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진 Nov 23. 2019

나이아가라에서 만난 인연

내가 그들이길 바라며

 지난 한 달은 지금까지의 워킹홀리데이 기간 중 가장 궁핍하게 보낸 한 달이었습니다. 일주일을 10불 조금 넘는 돈으로 살아야 했기에, 자연히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결했습니다. 정작 토론토에 와서 토론토 다운타운 지역을 제외하곤 주변 다른 지역을 구경할 여유조차 없었죠.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온 이 곳에서 오히려 더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나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8시간 넘게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6일 만에 찾아온 금 같은 휴무였고, 별다른 계획 없이 ‘그냥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뭔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캐나다 동부지역 추위의 대단함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추워지기 전에 가까운 지역이라도 짧게나마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난 곳이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



 토론토에서 버스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3대 폭포 중 한 곳. 이름만 수도 없이 들었던 그곳! ‘나이아가라’라는 이름이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었을 때 머릿속을 관통하는 그 빠른 빛처럼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짧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고 ‘카지노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 다음날 첫 차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알람을 설정해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급히 잠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새벽 5시 57분. 출근하는 날에는 수도 없이 울리는 알람에도 떠지지 않던 눈은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스스로 떠져버렸습니다. 토론토로 이사 오고 난 후 여행다운 여행은 처음이라 많이 설레었나 봅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소풍 가는 날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같이 일어나 오히려 엄마를 먼저 깨우는 것처럼 누구보다 부지런한 새나라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아침은 간단히 팀홀튼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거라 준비할 짐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몸으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할 때는 그렇게 우울해 보이던 사람들의 얼굴은 세상 행복해 보였어요.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그들일 텐데 제 마음이 행복하니 모두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이래서 옛 어른들이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씀하셨나…’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 채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장소엔 아직 아무도 없었습니다. 워낙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제가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갔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당장 하루 전에 결정한 나이아가라 여행이라 셔틀버스 예약을 미리 하지 못한 제가 혹여나 빈자리가 없을까 마음 조리고 있던 그때,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외양의 동양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중국인들 속에서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챈 저는 먼저 다가가 나이아가라로 가시는 거냐고 물었고 그들 또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 답했습니다. 남자분의 손에는 반가운 대한민국 여권이 들려있었는데, 무엇을 확인하려고 하셨는지 속을 훑어보시는 걸 옆에서 흘깃 보았는데 누가 봐도 여러 나라의 도장이 빽빽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아챘습니다. 예사 여행객이 아니라는 것을요.



 속으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많았지만 초면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는 생각에 꾹꾹 참고 기다리길 수 분. 예정 시각보다 십여 분 늦게 셔틀버스는 도착했고, 어제 미리 예약한 한국인 부부는 “걱정 말아요! 탈 수 있을 거예요. 버스 안에서 봐요.”라고 말하며 먼저 버스에 올랐습니다. 미리 예약한 손님들의 탑승이 완료된 후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도 탈 수 있게 했는데, 다행히 저도 그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그 부부와 마주친 저는 환하게 웃으며 “저 탔어요!”라고 말했고 부부는 그들의 일처럼 축하해줬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외국에서 만난 같은 국적의,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잠깐 만나 인사한 정도로 말이죠. 그 짧은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버스에서 한 시간여 눈을 붙이자 차창 밖으론 어느새 하늘 높이 솟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보였고 곳곳엔 ‘나이아가라’라는 글씨들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온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당일치기라는 시간적 압박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저는 도착하자마자 급히 폭포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폭포로 향하는 길조차 너무 아름다웠기에 마음처럼 빠르게 갈 수는 없었어요. 이곳도 사진 찍고, 저곳도 사진 찍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와중에 작지만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분명 가까이서 들리는 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 폭포 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가보니 그곳엔 미국 쪽에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아메리칸 폭포’가 웅장하게 있었습니다. 일단 크기에 놀랐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렇게 큰 폭포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물론 폭포가 크기만 크다고 해서 최고가 되는 건 아니지만 크기는 물론이고 그 크기에서 나오는 웅장함은 저를 ‘압도’시켰습니다.


말이 안나오잖아 말이...


 날은 쾌청했고 하늘은 높았지만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는 다름 아닌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로 인해 내리는 것들이었고 폭포 근처 도로는 전부 촉촉이 젖어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옷이 젖는다며 짜증 냈을 저는 이 날 만큼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비를 또 언제 맞아보겠냐는 생각에 기분 좋게 걸어가던 중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쪽을 보니 좀 전에 압도당한 폭포보다 더 크고 웅 - 장한 폭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홀슈 밴드 폭포’. 말의 발굽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름처럼 둥그런 모양으로 된 절벽에 엄청난 양의 물의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이아가라 폭포를 말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모습이 바로 이 ‘홀슈 밴드 폭포’입니다.



 폭포가 만들어낸 장관에 흠뻑 취해, 젖어가는 핸드폰의 화면을 연신 닦아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겠냐며 수줍게 부탁하길 반복하니 어느덧 시간은 금세 흘렀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던 중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침에 만났던 그 한국인 부부입니다. 서로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하고 부부는 혼자 여행 온 저를 위해 먼저 “사진 찍어드릴까요? 혼자 여행하면 사진 찍기 어렵잖아요.”라고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지 못한 저는 감사한 마음에 바로 자세를 잡았고 부부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는 시작되었어요.

부부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는 중이었고 이곳 캐나다를 거처 마지막 대륙인 남미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침에 본 남편 분의 여권 속 수많은 도장의 비밀이 순식간에 풀렸어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꾸미지 않은 모습의 그 부부가 세상 어느 부부보다도 멋져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라는 곳을 함께 탐험한 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꿈과 같은 일이었거든요. SNS나 블로그에서 봤던 세계일주 부부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이 설렜습니다.



 그리고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으니 대화는 막힘 없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곳이 여행하기 좋은지, 어느 곳이 위험한지 아낌없이 얘기해 주셨고 저는 마치 제가 직접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생생히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여행’이라는 이 두 글자가 잔잔하게만 뛰던 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고, 잠시 잊고 있었던 ‘설렘’이라는 감정을 진하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사진은 한국인에게



 만약 이 짧은 휴무를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 한잔 마시는 것에 만족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설렘을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나는 여행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라는 것을요. 조금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고, 넉넉지 않은 통장의 사정은 더 어려워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주는 그 설렘이 저에겐 너무 크다는 것을 말이죠. 짧은 시간 동안 전해 들은 그 부부의 이야기 속에 제가 있길 바랐습니다. 한 달 정도만 있기로 했던 이집트 다합에 빠져 세 달을 넘게 있었다는 이야기.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차를 몰고 다니며 기린, 얼룩말을 눈앞에서 봤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 제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모습을 본 부부는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여행 다니다 보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녜요. 훨씬 더 특별하고 재미있게 여행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저희는 서른 훨씬 넘어서 하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용진 씨도 할 수 있어요!”



이 말이 주는 응원과 힘은 그 어느 말보다 강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그 말.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듣는 그 말은 믿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번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은 아마 1년의 워킹홀리데이 기간 중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렬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폭포가 주는 웅장함과 아름다움도 강렬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그 부부와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대화에서 얻은 그 힘은 더 강렬했습니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찾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여행’이 주는 선한 힘이 강하다는 말이겠죠. 저는 여행이 좋습니다. 여행할 땐 비가 와도 행복하고, 음식이 조금 맛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모여 여행의 기억을 이루게 될 것이고, 그 기억의 조각은 시간이 흘러 멋진 추억의 퍼즐을 완성시킬 테니까요. 앞으로 펼쳐질 토론토에서의 시간도 기대가 되고 그 이후의 시간도 기대하게 만든 이번 짧은 여행은 그 어느 여행보다 진한 잉크로 쓰여 마음속 깊숙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 걱정은 이제 조금만 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내 지갑에서 돈이 넘쳤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victor_yongjin

매거진의 이전글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