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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어먹는하마 Mar 12. 2020

영어로 지식 쌓기.6

아는 만큼만 들리고, 아는 만큼만 말할 수 있다


8월 초순에 '물(water)'에 관해 포스팅을 하고는 말 그대로 '눈깜짝할 사이(in the blink of an eye)'에 반년이 넘게 지나버렸다. 그 반년의 앞 3개월은 - 정확히는 87일 동안 - 작가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지내느라 브런치에 포스팅할 틈이 없었고, 귀국한 뒤 3개월은 그 사이 밀린 일들을 하느라 브런치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청명한 8월의 바르샤바, 크라쿠프거리 풍경. 멀리 구시가 초입이 보인다.


바르샤바에 머무는 석 달 동안 폴란드어를 1도 할 줄 모르는 내게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는 역시 영어뿐이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하지만 2,30대 젊은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 하는 편이고, 바르샤바도 그랬다. 북유럽 사람들의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영국을 제외하고 ㅎㅎ) 독일사람들이 영어를 제일 잘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잠시 베를린에 들렀을 때 갑자기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어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던 내게 "Can I help you?"하면서 다가온 남자,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자신의 나라에 대한 생각을 또박또박 피력해내던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여학생, 만하임 기차역에서 30분이 넘도록 유레일패스의 예약사항들을 체크해주고 더 빠른 연결편을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고 찾아봐주던 매표담당 직원 - 아무래도 그들과의 개인적 소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 남의 나라 말을 듣고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역시 남의 나라 언어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며 여러 달을 살아야 한다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영어가 서로간에 '제3국어'인 상황에서는 오해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가령, 숙소에 문제가 생겨 호스트에게 해결을 요청했는데 지지부진하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을 때, 현지인이 알려준 대로 찾아갔는데 엉뚱한 곳이 나왔을 때, 지갑을 잃어버려 경찰서를 찾았는데 의사전달에 뭔가 걸림이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등등 - 이런 상황들을 '제3국어'으로만 풀어내야 한다는 건 확실히 진땀나는 일이다. 어쨌든,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말 좀 해주실래요? 
I want to know what's going on.

외국에 나가서 물건을 사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을 물어보거나 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쓰는 말들은, 사실 영어회화 교재들에서 숱하게 봐온 것들이라 '왕초보'가 아니면 큰  어려움은 없다. 때에 따라선 보디랭귀지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Body language is the way in which you show your feelings or thoughts
 to other people using your body, rather than words.
몸짓 언어란 말보다 몸을 사용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거나, 긴박하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도 해야 하고 상대의 생각 또한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하는데, 이럴 때 필요한 건 보통의 영어회화 교재에서 익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보디랭귀지도 그닥 소용이 없고, 오히려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때 적용할 수 있는 말이 유홍준의《문화유산답사기》에 나왔던 저 유명한 "아는 만큼 보인다(You can see as much as you know)"란 것이다.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나라 말로 의사소통을 할 때 '왕고수'가 아니면 누구나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 바로, "아는 만큼만 들리고, 아는 만큼만 말할 수 있다(You can hear and speak as much as you know)"는 사실이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데, 또 하나,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돌아가선 반드시 공부할 거야!"라며 두 주먹 불끈 쥐게 된다. 그렇다. 어쨌거나, 하는 수 없다.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The danger past and God forgotten = 위험한 상황이 지나고 나면 하느님도 잊어먹는다)"는 말처럼 인천공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공부에 대한 다짐은,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죠
First of all, what I want to say is . . . 
저에 대해 당신이 먼저 알아야 할 건 말입니다,
제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The first thing you should know about me is
I didn't do anything wrong.

어릴 때부터 외국에 나가서 산 게 아니라면, 다시 말해 '입과 귀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와 익숙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영어가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고 그걸 또 막힘없이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굳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써야 할 필요도 없고, 어차피 원어민들은 외국인들에게 그런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큰 하자만 없다면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지 않아서 곤란해지는 일은, 과장을 좀 보태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소소한 불편이 좀 있긴 하겠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건, "말하고 싶은 말은 말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두 개의 박스 안에 있는 말은, 체코의 프라하를 여행하던 중에 수퍼마켓에 들렀다가 누군가로부터 오해를 받았을 때 내가 눈 똑바로 뜨고 - 아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 그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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