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전하는 우체국 택배
아직 토론토에서의 겨울을 겪진 못했지만 '이만큼 추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9월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지 오래. 생각보다 길어진 구직 기간,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느끼는 사무치는 외로움은 저를 세상 누구보다도 춥게 만들었습니다. 약간 후회도 했습니다. '빅토리아에서 잘 적응하고 살고 있었는데 왜 굳이 먼 이 곳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하려 했을까'라고요.
토론토에 온 지 약 한 달 정도 뒤, 운이 좋게도 일하고 싶었던 스타벅스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갓 시작한 직원에게 대도시의 스타벅스는 감당하기 벅찼습니다. 가끔 과하다 느낄 정도로 친절했던 빅토리아 사람들과는 달리 캐나다에서 가장 바쁜 도시인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차가웠습니다. 다들 자기 삶에 바빠 보였고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으려 매일매일을 전쟁처럼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처럼 말이죠. 그런 모습을 보고 싶고, 직접 겪어보고 싶어서 왔건만, 실제로 살아내기엔 제 몸과 마음이 빅토리아의 여유로움과 친절함에 이미 적응이 된 후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카페에서 일해 본 적은 있지만 이 곳에서는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기존 메뉴 그대로 시키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것은 빼고, 저것은 넣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제대로 알아듣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우유의 종류는 또 왜 그리 다양한지 2%, 저지방, 일반, 크림, 아몬드, 그리고 코코넛 우유가 있었는데 가끔 두 가지 우유를 섞어달라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모든 게 쉽지 않더라고요. 실수는 자연히 많아지고 제 자신감은 추락해 갔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잘하고 있다고 연신 격려해 주지만, 그 말들은 제 귀에 들어오기 전에 날아가 버리곤 했습니다. 원래 힘들 땐 누가 힘내라고 해줘도 힘들잖아요. 난 이미 힘내고 있는데 또 힘내라고 하면 가끔 짜증 나기도 하고요.
집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내 방 내 침대에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자고 싶었고, 일요일 아침 엄마가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에 일어나고 싶었습니다. 자주 가는 단골 돈가스 집에 가서 늘 먹던 메뉴를 시켜 먹고 싶었고,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맥주 한 잔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땐 너무나도 평범했던 일상들이 그리웠고, 이 곳에선 그 평범함이 더 이상 평범함이 아닌 특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반가운 소포 한 개가 왔습니다.
사실 이 전에도 광주에 사시는 이모가 너무나 감사하게도 광천 김이다 뭐다 해서 한 보따리 보내 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다름 아닌 엄마가 보낸 거였어요. 카페 마감을 끝내자마자 택배를 보관하고 있다는 집 바로 앞 슈퍼에 들렀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택배가 너무 무겁다며 안쪽으로 와서 직접 들고 가라고 하셨어요. 집으로 그 무거운 택배를 옮기며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하고 어린아이처럼 설렜습니다.
‘엄마는 내가 국 좋아하는 걸 아니까 국을 보냈겠지?’
‘매콤한 것도 먹고 싶은데 들어있으려나..’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택배 상자를 자세히 봤는데 ‘마음까지 전하는 우체국 택배’라고 적혀있더라고요. 타국에서 한글로 포장된 택배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설레고 기쁜 일인지는 직접 받아본 사람 말고는 아마 모를 거예요. 그리고 조심, 조심 상자를 뜯었습니다. 안에는 역시 제가 좋아하는 여러 종류의 국과 찌개들로 가득했습니다. 매콤한 떡볶이도 들어있었고, 가끔 죽 먹는 걸 좋아하는 아들의 취향까지 완벽히 기억하고 넣은 죽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음식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장 위에 놓여있던 하얀 편지봉투였습니다. 봉투엔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적혀있었고, 그 글씨를 보자마자 덜컥 눈물이 날 뻔한 걸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봉투가 상하지 않게 조심히 뜯어 열어본 두 장의 편지엔 엄마의 진짜 ‘마음’이 담겨있었고, ‘마음까지 전한다’는 우체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용진아!
캐나다로 간 지 7개월이 지났네.
겨울에 갔는데 봄,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이야.
엄마는 말이 통하는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다른 도시 가는 게 두려운데 우리 아들은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다. 출장 이외엔 가본 적이 없는데 엄마도 용기를 좀 내볼까?ㅋㅋ
빅토리아에서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잘 지내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더라.
그런데 캐나다 가장 큰 도시로 새로운 모험을 하러 떠나는 아들을 보니,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대견하던지~
용진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나의 아들 용진아!
엄마 품 안에서 오글대던 꼬맹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세계를 누비고 있구나.
물론 지금의 용진이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고통과 아픔, 슬픔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이 우리 아들에겐 밑거름이 된 것 같아 정말 자랑스러워.
앞으로 살다 보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두려워하지 마. 우리 아들은 어떤 일도 잘 헤쳐 나갈 거라 믿어.
그러나 용진아!
가끔은 힘듦을 내려놓고 쉼도 필요해.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다독여 주고 쉬게 해야 해.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오랫동안 달릴 수가 없단다.
가끔은 눕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멍도 때리고 해야 길게 갈 수가 있어.
우리 진이는 현명하니까 잘 조절할 거라 믿어.
그리고 너무 막막하다가도 주변을 잠깐 돌아보면 누군가 힘을 주기도 하더라고.
내 아들 진아!
마음도 따뜻하고 의지 또한 굳건한 진아!
캐나다라는 타국에서 7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야.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 줘.
한국에서도 못 한 스벅 알바를 캐나다에서 하다니~ 쓰담쓰담^^
바쁘고 힘들 텐데도 잊지 않고 할머니 챙기는 착한 아들아!
할머니는 항상 우리 진이 생각뿐이셔. 아마도 할머니의 그 기운과 기도가 우리 아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거야.
우리 아들이 어디에 있든 항상 염려하시고 잘 지내길 바라는 가족들이 있다는 거 생각해서 힘 내.
이 곳 한국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
거기는 더 춥겠지? 건강 잘 챙겨라.
엄마는 울 아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기만 하면 돼.
이것저것 사서 보낸다. 마트에 가서 사면서 맘이 찡하더라. 인스턴트 밖에 못 보내니 안타까우면서도 타국에서 먹을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보내고 싶더라.
인터넷에 보니 해외 택배 제한 무게가 있더라. 거기에 맞춰서 샀어.
나중에 또 필요하면 말해.
엄마는 항상 언제나 울 아들 편이고, 응원군이야.
매일매일 웃는 날 되렴. 진짜 진짜 사랑해.
2019. 9. 30. (일) 한국에서 엄마가
두 장의 종이에 꽉꽉 채워진 저 글자들 속에 담긴 마음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에게 등 돌리고 손가락질하더라도 누군가 딱 한 명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우리 엄마겠구나.’라는 생각이 한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든든한 응원군이 매 순간 함께 한다는 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큰 축복이지 않을까요.
다른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많이 슬펐겠다”라고 제 감정을 추측해서 위로를 전해줄 때 편지 속 엄마는 “많이 힘들었지”, “많이 슬펐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지내온 시간들, 살아온 시간들을 알기에 가능한 위로고, 응원이었습니다. 가식 없는 그 사랑과 위로가 가득 담긴 편지를 읽고 난 후 다시 한번 조금 더 힘 내 보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기에,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가끔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투에 상처 받기도 하는 막내아들이지만, 나에겐 든든한 ‘엄마’가 있기에. 그리고 ‘가족’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