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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Oct 08. 2019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작

Goodbye Victoria, Hello Toronto

 많이 고민했습니다. 6개월 동안 잘 지내온 빅토리아를 떠날지 말지 말이죠.

사실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부터 도시를 이동하려는 계획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확고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거야.’라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곳에 직접 와보니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는 곳을 옮긴 다는 건 큰 결심 끝에 하는 것인데 이 곳은 캐나다. 러시아 다음으로 국토가 넓은 이 나라에서 '이사'는 생각보다 더 큰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원했던 도시는 캐나다의 동쪽 끝 그러니까 서쪽 끝에 있는 빅토리아와 정 반대 위치에 있는 곳. 토론토였습니다. 왜 하필 많은 도시들 가운데 토론토를 택했냐는 질문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습니다. 단지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빅토리아에서의 생활도 물론 너무 좋지만 보다 더 큰 도시에서 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었어요. 장고 끝에 결정했고,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바로 매니저님과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죠.


“왜? 지금 잘 지내고 있잖아!”
“왜 하필 토론토야? 거긴 정말 추워!”
“왜? 동부는 콘크리트 도시야 삭막하다고!”


모두 다 “왜?”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제 잘 적응했는데 또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하니 그들의 반응이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토론토에 아는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구해놓은 직장이나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처음엔 매니저님과 동료들이 저를 기이하게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이내 수긍했죠. 그러고는


“너 참 용감하다!”
“그곳에서도 분명 좋은 직장 구할 수 있을 거야.”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아. 보고 싶을 거야.”


라는 말을 저를 '볼 때마다' 해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했죠.


‘아 너무 빨리 말했나..’


 사실 떠나기 3주 전쯤에 모두에게 이야기를 한 터라 아직 이사하기 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동료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보고 싶을 거야”, “가지 마”를 매일 같이 이야기했거든요. 하지만 기분 좋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 곳에서 미움받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게 증명받는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 떠난다고 했을 때 그와 함께했던 동료나 친구들이 슬퍼해 준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잖아요.


 3주 동안 많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잘 연락하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과는 더 자주 만났고, 그렇지 않았던 친구들과도 약속을 잡아 크고 작은 송별회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같이 BTS 뮤직비디오를 보며 피자를 먹기도 했고,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던 빅토리아의 숨은 명소들을 찾아 인증 샷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3주는 어느 때보다 알찼고,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평범하게만 느꼈던 일상들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매일 타던 버스도, 자주 가던 식당도, 집 근처 카페도 이제는 다시 못 올 거라는 생각에 눈에 더 자세히 담기 바빴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여기까지.


 이사는 현실입니다. 6개월 동안 늘어난 살림을 정리하고 단 2개의 캐리어에 모든 것을 담아야 했습니다. 혹독하게 춥다는 토론토 날씨를 살아내야 하기에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패딩을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신발이나 다른 옷가지 등을 버려야 했어요. 캐나다에 와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다 버렸습니다. 남은 쌀, 간장, 참기름, 된장, 고추장… 모든 것을 다 두고 가야 했어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즈음 집주인에게 체중계를 빌려 추가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길 몇 시간. 드디어 방은 수개월 전 제가 들어오기 전의 모습과 같아졌습니다. 살았던 흔적이라곤 마지막 하룻밤을 위한 이불과 배게뿐이었어요. 텅 빈 조그만 방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처음 한국에서 이 곳으로 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게 신기하게만 보였던 순간. 주방에서 일하며 뜨거운 기름에 데어 손에 물집이 잡혔던 순간. 친구들과 다 같이 잔디밭에 앉아 피자를 먹던 순간.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에서 버스킹을 보며 넋 놓고 있던 순간까지. 힘들었던 순간들도 아름다움이라는 포장지로 싸여 이내 추억이라는 선물이 되어 저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을 마음속에 품고 생각했어요.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수고했다고요. 아직 1년의 워킹홀리데이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6개월 동안 참 수고했다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말이죠.


이제 짐 좀 그만 싸고 싶다...!


 이사 당일 23kg짜리 캐리어 두 개와 터질 것 같은 백팩 한 개를 들고 마지막으로 빅토리아 다운타운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자주 가던 중국 음식점에서 평소엔 절대 먹지 않던(아니 못했던) 조합으로 거하게 ‘최후의 만찬(?)’을 즐겼어요. 그리고는 비행기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로 자주 가던 스타벅스 매장을 들러 커피 한 잔을 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니 세상 무서울 게 없더라고요.


참 맛있는 식당이었는데...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 어느덧 공항으로 가야만 하는 시간은 다가왔고,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일몰 시간이었기 때문에 운치 있게 빅토리아의 마지막 노을을 감상하며 가겠다는 처음의 생각은 그저 생각이었을 뿐. 아침부터 두 캐리어와 함께한 무리한 일정 탓에 저는 곯아떨어졌고,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 마지막.


밤늦은 시간이라 공항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수속도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비행기에 올라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고 탑승 전 작디작은 빅토리아 공항을 한번 쭉 훑어보았습니다. 처음에 이 곳에 와서 느꼈던 그 감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이름 모를 감정들이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슬픈 기억은 다 털어버리고 기쁜 기억만 꼭꼭 챙겨서 가져가자'라는 생각으로 토론토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텅 빈 빅토리아 공항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인지, 정든 곳에 대한 아쉬움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그 감정들과 함께 워킹홀리데이 2막의 시작이 밝았습니다.


 이 표현을 쓸 수 있는 순간이 저에게도 오는군요.


“1막 끝, 2막 시작.”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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