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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Jun 08. 2020

참 어려운 마지막,  그래도 결국 오는 마지막

감자돌이 단풍국 가다. 끝.

집 주인아주머니께도 말했고, 매니저님께도 말했다.
 1월 31 일부로 나의 캐나다 생활은 끝이 난다고 말이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1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내 머릿속 마지막 출근 날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커피를 만들고, 퇴근 후 동료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그동안 고생했어!”라는 말을 주고받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1년 가까이 놓지 않고 꼭 붙잡고 있던 긴장의 끈은 마지막이 다가오니 내 손에서 소리소문없이 풀려나갔다. 마지막 출근 전날부터 몸 상태가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심한 몸살을 앓았고 그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조퇴와 결근을 이틀 연달아서 하고 말았다.



아무리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내 계획은 보란 듯이 빗나간 것이다. 단골손님들과의 마지막 인사도,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하며 서로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도,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꼼짝없이 지냈다. 비싼 배달비 때문에 앱만 다운받아 놓고 써보지도 않았던 배달 앱으로 매 끼니 시켜 먹을 정도로(아플 땐 더 잘먹어야 한다) 몸은 이곳 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픈 것도 서럽지만 힘들게 구한 직장에서의 마지막을 제대로 끝내지 못해 느낀 서러움이 더 컸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친한 동료들은 퇴근하고 집으로 찾아오겠다며 문자에 전화에 난리였지만, 그들을 맞이할 힘조차 나에겐 없었다. 배달음식을 받으려고 문 앞에 나가는 것조차 힘든데 그들의 위로를 들을 힘은 더더욱 내기 힘들었다.



서러운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들 마지막 출근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있어. 음식도 배달음식 먹고. 그 와중에 너무 비싸네! 진짜.”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쌓아뒀던 속마음을 쉴 새 없이 쏟아댔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엄마는 “네가 그동안 잘하려고, 열심히 하려고 긴장했던 게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풀렸나 보다. 1년 만에 갖는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푹 쉬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어. 출근 못 한 건 아쉽지만 그건 그만 생각하고 일단 푹 쉬자. 고생 많았어.” 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아무리 좋은 약과 맛있는 음식으로도 받을 수 없었던 위로와 위안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엄마의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건네줬다.



나는 다른, 철든, 멋진, 어른, 아들들처럼 타지에서 아플 때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거나, 전화하더라도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거짓말하지 못한다. 아직 철도 들지 않았고(들고 싶지 않다) 투정도 부리고 싶어서 아플 때면 엄마에게 전화해 아프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비슷한 말을 한다. 아픈 건 걱정되고 안타깝지만 이번 기회에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자고 말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와서 지친 몸이 주는 신호라고,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도 둘러보라고.



항상 그래왔듯 그 말을 약 삼아서 이겨냈다.



그리고 토론토에서, 캐나다에서의 마지막도 그랬다. 따뜻한 엄마의 위로와 걱정은 오들오들 떨리던 나의 몸을 따뜻하게 해줬고, 물조차 삼키기 힘들었던 목을 조금씩 낫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록 마지막 출근, 마지막 인사는 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잘 마무리 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수십 장의 이력서와 함께 혹시나 뽑아 줄까 가게 앞을 서성거리고, 횡단보도 건너는 법도 몰라서 몇 분이고 가만히 서 있던 시간을 보내고 두 번의 이사와 두 곳의 직장, 두 개의 도시를 거쳐 머나먼 타국에서의 대장정을 끝냈다. 하루하루가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들으려 귀는 항상 열려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발은 빨랐으며, 손은 분주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크게 아픈 곳 없이 계획했던 1년을 무사히 마친 나에게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어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모으고 모아 이곳 저곳을 다녔던 나에게. 정말 너무 돈이 없어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돈을 빌릴지언정 부모님께는 손 벌리지 않은 나에게. 외국에 나와서도 ‘아닌 건 아닌 거지.’라는 철칙을 깨지 않고, 예의 없이 대하는 동료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맞서 싸웠던 나에게. 그런 나에게 잘했다고 맘껏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이 순간순간들이 모여 거름이 될 거라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된다고 말이다.




수고 많았어.




이제

집에 가자.





지금까지 '감자돌이 단풍국가다'와 'Hi, there!'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툰 글이었지만


캐나다에서 1년 동안 제가 느꼈던 것, 보았던 것, 경험했던 것들이 이 글들에 조금이나마 뭍어있어 전해졌길 바랍니다.


앞으로 더 재밌고, 공감할 수 있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2020년 한해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네요.


날은 더 더워지고, 마스크 안쪽 인중으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합니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코로나 조심), 오늘 하루도 재밌고, 기쁜 하루 되시길, 그리고


그 하루들이 차곡히 쌓여 여러분들의 기억을 이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Instagram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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