통일성도 없고 

그 발전과 후퇴가 무한정하다. 


자기 존중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열심히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따뜻한 꿀 시멘트로 미장해주고, 말려주며, 위로해주고, 사랑해준다.
가끔은 너무 내가 대견하고, 가끔은 내가 너무 한심해도 
매번의 상황을 사랑해주고, 미래를 보완해보고 
이런 엉기성기한 조각들에 꿀 시멘트를 발라가는 것이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글 쓰다가 올려다본 하늘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틀에 맞춰서 정해진 과목들을 공부하고, 

해야 한다는 관문을 거쳐서 대학에 가고, 

해야 한다는 틀에 맞춰서 일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과도하게 그 틀에 나를 밀어 넣었던 것 같다.


그 틀을 처음 깼을 때는 매우 힘들었다.

항상 처음이 힘들다고. 


나는 주변 모두가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프랑스 파리로 떠났었다.

주위에서 많은 걱정을 했었다.

돌아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취업할 나이잖아. 취업하고 여행 가.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이 이야기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나는 프랑스 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에 엄청나게 매혹되었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공부를 정리하며 

2주간의 여행으로 들른 프랑스 파리는 나를 혼돈의 오춘기에 밀어 넣었다.


처음으로 틀을 깬 것은 그때였다.

따끔했다.

그때 나는 그곳에 당장 갔어야 했고,

고민하지 않았다.

이번이 아니면 이런 나는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파리에 갑자기 다시 도착했다. 


결론적으로 

문학과 문명의 소용돌이를 유랑하는 나의 파리 시절은 

틀 깨기 인생의 훌륭한 첫 시작이 되었다. 


그 첫 틀 깨기를 시작으로 

지금의 나는 이곳 로마의 보르게세 공원의 벤치 위에서 과거의 교황님들의 석고 두상 옆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어떻게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남편을 만났고, 함께 열심히 틀 깨기를 실행해왔다.


사회는 개인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정도의 고속으로 인생이란 공을 내던져 준다. 


그 속구를 받기 전에 이제는 미리 한 번 생각을 한다.

"이 공이 내가 받을 필요가 있는 공인가?"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금실로 감쌓여진 공이라도 나는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늘은 글쓰기 반, 잡생각 반의 

50%짜리 업무 효용성의 날로 마감을 해야할 것 같다. 


해가 저물 때가 되면, 배꼽시계가 울리면 자연스럽게 퇴근시간이다. 

내 퇴근시간은 날씨와 일몰시간이 결정을 해준다


퇴근시간이 자연에 맡겨진다는 것에 감사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앉은 벤치의자 주변에 있던 책을 읽던 커플들은 이미 사라졌다. 

대신 카메라와 조명을 켜놓고 춤 비디오를 찍는 커플이 새로 보인다. 

작은 스피커로 라틴음악을 깔아놓고, 

연거푸 같은 부분을 흐느적이며 추는 커플이 열정적이고 로맨틱하게 보인다. 


퇴근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


공원 사무실은 온도조절 기능이 취약한 편이다. 

입김이 살살 나오는 때니, 맥북을 백팩에 넣고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는 로마의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는 곳인 핀초 언덕(Passeggiata del Pincio)을 지난다.


짙은 핑크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멍하니 핀초 언덕에서 바라보니 벅찬 마음이 들기도 한다. 

꽤나 아름다운 분수도 옆에 있고 포폴로 광장을 바라보자 하니 꽤나 괜찮은 하루였다. 

집에 가서 지금 딱 제철인 포르치니 버섯으로 요리한 파스타를 해먹을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게다가 오늘은 아프리카 이웃들을 위해 UN 식량농업기구에서 근무하는 중국 친구와 함께 요리를 하기로 해서 손님이 온다는 것에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UN 임직원 할인으로 손사래 칠 때까지 맛있는 로마의 맛집투어를 시켜주는 그녀는 내게 너무 소중하다!)

*UN 식량농업기구 본부가 로마에 있어요.*


나는 포르치니 버섯을, 

중국인 친구는 부모님이 가져오신 목이버섯으로 요리를 할 것이다.

방금 전송받은 남편 식당 '오늘의 애피타이저'사진 (제 요리는 못생겼어요 허허)


어두운 오렌지 음영의 핑크빛 하늘을 뒤로하고 

급하게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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