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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May 16. 2020

두 번의 생일, 두 번의 크리스마스

나는 일 년 열두 달 중에 12월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 생일이 12월에 있고, 크리스마스도 12월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생일이다, 크리스마스다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평범한 여느 날처럼 보낸다고 하지만, 나에게 생일과 크리스마스는 ‘아직까지는’ 특별한 날이다. 특별한 ‘어떤 것’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특별함은 더 특별해질 것이다. 일년에 단 한 번뿐인 생일, 그리고 역시 단 한 번뿐인 크리스마스가 그렇다.



캐나다에서 혼자 맞이하는 생일과 크리스마스는 외로우리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25년여간 일 년에 단 하루만 누릴 수 있었던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두 번이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시차’. 한국은 토론토시각을 기준으로 캐나다보다 14시간 빠르다. 즉, 내 생일이 한국에서 14시간 먼저 시작된다는 말이다. 한국 시각에 맞춰 각종 SNS에는 내 생일을 축하하는 축하 메시지가 잇따른다. 혹시 아무도 몰라주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나는 약간의 안도를 한 뒤, 하나하나 읽어가며 고마움을 담아 답을 했다. 그렇게 하나씩 답장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보내던 생일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축하를 받았다는 생각에 어깨도 으쓱 해 진다.



스타벅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오늘은 내 한국 생일이야!”라고 말하며 생일이 두 번이나 된다고 유치한 자랑 아닌 자랑을 하며 ‘한국 생일’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난 다음 날. 또 한 번 생일의 하루를 알리는 해가 밝았다. 이제는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의 축하가 잇따른다. 빅토리아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문자가 오고, 직장에서는 “Happy birthday!”가 계속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시려고 주문한 직원 음료 컵엔 수퍼바이저 N이 직접 컵에 생일 인사를 적어주고, 스케줄 표에는 또 다른 수퍼바이저 P가 생일 축하한다며 글을 적어놨다. 오지랖도 넓고 항상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G는 주문하는 손님에게 마저 오늘이 내 생일이라며 나를 민망하게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생일날 근무를 끝마치고, 친한 동료들과 코리아타운으로 가서 갈비찜, 해물파전, 비빔밥,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싼’ 소주(일반적으로 캐나다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은 15~18 캐나다 달러씩이나 한다!)를 시켜 신나게 올해의 두 번째 생일을 보냈다. 자칫 심심하게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외국에서 맞이한 내 생의 첫 생일은 신명 나게 끝이 났다.



그리고 약 2주 정도 뒤 또 하나의 빅 이벤트, 크리스마스.

종교를 떠나 전 세계가 들썩이는 날 크리스마스. 난 역시나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 덕에 거의 1주일 내내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캐나다에서 느낀 크리스마스는 한국과는 사뭇 달랐는데, 이곳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설, 추석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연말이면 송년회다, 신년회다 해서 식당, 술집 할 것 없이 북적이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 가까운 유럽으로 가족 전체가 길게 휴가를 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일하는 곳도 다름 없었다. 몇몇 동료들은 이미 한달 여 전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를 낀 긴 휴가를 신청해 놓았고, 연휴가 시작되자 마자 포르투갈, 멕시코, 미국 등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보다 컸다. 하지만 가까운 유럽으로 여행을 가자니 지갑은 너무나 가벼웠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국까지 가기엔 돈도 돈이지만 너무나도 멀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했다. 약간의 합리화를 하자면 크리스마스 당일에 일하면 두 배가 넘는 시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일하겠다고 한 것도 있다. 괜히 휴무 신청을 해 봤자, 집에서 혼자 ‘나 홀로 집에’나 ‘나 혼자 산다’ 볼 게 뻔했고, 그럴 바에 밖에 나가 돈도 벌고 사람 구경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 시간은 낭만적이었다.

많은 손님이 음료를 가져가며 “Merry Christmas, Happy Holidays”라고 인사를 건넸고, 나는 평소보다 더 밝고 따뜻한 미소로 인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매장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다른 개인 카페나 음식점들이 연휴를 맞아 문을 닫으니 주변에서 거의 유일하게 영업하는 스타벅스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엄청난 손님 수와 비교해 그들을 응대할 직원은 평소보다 훨씬 적었고, 우리들은 일 당 백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웃음기 가득했던 내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미처 치우지 못한 컵과 접시들은 쌓여만 갔다.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매장 문은 닫았지만 진짜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중간 중간에 치워 싱크대에 그릇이 몇 개 없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릇은 산더미처럼 쌓여 내가 얼른 씻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예정됐던 스케줄보다 한 시간 넘게 일을 하고서야 나의 크리스마스 전투는 끝이 났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씻고, 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일만하고 들어가기는 억울해서 함께 일했던 S와 함께 근처 한국 식당으로 갔다. S는 인도 출신으로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중엔 한국에서 지낼 계획을 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깊은 친구다. 나도 모르는 K-POP 가수와 드라마를 알 정도로 한국 사랑이 엄청난 S 덕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물 흐르듯 이어졌고, 자칫 칙칙할 수 있었던 두 남자의 크리스마스 저녁은 즐겁게 끝이 났다.


두 번의 생일과

두 번의 크리스마스


시차가 주는 작은 선물은

외로운 타국생활에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내 생에 이렇게 ‘특별한’ 날들을 또 맞이 할 수 있을까?




Instagram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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