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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트걸 Jun 25. 2020

아웃도어의 천국, 미국 캠핑기

네 바퀴 굴려 떠나는 코로나 시대의 여행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무엇보다 그리운 것이 여행이었다. 연말 LA 이후 어딘가 떠나본 적이 없으니 반년이 훌쩍 넘었다. 한 때는 여행잡지를 만들고 여행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에디터 출신 이건만, 인간의 생명이 좌우되는 펜데믹 시대의 여행은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와 언어 속에 놓이는 설렘도, 자동차를 몰고 근교 도시를 드라이브하는 것도 주저되는 시대. 2021년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면... 혹시 캠핑은 어때? 배정받은 사이트 안에서만 며칠 지내다 오는 것도 힘들까?"
"화장실, 설거지 시설은 밀폐된 공간인데..."

"마스크 쓰면... 괜찮지 않을까?"


우리 가족에게는 캠핑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일단 야외는 바이러스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고, 캠프 사이트 내에서는 타인과의 접촉 없이 마음껏 잔디 위를 뛰놀고 해를 쬐며 하루가 피고 지는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침 5월 말을 기점으로 미네소타 주 국립공원 및 캠핑장에 내려진 셧다운 조치가 대부분 해제되며 긴 시간 자가격리로 지친 우리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미네소타 내 여러 체인을 갖고 있는 전문 캠핑 사이트 KOA HOLIDAYS


드. 디. 어! 소심하게 몇 시간 시원하게 고속도로 한번 달릴 생각도 못한 채 30분 거리의 미네소타 남쪽 KOA 캠핑장에 입성했다. '집 밖은 여전히 위험해'라는, 긴 고립의 시간 동안 생활 반경도 줄어들고, 그 몇 킬로미터 남짓한 가시거리 속에 내 일상이 재단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달까. 그 와중에 마트가 아닌, 여행의 목적지를 향해 차 한 가득 짐을 싣고 내달리는 길은 가슴의 온갖 스트레스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저마다 캠퍼밴을 끌고 여행 온 미국 가정들


미국 캠핑카 구경에 삼매경
역시 아웃도어의 천국이구나!


호주와 영국, 한국 등 긴 시간 다양한 나라의 캠핑을 경험해봤지만 미국 캠핑장의 첫인상은 '역시 아웃도어의 강국답다'는 거였다. '저렇게까지 큰 캠핑카를 어떻게 차 뒤에 달고 운전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미니밴부터 관광버스 사이즈까지 엄청난 규모의 아웃도어 차량들이 캠핑장의 좁은 길을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하게 휘어지는 코너링, 완벽하게 수평을 맞춰 정차된 캠핑카를 훑으며 미국은 아웃도어의 규모도가 참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적으로 도로가 좁고 싱글하우스 주차 공간이 적은 영국에서는 캠핑카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많고 다양했던 것이 텐트 캠퍼족이었다면 미국에서는 '그라운드 캠프 ground camp'라 부르는 이 클래식한 캠퍼족들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묶었던 캠핑장의 90%는 모두 초대형 캠핑카가 점령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캠핑카 사이에서 묵묵하게 텐트 완성! 
미국에서의 첫 캠핑을 기념하는 5세 그림. 텐트를 치자 마자 그 안에 들어가 신이 난 아이.


폴대를 세워 펼쳐야 하는 육체적 수고로움이 상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텐트가 좋다. 완벽하게 땅을 딛고 눕는 그 안에서의 하룻밤은, 가끔 보슬보슬 비라도 내릴 참이면 그 낭만은 극대화된다. 가만히 그 안에 누워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도, 비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휘어지는 긴장감을 애써 억누르는 일도, 야생에서 주어지는 일탈의 경험인 듯 특별하다. 물론 새벽부터 떠오른 아침 해에 한증막처럼 달궈진 텐트 안에서 늦잠을 잘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가끔 빛을 투과하는 텐트 주변으로 반딧불이가 날아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불빛의 일렁임은, 또 문을 열고 텐트 안에서 밤하늘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경험은 텐트 여행이 주는 낭만 중의 낭만이다.


캠핑의 화룡점정 스모어 삼매경


스모어 S'more?
섬 모어 Some more!


아웃도어와 불은 빠질 수 없는 관계다. 야전에 나왔으니 불을 피우고 최소한의 음식을 만드는 재미는,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요리하는 능숙함과는 다른 설렘이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소꿉놀이하는 기분이 딱 이럴까. 캠핑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스모어S'more부터 시작한다. 마시멜로를 화로에 구운 뒤 비스킷 사이에 납작한 허쉬 초콜릿과 함께 포개어 먹는 이 달달하기 짝이 없는 디저트는 1920년대 캠프파이어 마시멜로 컴퍼니에서 발행한 책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처음에는 "Graham Cracker Sandwich"라고 불렀다는 이 스모어는 이후 1967년 베티 크로커의 요리책에 유사한 레시피가 등장하며 오늘날 스모어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Some More의 약자인 스모어. 딱 의미처럼 "더 달라고!"를 연신 연발하는 캠핑장의 아이들. 그래, 오늘은 모처럼의 여행이니까 많이 먹으렴.


놀이터와 우리 만의 캠핑 사이트 안에서 모처럼 제지 없이 자유롭게 뛰논 아이들


우리에게 딸기 한 접시를 건네주었던 미국 노년 부부를 제하고는 캠핑장 방문객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감사의 답례로 한국식 군고구마를 화로에 구워 건네러 갔을 때, 그 부부가 말했다. "딸아이가 이번에 대학을 갔어요. 저렇게 우리와 함께 뛰어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우리 둘이 캠핑을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마음껏 우리 텐트 지정 영역 안에서 잔디를 밟고 뛰 노는 아이들, 물총놀이에 몸이 흠뻑 젖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모처럼 맨발로 놀이기구를 타고 흙을 밟는 찰나의 순간이 귀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코로나19 지침으로 캠핑장은 사이트를 기존처럼 다닥다닥 붙여 판매하지 않는다. 정부 지침에 따라, 한 칸씩 띄어 각자의 사이트가 온전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권한다. 32번 사이트를 배정받은 우리 옆으로, 33번이 비워지고 다시 34번 사이트에 다른 캠퍼족이 들어서는 식이다. 덕분에 엄청난 잔디밭을 덤으로 얻었다. 그 안에서 거리두기를 하며 완벽한 펜데믹 여행을 즐겼던 2박 3일.



미시간주 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Claudia Finkelstein은 CNN 트래블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웃도어 여행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면요? 물론, 떠나세요. 그리고 활동하세요.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아웃도어는 매우 중요해요. 그러나 가급적 넓은 곳에서 안전을 조심하며 즐기길 바라요." 미국이 액티비티 위험단계를 1부터 10까지 매긴 결과에 따르면 캠핑은 코로나 위험도가 3에 해당한다. 이는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고 골프를 치는 것과 동일하다. 테니스는 1, 헬스장은 8에 해당했다.  


가장 기본적인 아날로그 삶으로 회귀하는 지금. 여전히 자연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인간의 부주의와 이기심으로 병들어가는 자연으로, 그래도 또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찾아와 우리는 얼마만큼의 흔적을 남기고 떠난 걸까 하고. 인간은 결코 자연과 공생할 수 없는 걸까. 여행은 또 다른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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